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넌 누구냐]⑤교사들은 왜 학종을 지지할까

윤석만 2018. 5. 2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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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의 수능, 타당성의 학종
처음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도입될 때만 해도 매우 개혁적인 입시 제도로 환영받았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키운, 보기 드문 정책 계승 사례였으니까요. 그때는 마치 학종 하나로 모든 입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기도 했죠.
그러나 현재 학종은 ‘깜깜이’, ‘금수저’ 전형으로 불립니다. 학종이 어떻게 ‘괴물’이 됐는지는 지난 회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지금 학종은 모든 입시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여겨지죠. 그렇다 보니 학생·학부모는 학종에 대해 매우 부정적 입장입니다. 지난해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실이 성인남녀 1022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4.8%가 ‘학종은 부모와 학교·담임·입학사정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불공정한 전형’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일러스트=박용석 화백]
이처럼 반대 여론이 높은 것은 평가의 공정성 때문입니다. 한국처럼 학벌의 영향력이 큰 사회에서 대학입시가 누구나 인정할 만큼의 객관적 잣대를 갖추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점까지 점수화가 가능한 수능은 객관성이 매우 높고, 상대적으로 공정한 시험으로 평가되죠. 하지만 학종은 애초부터 이런 점수화와 줄 세우기가 불가능합니다. 학생 개개인의 다양한 적성과 소질을 보기 위해 고안된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이 진학부장 등 고교 교사 419명을 조사한 결과(2016년) 응답자의 73%가 ‘학종은 학생 선발에 적합한 전형’이라고 밝혔습니다. 23.9%만 부정적이라고 답변했고요. 교사들은 왜 학생·학부모와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는 걸까요?
그래픽= 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학생·학부모가 공정성에 방점을 찍었다면 교사들은 타당성을 더욱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평가의 목적과 내용이 타당한가에 더 중점을 둔다는 의미죠. 따지고 보면 수능은 1970~1980년대 예비고사나 학력고사와 비슷한 시험입니다. ‘사고력’을 측정한다는 의미가 더해지긴 했지만, 최근엔 ‘EBS 연계 70%'처럼 외우는 시험과 다를 바 없죠. 즉, 수능과 같은 줄 세우기 시험으론 미래 인재에 필요한 역량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가 2007년 처음 도입된 것도 이런 이유에섭니다. 당시 서울대 김영정 입학관리본부장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당장 점수가 낮아도 환경이 좋아지면 훌륭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평가에 반영돼야 한다, 수능 1~2점이 입학 여부를 좌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지지했습니다. (중앙일보, 2007년 4월 2일 ‘서울대 입학사정관제 도입 추진’)
이처럼 학종은 목표 자체가 학생들의 줄 세우기를 벗어나자는 겁니다. 대신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 뽑자는 거죠. 그렇다 보니 수능처럼 명료한 합격·불합격의 기준이 없습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대학들은 대부분 학종과 비슷한 유형의 입시가 보편화돼 있습니다. 그 어떤 대학도 우리처럼 전국의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 평가한 점수만 갖고 입시를 치르진 않죠.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미래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학종과 같은 제도가 확산되는 것이 옳은 방향이긴 합니다. 다만 학종에 대한 신뢰성, 공정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교사들이 학종을 지지하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공교육 정상화 때문입니다. 과거 수능 중심으로 입시가 치러질 때 학교 교실은 붕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은 3분의 1도 안 됐고, 대부분 졸거나 딴짓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EBS 교재가 교과서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도 했죠. 학종이 활성화되기 전인 2011년의 고교 교실은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습니다.

서울 C고 2학년 교실. 수업이 한창이었지만 30여 명의 학생 중 절반이 잠을 자고 있었다.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거나 만화책을 읽고 심지어 과자를 꺼내먹는 등 딴짓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칠판에 필기를 하는 교사는 마치 ‘투명인간’ 같았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은 피해를 봤다. 서울 D고 자율학습 시간에서는 앞줄의 한 학생이 소란스러움을 참다못해 “조용히 하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조용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박모(17)군은 “선생님이 떠드는 것을 제지하지 못해 학생들끼리 다툴 때도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1년 11월 21일, 그늘진 공교육… 교사는 투명인간 교실은 수면실)
하지만 학종이 확대된 이후 교실 분위기는 싹 바뀌었습니다. 수능이라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합격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고교 전 과정이 입시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3학년 담임교사는 “학종이 확대되기 전엔 교사로서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학종을 지지하는 다수의 선생님은 학종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학종은 잘 시행만 된다면 교실을 정상화하고 미래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선발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학종에 대한 신뢰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적을 가진 입시 방식도 그 과정이 공정하거나 투명하지 못하다면 인재를 뽑는 대학도, 평가의 대상인 학생도 수긍할 수 없을 겁니다. 올 8월로 예정된 국가교육회의의 대입 개편안 발표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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