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이 영장심사때 한 마지막 말 "모두 내 책임.. 부하들은 잘못 없다"

박상기 기자 2017. 11. 1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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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오는 보고서 보았다는 V자 체크, 검찰은 사이버司에 댓글 지시한 것으로 봐
이상희 前 국방장관 "장관이 받는 보고서 하루 수십개..
그냥 '알았다' 정도인 V표시를 승인이나 지시로 볼 수 있나"

14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호송차에서 포승에 묶인 김관진(68·사진) 전 국방부 장관이 내렸다. 그는 지난 11일 '군(軍) 사이버사령부 정치 댓글 공작' 사건으로 구속됐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김 전 장관 측 관계자는 "구치소에서 잠을 거의 못 잔 듯하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의 영장실질심사는 지난 10일 있었다. 1시간여 만에 짧게 끝났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기 전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전 장관은 "이 건(件)이 죄가 된다면 장관이었던 내게 모든 책임이 있다. 부하들은 잘못이 없다. 부하들의 선처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정 농단 사건이 시작된 뒤 국민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수감자를 많이 봤다. 그중 스스로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 사람은 김 전 장관이 처음이다.

그는 '뼛속까지 무인(武人)'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그의 구속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군인'으로 통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합참의장을 지냈고, 2년여 공백을 거쳐 2010년 11월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장관에 발탁됐다. 부임 후 "북 도발 시 10배로 보복하라"고 지시하고, 실제 연평도에서 대규모 포격 훈련을 실시하자 북한은 그를 '보복 타격의 첫째 벌초 대상'으로 지목했다. 박근혜 정권은 그를 국가안보실장으로 중용했다. 그는 지난 10년 이상 대한민국 안보의 간판이었다. 그런 그가 정권 교체와 함께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

14일 오전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실로 향하며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밝힌 그의 주된 혐의는 군의 정치 개입을 금지한 군 형법 위반이다. 김 전 장관이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사이버사 심리전단에 각종 정치적 이슈에 대해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비난하는 댓글 공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2012년 초 사이버사 군무원 79명을 늘릴 때 '호남 출신은 뽑지 말라'고 지시한 혐의도 있다고 했다. 또 군무원 신규 채용 때 '3등급 신원 확인' 절차가 있는데 최상위 등급인 '1등급 신원 확인'을 하라고 지시한 데까지 직권 남용 혐의를 적용했다. '우리 편 사람'을 뽑기 위해 신원 확인 절차를 멋대로 바꿨다는 것이다.

검찰은 영장에 정치적 해석도 첨부했다. 2011년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여당이 패하자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김 전 장관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대북 사이버전(戰)을 벌인다면서 실제로는 사이버사 인원을 대폭 늘려 정치 활동을 했다는 얘기다.

김 전 장관 측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이버사령부는 그가 취임하기 10개월여 전인 2010년 1월 창설됐다. 김 전 장관은 거의 매일 올라오는 사이버사 보고서 표지에 'V' 표시를 해서 돌려보냈다고 한다. 'V'는 '봤다'는 의미다. 사이버사 보고서엔 사이버사가 매일 활동한 결과와 활동 계획 등이 담겼다. 댓글 활동을 통해 대응할 주제도 나열됐다. 그중에는 불법 정치 개입의 소지가 될 만한 정치적 이슈도 포함돼 있었다. 검찰은 이 V 표시가 '김 전 장관이 댓글 공작을 승인하고 구체적 사항까지 지시했다'는 의미라고 구속영장에 썼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그의 정치 개입 혐의가 소명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김 전 장관 측은 "매일 올라오는 보고 수십 건에 습관적으로 V 표시를 해서 내려보냈다"고 했다. "총선이나 대선, 제주 해군기지 건설, 한·미 FTA 등 검찰이 거론하는 정치적 현안에 대해 단 한 번도 구체적인 대응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장관이 받는 보고서만 하루에 수십 개가 넘고 읽을 시간도 부족하다"며 "서명이나 메모도 아닌 V 표시라면 일상 보고에 대해 그냥 '알았다'고 한 정도지 그걸 장관이 구체적으로 승인·지시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호남 출신을 배제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내가 호남 사람인데 호남을 빼라는 표현을 썼겠느냐"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전북 임실 출신이다. 3등급 신원 확인을 1등급으로 하라고 지시한 것 역시 "사이버전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만큼 신원이 확실한 사람을 쓰라는 의도에서 나온 지시일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사이버사 군무원 증편을 지시한 2012년 초 북한의 사이버 전력은 급속도로 강화됐다. 대남 선전 매체 '구국전선'은 신년 사설에서 '진보 세력의 대단합을 보다 높은 수준에서 이룩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남한 정부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야 한다'고 했다. 2013년 북한의 사이버전 인력은 7000명에 달했다. 우리 측 사이버사 군무원의 10배였다. 김정은은 2013년 군 간부들에게 "사이버 공격은 핵·미사일과 함께 우리 군의 만능 보검(寶劍)"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의 변호인은 "북한이 우리 측 총선과 대선을 노리고 사이버전을 벌이는데, 우리 측 사이버사도 대응 과정에서 일부 정치적 이슈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며 "경계가 모호하고 피아(彼我) 식별이 어려운 사이버전의 특수성이 김 전 장관의 유·무죄 판결에서 감안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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