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가 뭐죠?” 수능 최초 만점자 오승은, 지금 뭐하나 봤더니

이가영 기자 2024. 1. 4. 1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한성과학고 3학년생이던 오승은양이 1998년 12월 ‘수능 만점’ 소식을 들은 후 부모님과 기뻐하는 모습. /조선DB

“모르는 문제가 없었다.” “H.O.T.가 뭐죠?”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서울 한성과학고 오승은 학생이 한 말로 유명해진 이 표현들은 지금까지도 ‘만점자 어록’으로 회자된다. 오승은씨는 1968년 예비고사부터 국가 주관 대입 시험이 시작된 후 30년 만에 처음 나온 만점자였다.

김종필 당시 총리가 오씨를 만났고, 그의 수험 비법을 담은 학습서 ‘오승은의 수능 노트’가 출간됐다. ‘공부의 전설’로 불렸던 오씨는 26년이 흐른 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서울대 물리학도, MIT 거쳐 여전히 물리학 연구 중

1998년 12월 김종필 당시 총리가 수능 만점자 오승은양을 집무실로 초청해 격려했다. /조선DB

오씨는 1999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물리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고등학교 친구의 편지 때문이었다. 그는 3일 방송된 tvN ‘유퀴즈 온더 블록’에서 “고등학교 때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었는데, 친구가 장문의 편지를 써줬다”고 했다. ‘너 같이 공부 잘하는 애가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서 순수 학문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오씨는 “편지를 보고 ‘그런가 보다’ 하고는 물리학과를 선택했다”고 했다.

오씨는 방학 때도 물리 캠프를 갈 정도로 공부를 즐기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3년 6개월 만에 조기졸업을 한 그는 200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유학을 떠났다. ‘오승은의 수능노트’로 번 돈이 유학의 밑천이 됐다.

유학 생활은 그에게 성장하는 기회였다.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잘난 줄 알고 살았을 수 있지만, 큰 세계에서 더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했다. MIT를 졸업하는 데는 7년이 걸렸다. 수업을 듣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 건 아니었다.

오씨는 “1~2년이면 수업은 다 패스할 수 있다”며 “처음부터 연구에 몰입하길 원하는 곳”이라고 했다. 연구실 로테이션을 하던 중 두 번째로 간 연구실에서 교수님이 제시한 연구가설을 본 오씨는 ‘6개월이면 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풀리지 않았고, 결국 7년 만에 그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밝히면서 졸업했다. 당시 연구 주제는 ‘신경세포 활동전위의 라벨 프리 광학적 측정’이었다. 오씨는 “좋은 훈련이었다”고 회상했다.

UC샌디에이고에서 테뉴어 트랙 중인 오승은 박사. /tvN '유퀴즈 온더 블럭'

그렇게 2010년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오씨는 하버드대 의대로 옮겨 생명물리학을 공부하는 연구원으로 7년을 지냈다. 2013년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 성장판 연골 세포가 뼈를 길어지게 하는 원리를 밝힌 논문을 싣기도 했다.

오씨는 현재 UC샌디에이고에서 테뉴어 트랙을 밟고 있다. 테뉴어는 대학에서 교수의 종신 재직권을 보장해 주는 제도로, 학계에서는 명예이자 일종의 타이틀이다. 테뉴어 트랙은 조교수로 임용되어 종신교수가 되기 위해 심사받는 과정이다. 오씨는 “물리와 생물학을 반반 섞어서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의대 갔다면…” 아쉬움에 어머니가 한 말

2013년 오승은 박사(오른쪽)와 지도 교수인 마크 커쉬너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모습. /오승은 박사 제공

오씨가 유학길에 오르기 전 어머니는 딸이 의대에 진학하지 않은 아쉬움을 털어놨다고 한다.

“의대 애들은 큰 항아리 여섯 개에 든 물을 먹어 치우면 되는데, 넌 지금 태평양에 들어가서 뭘 잡아야 할 줄도 모르면서 자맥질하고 있는 거 아니니?”

의대는 6년이라는 정해진 과정이 있지만, 오씨의 연구는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이에 아버지는 “항아리 물 퍼먹는 것보다 자맥질이 재미는 훨씬 더 있다”며 오씨의 편을 들어줬다고 한다.

오씨는 “지금껏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는 부모님의 지원이 컸다”며 “잔소리도 안 하고, 그냥 믿어주셨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오씨는 ‘공부를 잘하는 데는 DNA가 중요하냐’는 질문에 “어머니 아버지 두분 다 공부를 잘하셨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오씨의 아버지는 행정고시 8회 수석 출신이며 오씨의 어머니는 중학교 사회 교사였다. 오씨는 “부모님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셨다”며 “공부하는 아이들 눈치를 보면서 TV를 안 켜셨다”고 했다.

◇”대중들, 과학에 대한 관심 많아졌으면”

UC샌디에이고 테뉴어 트랙 중인 오승은 박사. /tvN '유퀴즈 온더 블럭'

오씨는 ‘공부하는 게 지겹진 않으냐’는 질문에 “저도 하기 싫은 공부는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재밌는 걸 찾아가는 길이고, 재미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리를 이렇게 오래 공부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즐겁게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열린 가능성을 놓고 재미있는 연구, 의미 있는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또 교수로서 제자 양성을 통해 보람 있는 삶도 살고 싶다고 했다.

오씨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리지널한 연구를 한국인 학자들이 많이 해서 대중들에게 이름이 더 친숙해졌으면 좋겠다”며 “먼 데 있는 게 아닌데, 과학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