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박근혜 전철 밟는 안철수

임경구 기자 2017. 4. 1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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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우다웨이 면담이 보여준 '안철수의 미래'

[임경구 기자]

 
지난 2015년 초, 박근혜 정부에 '안미경중(安美經中)'이란 신조어가 유행병처럼 번졌다. 말 그대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뜻이다. 중국과는 경제적 실리를, 미국과는 한미동맹이라는 가치를 취해야 우리가 산다는 보수층의 국가 생존전략을 담은 용어다.

일견 미국과 중국 틈에 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묘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허상이 드러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해 9~10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보인 '널뛰기' 외교였다. 

2015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보수층의 만류를 뿌리치고 중국의 대일 항전 70년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섰다. 이른바 천안문 '망루 외교'다. 박근혜 정부의 한중관계가 최고조에 이른 장면이었다. 미국은 부글부글 끓었다.

불과 한 달 뒤인 10월, 미국으로 날아간 박 대통령은 이번엔 중국 뒤통수를 쳤다. 그는 "한미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정책의 핵심축"이라고 했다. 또한 "그동안 한미 동맹은 한반도 남녘에서 많은 기적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면서 "이제 그 기적의 역사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해나가야 할 때"라고 했다.

풀이하자면, 미국과 손잡고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을 봉쇄하고, 한미 동맹의 영향권을 북한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전승절 열병식 참석이 내심 불쾌했던 미국을 달랜다며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박근혜 정부의 안미경중 외교는 이로써 밑천이 털렸다. 그 이후론 '한미 동맹' 일변도로 내달려 사드 배치 강행, 일본과 위안부 협상 등으로 외교안보 정책 자체를 파탄냈다.

외교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미국의 무제한적 안보 우산을 취하는 한편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이득만 챙기겠다는 무모한 줄타기는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사드 해법에서 박근혜 정부를 실패로 몰아넣은 안보와 경제의 분리 접근법이 엿보인다. 최근 그는 지방언론사 공동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정말 이건 아니지 않느냐. (…)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데, 지금 중국 정부의 보복은 우려스럽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중국 정부를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한국 안보 중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맹국인 미국과 공조해야 한다. 다른 선택이 없다는 걸 이해시켜야 한다. 북핵으로 한반도가 불안해지면 오히려 중국도 손해라는 걸 설득해 안보와 경제는 투 트랙으로 분리하자는 걸 양국 기조로 삼는 게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겪으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안보와 경제의 분리 접근법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런데도 한미 군사동맹에 대한 맹신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친구론'으로 중국의 사드 보복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게 안 후보의 논리이자 사실상의 공약이다. 이런 낙관론이 어떤 후폭풍을 일으켰는지도 박근혜 정부가 이미 보여줬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지난해 7월,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중국이) 정치와 경제는 분리하지 않을까 예측한다. 대규모 보복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G2'로 부상해 국제적 책임이 커진 중국이 경제 보복을 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핵심 이익' 침해로 간주하는 사드를, 한미일 MD(미사일 방어)체계의 화룡점정으로 꼽히는 사드를 들여놓고도 경제적 타격이 없을 거란 박근혜 정부의 안일한 판단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는 지켜본 대로다.

안 후보도 중국발 경제 보복의 심각성을 잘 안다. 그는 10일 대한상공회의소 특강에서 "58년 만에 2년 연속 수출이 감소한 것은 처음 겪는 심각한 일"이라며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이 큰 문제"라고 했다.

이처럼 경제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도 중국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안철수식 '안미경중'은 성립한다. 하지만 안 후보는 아직까지 '친구론' 말고 뾰족한 방안을 밝히지는 않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가 안 후보의 입장에 맞춰 '사드 찬성'으로 당론 변경을 시사한 11일, 안철수식 사드 해법이 맞게 될 '가까운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박 대표와 안 후보 측 외교안보 참모들,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추궈홍 주한중국대사가 마주앉았다.

박지원 대표가 말했다. "한중 간에 마찰이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염려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한중 수교 25년간 쌓았던 탑들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한 번 한중관계가 복원되기를 바란다."

우다웨이 대표가 말했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 국토의 절반이 엑스밴드레이더로 커버된다. 중국의 전략적 안보가 피해를 입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 중국 입장은 명확하다. 우리는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우다웨이 대표는 덧붙였다. "일부 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쇼핑과 관광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도 막대한 영향 받고 있다. 이런 국면은 우리가 원하는 국면 아니다. 우리는 한국 측이 이 사드 문제 잘 처리하고 올바른 양국 관계가 발전하도록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면담 후 박 대표는 "진지하게, 친구로서 허심탄회한 얘기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측이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였다고 할만한 '결과'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철수 후보의 정치 지론은 이렇다. "정치는 결과를 내는 것이다." 안 후보가 대통령에 도전한 이유일 텐데, 중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의 사드 해법은 박근혜 정부가 깔아 놓은 레일 위에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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