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솥밥 먹던 최민식 한석규를 가른 건 찰리박 찬스와 뒷배 자본[무비와치]

김범석 2024. 3. 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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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문’(2019년) 두 주인공 최민식(왼쪽)과 한석규(뉴스엔DB)
영화 ‘파묘’ 주인공 최민식(제공 쇼박스)
배우 한석규(제공 클로버컴퍼니)

[뉴스엔 김범석 기자]

동국대 연영과 선후배인 최민식과 한석규는 1990년대 후반 같은 소속사였다. 한석규의 친형 한선규가 사장이었고 그 회사 신인이 연우무대 출신 송강호였다. 세 명이 ‘넘버3’에 이어 나란히 출연한 영화가 1999년 개봉한 한국 블록버스터 1호 영화 ‘쉬리’다. 당시 개런티가 가장 비쌌던 한석규가 주연으로 발탁되며 같은 회사 최민식 송강호가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그 무렵 대학로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꾸숑’으로 얼굴을 알린 최민식은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서 주연 한석규를 잡아먹으며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실제 남파 특수부대원처럼 다부진 몸을 만들고 메소드 연기와 아우라로 한석규의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송강호는 이 작품에서 한석규의 안기부 부하 요원이었다.

25년이 흐른 지금. 세 배우는 모두 각자 위치에서 내로라하는 국민 배우가 돼 있다. ‘기생충’으로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송강호는 더 말하면 입 아프고, 사채 광고 출연 등 몇 차례 부침을 겪은 최민식도 천만을 향하는 ‘파묘’로 60대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에겐 ‘명량’이 빚어낸 1,761만이라는, 좀처럼 깨지지 않을 국내 최다 관객 기록까지 갖고 있다.

한석규는 어떨까.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지만, 한솥밥 먹던 두 사람의 필모와 성과에 비하면 다소 빈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너무 일찍 대박이 난 초년 출세자의 통과의례일까. 과연 어느 변곡점에서 이런 각도 차이가 생겼을까. 영화 관계자들은 이들이 각자 협업한 감독과 제작사, 프로듀서에서 그 차이가 벌어졌다고 본다. 결국 어느 자본과 손잡았느냐에서 보통, 우등, 특급으로 갈렸다는 얘기다.

최민식 송강호는 2000년대 초반 찰리박이라 불린 박찬욱과 손잡으며 국내외로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이에 비해 한석규는 충무로 토종 자본인 시네마서비스, 강제규 필름과 주로 작업했는데 이들의 하락으로 더는 확장하지 못했다. 최민식은 2002년 임권택의 ‘취화선’으로 세 배우 중 가장 먼저 칸영화제를 밟았는데 이듬해 박찬욱의 ‘올드보이’로 단번에 주목받는 아시아 배우로 발돋움했다. 송강호 역시 CJ가 밀어주던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복수는 나의 것’ ‘박쥐’에 연거푸 출연하며 노는 물과 체급이 달라졌다.

최민식이 한재덕, 임승용이라는 더듬이 좋은 똘똘한 프로듀서들과 근거리를 유지하며 새 작품을 모색했다면, 송강호는 박찬욱과 김지운(‘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거미집’)에 이어 봉준호라는 거물과 인연을 맺게 된다. ‘살인의 추억’으로 가르마를 탄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네 작품을 함께 했다.

30년 경력의 한 영화사 대표는 “세 배우의 연기력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날 만큼 모두 빼어난 수준”이라며 “하지만 어느 감독에게 픽업되고, 뒤에 어느 자본이 버티고 있느냐에 따라 연기자 인생이 바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만약 박찬욱이 한석규를 찜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지 흥미롭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프로듀서는 “운칠기삼의 영역이며 배우와 감독의 케미, 성향 차이도 존재한다”고 했다. 그는 “감독과 배우가 서로 리스펙하면서도 현장에선 서로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일 때가 있다”며 “감독들은 배우에게 내재해 있는 뭔가를 계속 끄집어내려 하는데 일찌감치 당대 최고가 된 한석규에게는 그걸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석규에게는 감독이 새로 채워 넣을 도화지의 여백이 많지 않았을 거라는 시각이다.

지금은 없어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삼화모텔은 한때 강제규 박찬욱 류승완 등 당대 최고 감독들이 몇 달간 숙식하며 시나리오를 쓰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을 열심히 드나들며 소주잔을 기울인 최민식과 크랭크 업 이후 편집실까지 간식을 사 들고 가는 송강호에 비해 한석규는 혼자 낚시를 하는 강태공으로 유명하다.

스스로 세상과 격리돼 유유자적을 즐기는 한갓진 선비의 모습이다. 두 배우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영업력이 오늘날 격차가 벌어진 원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석규가 자신의 최고 흥행작인 ‘베를린’(716만)을 뛰어넘어 다시 한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서늘한’ 배우가 되길 기원한다.

뉴스엔 김범석 bskim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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