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서 수혜자 안 되고 싶어 29년 만에 낙향

이은지 입력 2017. 8. 7. 01:21 수정 2017. 8. 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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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1호' 이윤택
부산 기장에 가마골소극장 재개관
후배 양성하며 제2의 연출가 인생
주무 장관이 몰랐다면 직무유기
무산된 오페라 내년에 선보일 것
지난달 재개관한 ‘가마골소극장’ 앞에 선 이윤택 예술감독. 그는 “좌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 시민담론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서 피해를 봤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에서 수혜자가 되고 싶지 않아 무조건 낙향했다.”

연출가의 꿈을 안고 1988년 상경한지 29년만인 지난 7월 결국 고향 부산(기장군)으로 귀향을 결행한 연출가 이윤택(65)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본지 인터뷰에서 밝힌 귀향의 변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당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1호’로 지목됐던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지난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정부지원 사업에서 매번 배제됐다고 한다. 특히 그의 연출 인생 30년을 맞아 지난해 선보이려던 오페라 ‘꽃을 바치는 시간’을 무대에 올리려 했으나 무산됐다.

고전향가인 ‘헌화가’를 각색한 이 작품은 2015년 문체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 문화창작기금 희곡 분야에서 100점 만점으로 1위에 올랐지만, 당시 박 정부의 외압으로 정부지원 대상에서 최종 탈락했다고 한다.

권력의 문화계 탄압에 따른 외풍을 혹독하게 겪은 이 감독은 아직도 문화 불모지로 불리는 부산에서 시민문화운동과 후배 양성을 목표로 제2의 연출가 인생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부산시 일광면 기장군에 ‘가마골소극장’을 지난 7월 7일 재개관했다. 재정 문제로 2013년 1월 폐관한 이후 4년 반만이다. 가마골소극장은 이 감독이 1986년 연희단거리패를 만들면서 함께 태동한 전용 극장이다.

재개관 한 달을 맞아 이 감독을 가마골소극장에서 만나 지난 정부의 문화계 탄압 실상, 귀향 이유, 앞으로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 이 감독은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고(25회) 동창이다.

Q : 낙향을 결심한 이유는.

A : "더 이상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제2의 연출가 인생은 시민문화 운동과 후배양성에 주력할 것이다.”

Q : 언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알았나.

A : "2013년 8월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취임하고, 2014년부터 국가 지원사업에 선정되고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락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 뒤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 배제된 ‘문화인 명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체부의 한 공무원이 고위 간부에게 1명만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윤택’을 이야기했다고 들었다.”

Q : 그 당시 심경은.

A : "게으르고 느슨해졌던 내 영혼을 역설적으로 각성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정치는 결과를 중시하고 문화는 과정의 정당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마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저항정신을 잠시 잊고 살았는데 블랙리스트 존재를 알고 새삼스럽게 정권을 향해 날이 섰다.”

Q : 최근 법원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1심 판결을 어떻게 보나.

A : "당시 문체부 장관(조윤선)이 블랙리스트를 보고 받지 못해 몰랐다면 주무장관으로서 그 자체가 직무유기라고 본다. 사람과 문화에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바람에 세속적인 최순실에게 휘둘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Q : 정권이 바뀌고, 가마골소극장이 재개관했다. 변화를 체감하나.

A : "2015년부터 나에게 경찰 사찰이 붙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싹 사라졌다. 지난해 10월 내가 이끌던 ‘30스튜디오’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명륜동으로 옮겼을 때 혜화경찰서 보안과장이 화분까지 보내줬다. 지난달에는 30스튜디오와 가마골소극장에 특성화극장 지원사업 명목으로 각각 4000만원과 3000만원의 지원금이 나왔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블랙리스트에 올라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올리지 못했던 ‘꽃을 바치는 시간’을 내년에 오페라로 선보일 계획이다. 꽃을 바치는 것은 사랑을 의미한다. 낡은 세상이 가고 사랑의 시대가 온다는 메시지를 담아 상처받은 국민들을 치유해주고 싶다.” 부산=글·사진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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