동네 마트에서는 왜 제휴카드 할인이 안될까
[경향신문] 15년 전 일이다. ㄱ씨는 서울의 한 시장에 ‘A마트’라는 슈퍼마켓을 열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처럼 ㄱ씨는 성공이 간절했고 밤낮없이 일했다. 고맙게도 단골손님이 생겼고 슈퍼는 곧 자리를 잡았다. 일한 만큼 사세도 커졌다. 직원 4명으로 시작한 슈퍼는 2018년 현재 직원 25명을 둔 중형 마트로 성장했다.
ㄱ씨는 그러나 가게 문을 연 첫날부터 지금까지 카드사를 상대로 ‘싸움’을 하고 있다. 매출이 늘수록 카드사는 수수료를 깎아주기는커녕 더 많은 ‘수수료’를 통보하고 걷어갔다. 현재 A마트에 책정된 카드수수료율은 2.5%로 관련 규정이 정하는 최대 상한선 수준이다. A마트가 매달 카드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1800만원. 마트의 한 달 임대료 1200만원보다 더 많은 돈이 카드수수료로 빠져나간다.
임대료보다 카드수수료가 더 많아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규정 권고안을 통해 마트 등과 같은 일반 카드가맹점들이 카드사에 지불하는 수수료율의 상한선을 연매출 규모에 따라 정하고 있다. 연매출 3억원 이하 가맹점의 경우 최대 0.8%, 3억~5억원 이하 가맹점은 최대 1.3%가 수수료율 상한선이다. 연매출 5억원 이상인 이른바 ‘일반 가맹점’의 경우 수수료율을 자율적으로 정하되 최대 상한은 2.5%로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A마트는 권고안에서 정한 가장 비싼 수수료율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동네 마트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4월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 상인단체들이 실시한 공동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전체 1057개 사업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사업자(55.82%)가 최고 2.5%의 카드수수료를 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네 마트들이 부담하는 높은 수수료는 마트 주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카드수수료는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윤을 남기려면 카드수수료를 상품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동네 마트가 대형마트보다 더 비싼 여러 요인 중에는 이처럼 높은 카드수수료가 한몫 한다. 현금거래를 하면 물건값을 깎을 여지가 있긴 하지만 카드 사용이 일반화된 요즘 시대에 언감생심이다. 홍춘호 한국마트협회 정책기획실장은 “카드수수료도 비용이다 보니 상품가격에 반영돼 있다”며 “수수료가 내려간다면 동네 마트도 상품가격을 낮춰 대형마트와 경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카드수수료를 내고 있음에도 정작 동네 마트들이 카드사로부터 받는 ‘혜택’은 없다시피 하다. 동네 마트에서는 대형마트들이 연중 진행하는 흔한 ‘카드 제휴할인’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카드사들이 동네 마트에 대해서는 제휴할인과 같은 판촉행사를 벌이지 않기 때문이다. 카드사에 동네 마트는 마케팅 비용을 들여 공략할 대상이 아니다. 이미 2.5%의 최고 수수료율을 책정해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데 고객 유치 효과가 미미한 판촉행사를 굳이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 가맹점의 경우 수수료율 상한만 정해져 있을 뿐 실제 수수료율은 전적으로 ‘시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연매출이 동네 마트의 수백 배에 달하는 대형마트가 부담하는 카드수수료율보다 동네 마트의 카드수수료율이 더 높은 게 현실이다.
갑을관계로 본다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는 카드사에 ‘갑’이다. 대형마트는 카드사의 전체 매출은 물론 그 카드사의 업계 시장점유율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때문에 수수료율 책정에 있어서도 막강한 ‘협상력’을 발휘한다. 실제 대형마트들의 카드수수료율은 동네 마트들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정의당 중소상인자영업자위원회의 4월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계열의 마트인 ‘코스트코’의 경우 삼성카드 수수료율이 0.7%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의 카드수수료율은 비공개 사항이지만 위원회는 금융위의 국회 제출자료 등을 근거로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의 카드수수료율을 1.5~1.8% 선으로 추정했다.
이에 비해 ‘을’ 입장인 동네 마트들은 수수료율을 놓고 카드사와 왈가왈부할 힘이 없다. 수수료 인하를 요구해도 카드사들은 묵묵부답이다. ㄱ씨는 “카드수수료를 막무가내로 인하해달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2.5%씩 낼 때 대형마트들은 많이 내봐야 1.5%밖에 안 낸다. 적어도 수수료를 매기는 기준에 있어서 지금보다는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동네 마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임대료와 최저임금이 올라 장사가 안돼서 힘드니까 그걸 카드사에 떠넘겨 화풀이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제대로 제반비용을 따지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수료를 동네 마트에서 받아야 하지만 그나마 ‘2.5%’라는 상한선 때문에 더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사 “대형마트가 관리비용 덜 들어”
대형마트에 수수료를 덜 받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게 카드사의 항변이다. 가맹점 규모가 클수록 관리비용이 덜들고 이런 부분이 원가산정에 반영돼 수수료를 낮게 책정한다는 논리다. 건당 거래금액이 커 카드사에 큰 수익을 안겨주는 대형마트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동네 마트를 동일선상에 놓고 수수료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대형마트에는 수수료율을 낮게 줘도 워낙 많이 팔아주니까 카드사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 역시 “이미 수차례 수수료 인하를 한 데다 올해도 소액결제 업종의 카드수수료가 추가로 인하되는 만큼 더 이상의 수수료 인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언한 상태다. 금리인상으로 카드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수수료 인하는 카드업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전체 당기순이익이 2016년 1조8132억원에서 2017년 1조2268억원으로 32.3% 감소했다”며 “카드수수료를 여기서 더 줄이면 전체 카드사들의 실적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수료 인하 불가를 외치는 카드업계의 주장이 그저 ‘엄살’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사들 대부분의 가맹점 수수료 수입이 증가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8대 카드사(국민·롯데·비씨·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카드) 중 비씨와 신한을 제외한 6곳의 카드사가 가맹점 수수료 수입이 늘었다.
카드업계의 수익성 악화의 진짜 원인은 회원 모집을 위한 업계 간 출혈경쟁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드사들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종 할인과 포인트 적립 등에 들인 마케팅 비용은 2016년 약 5조3400억원(7개 전업 카드사 기준ㆍ2017 국정감사 제출자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카드사들이 어렵다고 하면서도 제살 깎아먹는 마케팅을 오히려 늘리고 있다”며 “그동안 가맹점 수수료 수입을 받아먹으며 땅 짚고 헤엄치기 격으로 수익을 내다가 그게 잘 안되니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층간소음 호소해 윗방 ‘깨졌다’” 주장에…법무부 “대응 가치 없어”
- 김건희 “극우는 미쳤다…나라 망친 극우·극좌 다 없어져야”
- “수하물 두는 선반에서 ‘타다닥’ 소리났다”···에어부산 화재 원인은
- 윤석열 기소 후 시작된 극우 분열? 신남성연대 “더는 집회 안 할 것”
- 헌재 향해 쌓이는 여당 불만…국민의힘 “마은혁 임명은 과속”
- 법원 난동에 밀린 아빠의 죽음…“산재도 중요해요”
- 포고령 타이핑했다는 김용현…측근 “워드 작성 한 번도 못 봐”
- [단독] AI로 만든 가짜뉴스에…부정선거 ‘늪’에 빠져버린 국민의힘
- 서서 지하철 기다리지 마세요…세상에 없던 ‘외다리 의자’ 나왔다
- 한국인 10대 남성, 오사카에서 일본 여성 성추행 혐의로 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