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향의 스타일 아이콘 <10>] 솔로 데뷔와 동시에 다시 열린 ‘제니의 시대’
제니 루비 제인(Jennie Ruby Jane·제니의 영어 이름)은 패션 세계에서 하나의 장르가 됐다. 수많은 패션 아이템을 품절시키고, 단번에 전 세계에 바이럴의 폭풍을 일으킨다. 제니의 스타일만을 분석하고 따라 하기 위한 수많은 소셜미디어(SNS) 계정이 있으며, 팬은 제니의 모든 것을 추앙한다. 제니의 이러한 파워는 사회·경제적인 영향력이 있어 ‘제니 효과(Jennie Effect)’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 패션 일간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WWD)는 블랙핑크 멤버 시절 제니의 SNS 게시물 하나가 약 210만달러(약 30억8700만원)의 가치를 지닌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3월 7일, 제니는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독립 기획사 OA엔터테인먼트(ODD ATELIER) 설립 후 첫 솔로 정규 앨범 ‘루비(Ruby)’를 발매했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제니는 역대급 마케팅을 펼쳤다. 서울뿐 아니라 뉴욕, LA 등 대도시의 주요 옥외 광고판을 루비 빛으로 물들였고, 모든 유명 토크쇼 게스트로 출연했다. 유튜브에서 제니 관련 영상을 한 번 보면, 알고리즘이 끝없이 수많은 제니 인터뷰 영상을 파도처럼 일으킬 정도였다.
이때도 제니 효과가 발휘됐다. 미국 인기 토크쇼 ‘제니퍼 허드슨 쇼’에 출연한 제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과자를 소개하며, 제니퍼 허드슨과 함께 시식했다. 농심 새우깡과 바나나킥, 오리온 고래밥을 소개했는데, 제니는 가장 좋아하는 과자로 바나나킥을 손꼽았다. 바나나킥은 바로 대표 검색 엔진의 검색어 상위로 떠올랐고, 농심 주가도 함께 4일 연속 상승했다. 그사이 불어난 시총만 2640억원에 달했다. 제니의 선택이 전 세계 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패션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제니 효과 마법을 펼치고 있다.
제니는 K팝 아티스트로 슈퍼스타가 됐고, 이젠 가장 영향력 있는 슈퍼 아이콘으로 동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제니의 영향력이 파워풀한 건, 단순하게 시대 트렌드를 보여주는 모델을 뛰어넘는 스타일의 실험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실험적인 창의력은 샤넬과 프렌드십에서부터 빛났다. 2017년부터 샤넬 앰버서더로 공식 활동을 시작한 이후, 제니는 ‘인간 샤넬’이라 불리며 샤넬에 젊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지상 최대의 패션 축제라 불리는 멧 갈라(MET Gala·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의상 연구소 코스튬 인스티튜트를 위한 연례 자선 행사)에서 샤넬 빈티지 드레스를 착용하고 광고 캠페인 속에서 보여준 다면적인 모습은 그녀가 브랜드를 대표하는 페르소나 이상이며, 샤넬 하우스 아카이브를 오늘날의 에디션으로 번역하는 스타일 해석자임을 입증해 왔다. 2023년 제니가 멧 갈라에서 착용한 샤넬 빈티지 드레스는 단숨에 리셀 마켓 검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지금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스타 디자이너 자크뮈스는 자신의 뮤즈인 제니를 15주년 기념 쇼의 피날레 모델로 초대했다. 이탈리아 카프리섬에서 그림 같은 지중해를 배경으로, 제니는 완벽한 테일러링의 블랙 홀터넥 드레스에 지브라 프린트 샌들, 터콰이즈 블루 클러치백을 매치시키고, 우아하게 런웨이를 행진하며 자크뮈스 15년 아카이브에 기록될 기념비적인 패션 신을 남겼다.
‘제니 룩’은 철저히 자기화한 스타일이다. 누구에게나 어울릴 수 있지만, 누구도 똑같이 소화할 수 없는 룩이다. ‘어떻게 보일까’보다는 ‘어떻게 느끼고 싶은가’에 대한 태도가 우선한다. 심플 화이트 티셔츠와 데님 팬츠에 리본 하나를 더하거나, 무채색 룩에 예기치 못한 컬러를 얹거나, 보디라인을 강조하는 니트 톱과 스니커즈를 대조시키는 등, 실험적인 스타일링을 통해 소녀성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제니 룩을 창조해 왔다. 트렌드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감각을 먼저 세계에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제니 룩은 패션계와 팬 사이에 종종 치열한 패션 토론을 일으키기도 한다.
첫 솔로 정규 앨범 ‘루비’를 발표하며 시작된 투어의 첫 공연.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린 ‘더 루비 익스피어리언스’ 패션이 단 하루 만에 전 세계를 시끄럽게 했다. 논란의 패션은 앨범 수록곡 ‘필터(Filter)’의 무대의상이다. 가슴 부분이 V 자로 깊게 파인 베테세(VETTESE)의 보디 슈트를 입고 가슴 패드를 착용하지 않아, 춤을 추는 동안 노출이 불가피했다. ‘곡을 상징하는 의상일 뿐이다. 해외 가수들은 더 노출이 심한 의상도 입는데 왜 제니에게만 엄격한가’라고 지지하는 팀과 ‘노출이 과하다’라며 비난하는 팀이 팽팽하게 설전을 펼쳤다. 논란을 의식하기라도 한듯, 두 번째 뉴욕 공연에선 다른 의상으로 교체했다. 단 1분 만의 공연 영상으로 단 하루 만에 전 세계 SNS를 장악했으니, 의상에 대한 논란을 떠나 제니의 영향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모든 논란을 뛰어넘고, ‘루비’는 발매 첫 주 66만 장 넘게 팔렸다. 올해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앨범 가운데 가장 많은 첫 주 판매량이다. ‘루비’는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 2주 연속 차트인 했고,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like JENNIE)’는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차트와 글로벌 200차트에서 연속 톱 10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3월 31일, 영향력 있는 여성 뮤지션을 선정하는 ‘빌보드 위민 인 뮤직 2025’에서 ‘글로벌 포스상’을 받았다. 솔로로 4월 13일과 20일에 미국 최대 규모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물론 시상식 드레스도 금세 전 세계에 바이럴됐다. 가슴 부분의 하트 모양 절개가 특징인 짙은 루비 빛 드레스는 레바논 디자이너 주하이르 무라드의 2025년 가을·겨울 컬렉션 제품이다. 1억원대 ‘유니폼 오브젝트’ 루비 펜던트 목걸이, 1500만원대의 조셉 세이디언 앤드 손즈(Joseph Saidian & Sons) 빈티지 골드 반지, 팔찌에서 반지로 이어지는 에피(EFFY)의 핸드 체인도 함께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루비의 붉은 물결에 이어, 제니는 다시 ‘샤넬 25 핸드백’ 캠페인으로 도심 속 메인 옥외 광고판을 도배하고 있다. 샤넬 이미지를 ‘영 & 쿨(Yong & Cool)’로 변환시켜 온 제니는 샤넬 25 핸드백 캠페인에서도 현재의 제니다운 ‘인간 샤넬 룩’을 선보이고 있다.
제니는 럭셔리와 스트리트,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 클래식과 Y2K의 균형을 감각적으로 조율한 가장 동시대적인 스타일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네가 만든 규칙? 필요 없어, 내 스타일 그대로. 내가 등장하면 분위기부터 바꿔…길은 열어”라고 외친 앨범 ‘루비’ 수록곡 ‘엑스트라엘(ExtraL)’의 가사가 제니의 스타일 철학을 말해준다. 2025년 3월 솔로 데뷔와 동시에 다시 열린 제니의 시대. ‘제니’라는 이 매력적인 장르이자 브랜드는 지금도 계속 가치 상승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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