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수학교육

기자 2024. 1. 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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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라디오에서 어떤 교육학자가 “모든 사람이 어려운 수학을 다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학은 중학교 과정까지만 누구나 공부하게 하고 고등학교부터는 이공계로 진학할 학생들만 공부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회에 나가서 써먹을 일도 없는 고난도의 수학을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사실 수학 부진아들이 겪는 고통은 아주 크다. 특히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수학은 기초소양교육의 핵심

그동안 “왜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어려운 수학을 공부하게 하나요?”와 같은 질문을 종종 받아왔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대개 농담조로 “간단한 답과 복잡한 답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듣고 싶으세요?”라고 되물어본다. 그러면 물론 질문자는 간단한 답을 먼저 원한다. 나의 간단한 답은 ‘전 세계에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수학 공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회지도층 인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수학을 이공계로 진학할 학생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공부하게 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들도 이렇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수학을 세계 모든 나라에서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을까?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수학교육을 언어교육과 더불어 기초소양교육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요즘에는 수학을 가르치는 목적이 ‘수학적 지식’을 얻게 하는 것보다는 ‘사고력’을 키우게 하는 것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요즘에는 교육의 목표와 방법론에 대한 고찰은 사라지고 ‘사교육 억제’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교육은 그야말로 ‘블랙홀’이다. 교육에 대한 모든 이슈와 논의를 사교육이 빨아들인다. 그런데 사교육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제각각이다. 나는 늘 “사교육 문제의 핵심은 대입이 아니라 고입에 있다”라는 말을 하지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는 대학입시에서 사교육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입에 국한하여 이야기해 보자면, 그동안의 해법은 언론, 사회단체, 교육부 등이 주도하여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내용을 축소하고, 수능에서 문제를 쉽게 출제하고, 대입에서 학교 내신 반영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 방향을 잡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사교육 시장은 계속 커져 왔다. 그것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쉽고 예상 가능한 문제만 출제할수록 사교육을 통해 문제풀이법을 배우거나 쉬운 것을 틀리지 않는 훈련을 받은 학생들이 순진하게 학교 수업에만 충실했던 학생들보다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개편이 대입 자율화 촉진 기대도

최근에 국가교육위원회가 ‘심화수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2028학년도 수능부터 그동안 선택으로나마 유지되던 미적분Ⅱ와 기하를 없애겠다고 발표하였다. 지금까지 수학교과 내용을 계속 줄여 왔는데 또 이렇게 줄이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개편안이 앞으로 우리의 과학기술을 이끌어 나갈 인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모르지만, 나는 “심화수학이 수능에서는 빠지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좀 더 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또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 심도 있게 배우면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수능에서 벗어난 과목을 고등학교에서 정상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또한 심화수학이나 물리를 대학 진학 후에 배우는 것도 매우 힘들다는 것을 교수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한 과목들은 상당한 수준의 노력과 문제풀이가 수반되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법인데 대학생들은 기초교양과목들을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이번 개편으로 인해 이공계 학생들의 기초 실력이 저하될 것이라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런 염려로 인해 대학입시의 틀이 바뀔지도 모른다. 심화수학이나 물리를 제대로 공부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대학들이 논술고사나 심층면접의 비중을 확대하거나 수능의 비중을 축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대학입시에서 대학 자율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져왔는데 이번 개편이 자율화를 촉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동안 수능과 같은 선다형 시험을 통해 학생들 줄세우기를 하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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