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법' 발의한 안규백 "삶만큼 죽음도 존중 받아야"

박상곤 기자, 차현아 기자 2023. 12. 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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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품위있게 죽을 권리②
[편집자주] 자신 또는 사랑하는 이가 불치병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면 어떨까.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극심한 고통 속에 억지로 연명 치료를 받으며 보내야 할까. 스스로 편안하고 품위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 법안의 명암과 국회 통과 가능성을 따져본다.

/사진제공=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조력존엄사법은 결코 죽음을 가볍게 생각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존귀한만큼 죽음도 존귀하다는 취지입니다. 법도, 자연도 변합니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조력존엄사법(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머니투데이 the300(더300)과 만나 이 같이 말했다.

안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조력존엄사'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산소호흡기 같은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소극적' 방식인 연명의료 결정제도보다 환자가 스스로 삶의 끝을 결정할 더 '적극적'인 선택지를 제공한다.

코에 생명유지장치를 낀 채 병상에 누워 고통 속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다 마지막을 맞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맛있는 음식도 더 이상 먹지 못해 배에 구멍을 뚫어 열량만 겨우 채우는 식사 아닌 식사를 한다. 누워서만 지내다 등과 엉덩이 곳곳에 욕창이 생기고 2차 감염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이 생긴다. 많은 이들이 콧줄과 주삿바늘에 기대 겨우 연명하는 이런 삶이 과연 존엄하느냐고 묻는 이유다.


안 의원은 2017년 각종 말기 질환으로 고통을 받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보며 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당시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고통으로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셨지만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보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현행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2016년 2월 제정돼 2018년 2월 시행된 것으로 당시 안 의원 어머니는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현행 연명의료 결정제도 역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지도, 존엄한 죽음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 안 의원의 인식이다. 안 의원이 존엄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배경이다. 안 의원은 "현행 제도에는 본인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며 "반면 조력존엄사는 고통이 심한 사람이 스스로 삶을 중단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므로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조력존엄사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종교계에서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또 의료비나 간병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선택하거나 가족이 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안 의원은 조력존엄사가 가능한 조건을 매우 엄격하게 만들어 부작용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의 법안은 조력존엄사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조건으로 △말기 환자에 해당할 것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것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것 등 세 가지를 규정했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은 말기 환자로서 겪는 신체적인 고통에 국한한다.

법안에 따르면 조력존엄사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 산하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며 의료인과 공무원, 윤리 분야 전문가 등 총 15명으로 구성된다.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서 대상자로 선정된 후에는 한 달 간 숙려기간을 주고 결정을 철회할 기회도 제공한다. 이후 환자가 담당의사와 전문의 2명, 총 세 명에게 조력존엄사를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다시 해야만 조력존엄사가 실제로 이행된다.

안 의원은 "전 세계 존엄사 제도를 모두 검토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기준을 설정했다고 자부한다"며 "기준 모두 환자의 자발적이고 명확한 의사결정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한국리서치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력존엄사법 입법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82%에 달했다. 안 의원은 "이는 우리 사회가 삶의 질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국회도 하루 빨리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작 5개월여 남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안 의원의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다소 도발적인 제안을 담고 있는 만큼 사회적 논의 역시 좀 더 숙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해서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겠다는 생각이다.

안 의원은 "조력존엄사법은 생명의 존엄성과 자율적 결정권을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법안의 대표 발의자로서 조력존엄사법의 통과뿐만 아니라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 지원제도의 개선, 호스피스 인프라 투자 등 보다 포괄적인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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