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좋던 장점마을은 왜 '암 마을'이 되었나

박은수 <함께사는길> 기자 입력 2018. 1. 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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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길] 비료공장이 가동되자 마을에 지독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박은수 <함께사는길> 기자]

 "이 집도 아저씨가 돌아가셨고 저 집도 암으로 돌아가셨고. 저 아랫집은 여기 공기가 좋다고 일부러 귀촌하셨는데 둘 다 암에 걸렸어요. 저 집은 40대인데도 그리됐어요. 한 집에 두 분이 돌아가신 집도 있고 1년 사이 부부가 죽은 집도 있어요. 조만간 마을이 사라질 것 같아요."

최재철 씨는 착잡한 표정으로 마을을 소개한다. 물 좋고 공기 맑아 무병장수하는 마을이라 예부터 소문 난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과 10년 사이 주민 80여 명 중 12명이 암으로 죽었고, 11명이 암으로 투병 중이다. 암에 걸리지 않은 주민들도 다른 질환으로 고통받기는 매한가지다.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평범한 작은 농촌마을은 '암 마을'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마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 주민들이 집단 암 발병으로 논란이 된 가운데, 한 주민이 가동이 중단된 비료공장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함께사는길(이성수)

10년 사이 12명이 암으로 사망

"다 저거 때문이에요."

최 씨가 마을 위 한 공장을 가리킨다. 산 위에 자리한 공장은 성처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료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했다.

"원래 벽돌공장이 있던 곳인데, 비료공장에서 인수하고 2001년부터 가동을 시작했어요. 저 공장이 문제가 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죠."

최재철 씨와 주민들이 암 발병에 비료공장을 지목한 데는 이유가 있다. 비료공장이 가동되자마자 마을에 지독한 냄새가 가시질 않았다.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까지 날 정도에요"라며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냄새 때문에 기절한 이도 있다고 했다.

"한 번은 집에서 일하던 아내가 질식해 병원에 실려 갔어요. 회사에 항의하니깐 그 후 며칠 동안은 냄새가 덜하긴 하대요."

김인수 이장의 말이다. 그의 집은 마을에서도 공장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공장에서 불과 5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의 아내는 암 진단을 받고 현재 투병 중이다.

악취뿐만이 아니었다. 저수지도 전과 달랐다. 공장 바로 아래 자리한 저수지는 물이 맑아 물고기도 살고 멱도 감았던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공장이 들어선 후 간장 풀어놓은 것처럼 물색이 변하더니, 급기야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현재는 우렁이 한 마리도 못 사는 저수지가 되어버렸다고 주민들은 한탄한다. 지하수도 문제였다. 주민들 사이에서 지하수에서 냄새가 나고 기름이 뜬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2010년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주민들이 식수를 비롯해 생활용수로 사용해온 터였다.

불안한 주민들은 끊임없이 익산시에 민원을 내고 피해를 호소했지만, 비료공장은 무려 15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가동을 했다. 그 사이 12명의 주민들은 암으로 죽고 남은 주민들도 고통과 불안 속에 지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주민들의 우려는 사실로 드러났다.

▲ 최재철 위원장은 비료공장 가동 직후부터 주민들이 수차례 민원을 냈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주민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PAHs 등 유해물질 검출

연이은 암 발병과 죽음에 주민들은 올해 초 환경부에 집단 암 발생 원인규명을 위한 역학조사를 청원했고 이에 환경부는 장점마을에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실태조사' 용역을 국립 환경과학원에 발주했다. 

환경부의 역학조사에 앞서 학계와 행정기관, 정당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민관협의회는 비료공장과 장점마을에 대한 유해물질 환경기초 조사를 진행, 그 결과가 지난해 11월 15일 공개됐다. 조사 결과 장점마을 곳곳이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PAHs는 독성을 지닌 물질이 많고 일부 발암물질이 알려져 있으며 플랑크톤, 작은 고기, 큰 고기의 먹이사슬을 통해 농축돼 인체까지 다다를 수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물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장 아래 저수지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모든 지점에서 14종 이상의 PAHs가 검출되었고 공장 경계 고랑에서 채취한 퇴적물에서는 15종 이상의 PAHs가 검출되었다. 특히 나프탈렌은 모든 지하수와 토지, 비료공장 부근의 저수지 시료 전체에서 발견됐다. 나프탈렌은 국민건강과 수생태계에 미치는 위해성이 높아 특정수질유해물질로 지정한 물질이자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물질 2군으로 분류된 물질이다. 조사를 담당한 김세훈 전북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지하수에서 PAHs가 확인된 것은 화산폭발이나 대규모 산물 등 자연적인 원인을 제외하면, 인위적인 오염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비료공장은 피마자박과 연초박, 팜박, 미강박, 당밀 등을 섞어 유기질 비료를 만들어왔다. 이들 원료를 섞어 성형하고 360도로 열을 가해 건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유기물의 불완전연소가 발생해 다량의 PAHs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이번 조사에서 피마자박과 연초박에서도 리신과 발암물질이 확인됐다. 피마자박은 온난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피마자의 열매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수입한 것으로 질소 함량이 높고 또 값이 저렴해 유기질비료 재료로 많이 사용되어 있다. 하지만 피마자박은 리신이라는 맹독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피마자박이나 피마자박으로 만든 비료를 먹은 반려견이나 가축들이 죽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논란이 됐다. 연초박은 담배를 만들고 난 담뱃잎 찌꺼기로 주민들에 따르면 이틀에 한 번 1세제곱미터 크기의 연초박 가루 더미가 70박스씩 공장에 들어갔다. 열처리 과정에서 연초박에서 발생하는 연기는 그대로 마을로 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은 폐타이어를 비롯해 각종 폐기물을 공장에 반입해 낮에는 벙커시유를 태워 건조시키고 밤에는 폐기물을 태워 건조시켰다고 주장한다. 

▲ 장점마을 주민들이 원인으로 지목한 공장은 피마작박과 연초박 등으로 비료를 만들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 공장 바로 아래 저수지는 예전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함께사는길(이성수)

뒷북치는 익산시

현재 해당 공장은 가동을 중지한 상태다. 익산시는 올해 1월 해당 공장에 대한 점검을 벌인 결과 신고 되지 않은 대기배출시설을 확인했다며 고발 및 사용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주민들은 익산시가 그동안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다가 언론에 문제가 불거지자 뒷북을 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가 익산시에 민원을 얼마나 냈습니까. 그때마다 문제없다고 넘어갔어요. 오죽하면 주민들이 농기계로 공장 입구까지 막았는데 업무 방해했다고 주민들만 잡혀갔어요. 조금 더 빨리 대응해줬으면 한 사람이라도 덜 죽었지 않았겠어요?"

최재철 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주민들은 가동 직후부터 수차례 민원을 냈지만 공장은 단 한 번도 가동을 중단한 적이 없다. 특히 2011년 한 해만 세 차례 환경오염물질배출 위반을 했지만 조치 명령, 개선 권고만 받았을 뿐 아무런 문제 없이 가동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2016년 9월부터 5개월 동안 익산시는 해당 공장에 대해 폐기물 위반, 대기배출시설 미신고, 폐수배출기록 미비, 벙커시유 사용 미신고 등이 발견됐다며 15건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2010년까지 폐수배출시설 자체가 설치되지 않았던 사실도 뒤늦게 확인했다.

지난 15년 동안 주민들의 민원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공장에 5개월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달라진 것이라곤 주민들이 시민사회와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뿐이다.

시골마을에 들어서는 시한폭탄

"동네에 안 아픈 사람이 없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저수지에 오리도 많고 말조개, 새우도 잡아먹었는데 지금은 미꾸리 한 마리도 못 큰다. 우렁이고 뭐고 하나도 없다. 우리야 이제 늙어서 갈 사람들이지만 후손들은 어찌 살라고. 우리 늙은이들이 너무 힘이 없다"며 한 할머니는 한탄을 했다.

장점마을에 앞서 암 마을로 알려진 남원 내기마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15명의 암 환자가 발생하고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정부가 나섰고, 아스콘 공장의 유해 물질이 원인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문제는 장점마을과 내기마을 같은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유해물질에 대한 반감이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민원이 적은 소규모 도시나 농촌마을에 이런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언제든지 문제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자체의 관리 감독은 열악하다. 익산시 담당자는 "현재 익산시에 점검해야 하는 공장 수가 1년에 300~400개인데 2명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환경관리가 현재 매체의 오염 관리에서 국민의 건강보건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강공언 원광보건대 교수는 "현재는 수질오염이나 대기오염 등 오염물질의 기준치를 갖고 관리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없다. 법을 개정해 사람 건강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보건으로 옮겨야 한다. 중앙정부에서는 시작하고 있으나 아직 지방정부에서는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도 발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결과를 위해 환경부의 역학조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주민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익산시와 전라북도환경보건연구원에서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조사를 진행했어요. 근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마무리한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되죠. 오히려 역학조사를 핑계로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되고."

때문에 주민들은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역학조사가 진행되길 바라고 있다. 또한 철저한 조사와 감사를 통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따지고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박은수 <함께사는길> 기자 (ecoaction@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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