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순이처럼 야무진 당신···아이유 “시집 한 권 같은 인생이라면, 성공 아닐까요”
1950년대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이와 관식이의 일생을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지난달 28일 16회까지 공개되며 막을 내렸다. 시대를 따라 굴곡진 생을 살면서도 매 순간 서로를 애틋해하며 행복을 일군 부부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함께 울고 웃었다.
광례(염혜란)의 딸이자 금명(아이유)의 엄마. 동시에 자신만의 소녀다움을 잃지 않는 애순의 청년기와 중·노년기를 배우 아이유와 문소리가 나눠 맡았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만난 두 배우는 이 작품을 연기하며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오애순은 꿈이 큰 요먕진(야무진) 아이였다. “급장도, 계장도, 대통령도 다 내가 해먹을 건데?”라는 말을 밉지 않게 한다. 선거에서 제일 많은 표를 얻었지만, 선생님이 학교에 빵을 돌린 부잣집 아이를 애순 대신 급장으로 앉힐 때엔 참지 않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 버린다.
배우 겸 가수 아이유(본명 이지은·32)는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의 10대부터 30대까지를 연기했다. 세월의 변화에 돌도 깎여나가듯이, 애순의 성격도 나이듦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유는 그중 유년기 애순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떠올렸다고 한다. “애순이는 지기 싫어하고 욕심 많은 아이인데 또 욕심만 부리며 살아가지는 않거든요. ‘나 이 마음 알아,’ 싶더라고요.”
그래서일까. 대본을 처음 받아 읽을 때부터 그는 청년 애순이 주로 나오는 1~4부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아이유는 “이런 대본이 나한테 오다니, 싶었다”면서 “후루룩 끝까지 읽고 너무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애순의 일대기를 배우 문소리와 나눠 맡으면서, 애순의 딸 금명 역을 1인 2역으로 소화해야 했다. 부담이 되지만, 도전하고 싶은 지점이 많은 대본이었다고 한다. “10개가 걱정이 되면 20개를 준비를 해가는 식이었어요.” 문소리 배우와 대본을 바꿔서 대사를 읽어보기도 하고, 주변 배우와 제작진에게 의견을 물어가며 캐릭터를 잡아나갔다고 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과 관식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이지만, 내레이션은 주로 딸 금명이 맡는다. 금명은 경제적으로 아주 풍족하지는 않은 집안에서 사랑과 지원을 받고 큰다. 장녀의 책임감이 큰 그는 부모님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짜증’으로 표출하곤 한다. 아이유는 “금명이는 극에서 보여지지 않는 빈칸이 많은 인물이지만 내레이션에서 설명해주는 게 많았다”면서 “행동 이후 바로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와서, ‘이런 후회를 하는 인물이구나. 나도 이랬던 적 있지’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인물을 표현해 낸 아이유는 특히 애순의 삶에 존경을 표했다. 애순은 유년기에 부모님을 잃고, 모진 시집살이에 자식을 잃는 슬픔을 겪는 등 곡절을 겪는다. 아이유는 그런 애순을 “지나가는 그늘을 만나지만 굴하지 않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힘으로 끝내 햇볕을 찾아 나오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까지 다 해먹을 거라던 애순은 제주에 눌러 앉아 관식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로 살게 된다. 시인의 꿈도 오래 접어뒀다. “누군가는 ‘뭘 이뤘냐’고 얘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내 인생은 이렇게 시집 한 권 같았어. 한 장도 허투루 쓴게 없는 보물이었어’라고 얘기할 수 있다면 충실하게 잘 산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유가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애순이는 정말 성공한 삶을 살았죠.”
뿐만 아니라 작품에 나오는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는 가수 아이유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를 비롯해 아이유에게 영향을 미친 여성들에 대한 헌사를 담은 노래 ‘Shh..’(2024)가 구체화될 수 있었던 건 이 작품 덕택이다. 그는 “마음 속만 맴돌던 테마가 음악이 되기까지 드라마의 영향이 컸다”면서 “따뜻하기보다 강인한 사운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아이유는 “살민 살아진다(살면 살아진다)”는 “결국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작품의 주요 메시지로 꼽았다. 그런 의미에서 관식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다시 삶을 살아가는 애순을 보여준 엔딩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슬픔을 온전히 겪은 후, 애순이가 다시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고 책상 앞에 앉아서 시를 마저 다 쓰잖아요. 그리곤 관식이에게 ‘여보 나 이거 다 썼다’ 자랑하죠. 관식이가 떠난 이후에도 애순이는 잘 살아갔다는 걸 보여주는 게 좋았어요.”
애순이 말년에 내는 시집의 이름은 다름 아닌 <폭싹 속았수다>다. 아이유가 자신의 ‘20-30대’라는 시집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어라 부르고 싶을까.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연필을 다시 깎겠습니다’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20대 내내 글을 쓰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30대가 되어서 날카로웠던 연필심이 조금 뭉툭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 재미도 있거든요. 하지만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다시 재정비를 해보고 싶어요.” 제 욕심을 순수하고 야무지게 드러낼 줄 아는 10대 애순이처럼, 아이유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231712001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61056?type=journalists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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