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복을 망치고 있다고요?" 억울한 고궁앞 대여점들

김경년 입력 2017. 8. 13. 10:52 수정 2017. 8. 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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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종로구청 '우리옷 제대로 입기' 워크숍에 가보니

[오마이뉴스김경년 기자]

 11일 오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서서 즐거워하고 있다.
ⓒ 김경년
"우리가 한복의 정체성을 해치고 있다고요? 손님들이 전통한복 대신 다 퓨전한복만 달라는 걸 어떡합니까."

11일 오후 3시 서울시 종로구청에서 때아닌 '진짜한복' 논쟁이 벌어졌다. 종로구 일대의 한복대여점 27곳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워크숍이 열렸기 때문이다.

종로구가 이 같은 자리를 마련한 것은 최근 고궁 관람객들 사이에서 한복입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한복에 금박을 넣고 반짝이를 다는 등 과도하게 변형된 퓨전한복이 많아 우리옷이 가진 정체성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한복이 아니라 서양 드레스 같은 느낌이다"

실제 이날 오전 광화문에서 만난 시민 박아무개씨(60.서울시종로구)는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한복을 많이 입고 다녀 예쁘긴 한데 왠지 예전 우리가 입던 옷하곤 다른 느낌이다"고 말했다. 한국에 수년째 살고 있다는 일본인 요시다 유리(30)씨도 "대장금같은 예전 한류 드라마에서 보던 한복하곤 다르게 서양 드레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워크숍에서 '한복 제대로 입는 법'에 대해 특강을 한 박창숙 (사)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 회장은 대여점에서 빌려주는 한복의 사진을 보여주며 "디자인이 너무 많이 변형돼 한복인지 양장인지 도무지 모를 정도"라며 "한복은 문양과 기교로 입는 게 아닌 색깔을 단아하게 해서 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한복 입기를 우리옷의 기본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발전시켜갔으면 좋겠다"며 "다른 직업과 달리 우리의 문화를 파는 일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대여점들이 한복에 우리의 혼과 얼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한복대여점 업주들이 자신들이 국적없는 한복을 확산시키는 존재로 찍힌데 대한 억울함과 그동안 얘기 못한 속사정을 숨김없이 쏟아냈다.

한 업주는 먼저 "가게들은 우리 전통한복과 퓨전한복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는데, 손님들에게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퓨전한복을 입는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한복은 불편한 반면 퓨전한복이 촉감이 좋고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도 맞장구를 치며 "특히 외국인들은 퓨전한복이 원래 우리의 전통한복인 걸로 안다"며 "우리가 설명을 해주면 그때서야 전통한복으로 바꿔입는다"고 말했다. 한복대여점이 한복의 정체성을 해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전통을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주들은 특히 외국인들이 퓨전한복을 좋아하는 이유로 요즘 한류드라마들을 꼽았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이 단아한 전통한복 대신 화려한 퓨전한복을 입고 나오기 때문에 외국인들도 원래 그게 한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한 업주는 "한복의 정체성을 깨는 것은 드라마인데, 그것을 만드는 언론에서 거꾸로 우리를 그 원흉으로 지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언론이 고궁에서 한복입기가 확산된다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서양옷을 닮아간다는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키는 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11일 오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입장하고 있다.
ⓒ 김경년
"퓨전한복 대신 전통한복 입는 사람에게 인센티브 주자"

물론 대여업체 간 과당경쟁에 따른 한복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업주는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전에 시간당 최하 1만 원 이상 하던 것이 최근엔 시간당 5천 원까지 대여료가 떨어졌다"며, "대여점들간 협의체를 구성해서 출혈경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서는 '퓨전한복을 입는 사람보다 전통한복을 입는 사람에게 입장료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자', '한복 우대 음식점 소개 가이드북을 만들어달라', '고궁의 야간개장 시간을 늘려달라', '비싸게 샀지만 장롱 속에 있는 한복을 수선해서 외국의 교포 2~3세에게 싸게 판매하자'는 등의 풍성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앞에서 특강을 했던 박창숙 우리옷제대로입기협회 회장은 "전에는 대여업체들이 서로 경쟁하기 위해 디자인을 변형하거나 싼 소재를 써서 한복의 정체성 훼손현상이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상인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며 "오늘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유관기관과 협의해서 관광객들이 전통한복을 더 많이 입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고궁에서 한복입기가 자리잡게 된 것은 문화부가 지난 2013년 10월부터 한복을 입고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창덕궁, 조선왕릉, 종묘에 가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한 이후부터다.

그 결과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고궁은 해마다 입장객이 늘어 지난해 서울시 유명 관광지 가운데 입장객이 가장 많은 순위 각각 1, 3, 4위를 차지했다.

관광객들에게 한복을 빌려주는 한복 대여점도 우후죽순 늘어나 고궁 근처 70여 곳과 광장시장 60여 곳 등 현재 130여 곳이 성업중이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무분별하게 변형된 개량한복들이 마치 우리 고유의 한복인 듯 유통되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며 "이런 워크숍을 자주 가져 올바른 한복입기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복궁 근처 한 한복대여점 쇼윈도에 다양한 종류의 한복이 전시돼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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