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 수익, 가치투자의 대가 이채원이 조언한 밸류업 투자법

대담=반준환 증권부장, 정리=김사무엘 기자, 촬영=김윤하PD 2024. 4. 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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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우리나라에서 가치투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이다. 그는 "한국증시에서 가치투자는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저평가 가치주 위주의 투자로 2000년부터 10여년 간 누적 1400%의 수익률을 올리며 가치투자로도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 의장이 평소 주장했던 가치투자와 맥락이 닿아 있다. 주주환원을 확대하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높여 기업가치를 개선하는 방향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요인들이 하나씩 해소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치투자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기대만큼 우려도 많다. 기업의 경영 활동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밸류업 프로그램이 효과를 낼 만큼 확실한 정책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코스피 밸류업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이채원 의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어떻게 평가하나.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 기업들의 가치를 높여서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것은 좋은 취지라 생각한다. 정책의 일관성이나 지속성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밸류업의 성공 여부가 갈릴 것 같다. 일단 외국인들은 굉장히 환호하는 상황이다. 외국인 순매수 금액이 올해 들어서만 14조원 가량인데 아마 이 기간 역대 최대 규모인 것 같다. 국내에서는 반응이 싸늘하다. '알맹이가 없다', '실효성이 없다' 이런 비판이다. 크게 기대를 안 했지만 최근에 금융당국이 상법 개정과 세제 개편에 관한 말도 꺼냈다. 상당히 기대 중이다.

-일본은 증시 부양책이 효과를 내면서 닛케이 지수가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한국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나.
▶일본의 사례와 자꾸 비교하는데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일본은 증시 개선 정책을 10년 전부터 추진해왔고 엔저에 힘입은 경제 성장이 증시에 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런 차이를 감안해도 우리나라 증시 역시 긍정적으로 볼 요소가 있다. 지난해에는 국내 상장사들의 순이익 증가율이 전세계에서 뒤에서 두번째였다. 실적이 반토막 났다. 그런데 올해 시장의 컨센서스(전망치 평균)는 전년 대비 이익이 50% 늘어난다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압도적인 1위다. 실적 개선과 함께 밸류업이 시행된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

또 하나 주목하는 건 세금 문제다. 특히 배당 소득 분리과세가 이슈가 되는데 만약 이게 시행된다면 세금 감면 효과뿐 아니라 배당이 늘어나는 효과도 클 것 같다. 지금 한국 증시의 배당성향(순이익 대비 배당금 비율)이 15% 정도인데 일본이 30%고 대만은 50%다. 미국은 30% 정도인데 자사주 매입까지 포함하면 주주환원율은 90%에 달한다. 세금 문제가 잘 해결된다면 한국의 배당성향은 지금의 2배 정도 성장할 여력이 있다고 본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늘리는 방식이 오히려 기업의 성장 동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상장 기업은 의무와 책임이라는 게 있다. 회사의 정체성을 밝혀야 한다는 거다. 예를들어 어떤 기업은 배당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 투자가 급하거나 차입금을 갚아야 한다면 배당하면 안된다. 회사가 갖고 있는 자본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보유 현금으로 배당을 할지 투자를 할지, 투자를 한다면 어디에 얼마나 할 것인지 등을 투자자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소통을 잘 안 하니까 투자자들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런 계획도 얘기하지 않고 현금만 잔뜩 들고 있으면 회계학에서 얘기하는 소위 에이전시 코스트(대리인 비용) 이슈가 발생한다. 회사의 주인은 주주고 경영진은 주주를 대신해서 회사를 경영하는 건데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과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는 투자를 해서 ROE(자기자본이익률)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면 배당을 하거나 자사주 매입·소각을 하는게 맞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보호되지 않다는 문제다. 지분 1%를 갖고 있는 주주는 1% 만큼, 10%를 갖고 있는 주주는 10% 만큼 권리를 가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20~30%를 보유한 일부 지배주주가 70~80%를 갖고 있는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가 간혹 생긴다. 알짜 사업을 물적분할 한다든지, 기업가치가 낮은 회사와 합병을 한다든지 하는 문제다. 원인은 상법에 있다. 상법 제382조3항에 보면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돼 있다. 주주에 손해를 끼쳐도 불법이 아니다. 거버넌스(지배구조)의 후진성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내 주식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글로벌 트렌드는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가고 있다. M&A(기업 인수·합병) 할 때는 일반 주주의 주식도 대주주와 같은 가격으로 매수해 준다. 이런 문제들이 해소돼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 코스피 지수는 얼마나 오를 것으로 보나.
▶현재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는 1~1.1배 수준이다. 일본이 1.5배고 미국은 3~4배가 넘는다. PBR이 적어도 일본 수준 정도는 가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코스피는 지금 수준(인터뷰일인 3월25일 기준 2737.57)에서도 20~30% 정도는 올라야 한다.

-지난 10여년 간 저금리 시대에서는 성장주가 주목받고 가치투자는 외면당했다. 지금같은 고금리 환경에서도 여전히 성장주는 잘 나가는 것 같다.
▶어떤 국면에서도 좋은 성장주, 좋은 가치주는 성과를 냈다. 다만 이제는 전반적인 환경 자체가 변했다. 저금리 시대에는 신사업을 하기 너무 편했다. 금리도 싸고 IPO(기업공개)도 잘 됐다. 그러나 이제는 금리도 많이 올랐고 돈을 빌릴 데가 없다. 지금은 차입금이 없고 현금이 많으며 좋은 부지에 좋은 공장과 설비를 보유한 기업이 유리한 국면이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제로금리 시기에 채권 금리는 1%대였다. 금리의 역수가 PER(주가순이익비율)이다. 금리 1%면 채권의 PER는 100배다. 위험자산인 주식은 채권보다 PER이 낮아야 한다. 채권이 100배라면 주식은 50배가 적당하다. 성장주가 잘 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지금 채권 금리는 4%대고 PER는 25배다. 주식 PER는 그 절반인 12.5배가 된다. 이제는 50배, 100배짜리 성장주가 비싸 보일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은 제로금리 시대로 가긴 쉽지 않다. 성장주보다는 가치주에 유리한 환경이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좋은 종목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정량 분석을 먼저 한다. PER, PBR, 배당수익률 등을 기본적으로 보고 그 이후에 정성 분석을 한다. 제일 중요한 건 비즈니스 모델이다. 얼마나 성장하고 이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등이다. 그 다음에 지배구조를 본다. 경영진이 우수한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투자자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지 등을 점검한다. PER가 높더라도 경쟁력이 우수하고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으면 투자한다. 반대로 PBR가 낮아도 성장성이 없고 지배구조가 좋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지금 주목할 업종은.
▶처음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되면서 저PBR 종목들이 주목받았는데 이는 한계가 있다. PBR가 낮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PBR뿐만 아니라 PER도 같이 봐야 한다. PBR과 PER 모두 낮은 업종이 금융이다. 최근에 금융업종 주가가 많이 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지주사 역시 전반적으로 저평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 지주사는 모든 자회사를 거드린 알짜배기 회사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주사 가치를 분석할 때 계열사 지분을 30~50%씩 할인한다. 중복 상장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ETF(상장지수펀드)는 왜 제 값에 거래되나. 지주사 디스카운트는 맞지 않다고 본다.

-과거 삼성전자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 삼성전자는 어떻게 평가하나.
▶1년에 40조~50조원씩 벌던 회사인데 지난해 이익이 급감했다. 올해 주가는 이익이 얼마나 회복되느냐에 달렸다. 현재 삼성전자 PBR는 1.5배고 PER은 과거 40조원 이익을 기준으로 하면 12배 정도다. 이 기준으로 보면 현재 주가는 적정 수준이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이 얼마나 회복할지, HBM(고대역폭 메모리)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 여부가 관건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치는 이미 주가에 절반 정도 반영돼 있는 것 같다.

-2020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에서 물러나고 2021년 라이프자산운용을 만들었다. 이후 성과는?
▶라이프자산운용 펀드(라이프한국기업ESG향상)가 처음 설정된 시기가 2021년7월이다. 이때 코스피 지수가 3300을 넘었다. 시기상으로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현재까지 누적 50% 정도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2022년 코스피 지수가 25% 급락했는데 우리 펀드는 0.9%로 플러스 수익을 냈다. 주식 롱온리(매수 전략) 펀드 중에서는 유일한 플러스였다. 지배구조가 좋고 주주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가치주에만 20여개 종목 집중 투자한 것이 도움이 됐다.

-라이프자산운용의 투자 철학은 무엇인가.
▶라이프(LIFE)는 '롱텀 인베스트먼트 포 에브리원'(Longterm Investment For Everyone)의 약자다. 모두를 위한 장기투자라는 의미다. 그 기반은 가치투자다. 한 단계 진보된 형태의 가치투자를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대표적인 게 주주협력주의다. 주주행동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인 주주행동주의는 주식을 먼저 사고 그 뒤에 주주환원 확대 등을 요구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주주협력주의는 주식을 사기 전에 먼저 기업을 만나고 기업가치를 제고할 의지가 있는 기업에만 투자하는 것이다. 기업에 자금이 필요하면 도움을 주고 IR(기업홍보) 활동을 지원해 줄 수도 있다. 기업과 같이 상생하고 성장해 나가는 방식이다.

대담=반준환 증권부장, 정리=김사무엘 기자, 촬영=김윤하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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