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브리핑] '신영복, 매월 마지막 토요일..'
뉴스룸 앵커브리핑입니다.
이별은… 마음 한 켠에 미뤄뒀던 오래된 추억들을 되살리곤 합니다.
지난 주말…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의 수필 < 청구회 추억 >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 청구회 추억 >은 감옥에 들어가기 2년 전인 1966년 스물다섯의 청년 신영복과 당시는 국민학생이라 불리었던 초등학생 또래 꼬마 6명의 이야기입니다.
1966년 봄. 서오릉으로 문학회 소풍을 갔던 젊은 신영복은 허름한 옷차림의 꼬마들을 만나게 됩니다.
꼬마들 역시 왕복 버스회수권 두 장. 일금 10원. 그리고 점심밥 해먹을 쌀과 찬을 보자기에 싸서 소풍을 가는 길이었지요.
아이들과 친해진 선생은 사진을 찍고. 주소를 적어주고 한 묶음의 진달래꽃을 선물받은 뒤 헤어집니다.
이 짧은 한나절의 사귐은 보름 뒤 배달된 편지 한 통으로 인해 계속 이어지게 되지요.
"요즈음 선생님은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말하던 클럽 이름 좀 지어주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그럼 답장 바람"
신영복 선생과 청구국민학생 여섯 명.
청구회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장충체육관 앞이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매달 자신의 힘으로 번 10원씩을 함께 모아 저금했고 거지왕자. 플루타크 영웅전 같은 책도 함께 읽었던 청구회의 추억.
그러나 만남은 선생이 영어의 몸이 되면서 중단되어야만 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쓴 이 글은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거리는 어느 헌병의 도움으로 세상 밖으로 전해졌다 합니다.
아이들이 혹시나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던 사형수는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로 된 휴지 위에 한 장 한 장. 그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당연한 무엇이었고 나이와 가진 것의 많고 적음. 배움의 차이 같은 세상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약속이 버려지는 시대. 사람의 선의가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왜곡되고 각자도생이 운위되는 비정한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은 어쩌면 그래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또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머지않아 봄이 다시 찾아오면 서오릉에는 맑은 진달래꽃이 다시 필 겁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매월 마지막 토요일 장충체육관 앞 눈앞에 선한 그 처마 밑과 층층대 아래에 서서 그와의 약속을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
오늘(18일)의 앵커브리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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