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 ‘렌트’ 21년 무대서 내려온다…“언젠가 연출로 복귀할게요”

허진무 기자 2023. 12. 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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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호영. 신시컴퍼니 제공
배우 김호영이 뮤지컬 <렌트>에서 ‘엔젤’을 연기하며 ‘투데이 포 유(Today 4 U)’를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배우 김호영(40)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닮은 치마를 입고 춤추다 드럼 스틱을 번쩍 치켜들자 객석에선 환호와 박수가 폭죽처럼 터져나왔다. 김호영은 19세 대학생 때 뮤지컬 <렌트>의 ‘엔젤’ 배역을 따내며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21년 동안 다섯 차례 시즌에서 성소수자 예술가 엔젤을 연기해왔다. 극중에서 엔젤은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남자를 향해 통쾌하게 쏘아붙인다. “나는 너보다 남자답고 네 여자친구보다 섹시해.”

김호영은 서울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내년 2월25일까지 공연하는 <렌트>를 마지막으로 ‘엔젤’ 역에서 은퇴한다. 김호영은 공연장에서 5일 기자와 만나 “엔젤이라는 캐릭터는 저에게 정말 행운이었다”며 “엔젤 덕분에 좋은 배우로 알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엔젤은 사랑스러움과 풋풋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 피부도, 관절도 괜찮기 때문에 신체적인 문제는 없는데요, 언제부터인가 스스로가 무대에서 ‘노련해졌다’고 느꼈어요. 자꾸 과거를 떠올리고 추억을 소환하면서 작품을 마주하니까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더 할 수 있는데’라고 할 때 ‘여기까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요.”

<렌트>는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재창작한 뮤지컬로 1996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마약과 빈곤 문제 등을 다뤘다. 생물학적 남성인 엔젤은 남성인 ‘콜린’과 사귀는 예술가다. 에이즈로 사망한 뒤에도 친구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는 인물이다.

김호영은 “엔젤은 ‘사랑’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사회적으로 배제된 소수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람의 생각은 전부 다르잖아요. ‘이렇게, 저렇게 사랑하세요’ ‘저런 사랑은 맞다, 틀리다’ 강요하지는 않겠어요. 작품의 메시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아요.”

김호영은 2002년 친구를 따라 <렌트> 배우 오디션에 갔다가 캐스팅된 이후 300회 넘게 엔젤로서 무대에 올랐다. 김호영은 “엔젤은 콜린과 함께 있음으로 빛나는 인물”이라며 “데뷔부터 지금까지 연기할 때 콜린과의 끈끈한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객이 ‘저 둘은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해요. 혼자 돋보이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는 관계를 만들려고 많이 노력하죠. 저는 무대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콜린 역 배우만은 도시락까지 챙겨주며 대놓고 편애합니다. 하하.”

배우 김호영이 2002년 뮤지컬 <렌트> 데뷔 공연에서 ‘엔젤’을 연기하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이번 시즌에서 엔젤 역에는 가수이자 배우인 조권이 김호영과 더블 캐스팅됐다. 김호영은 ‘엔젤 은퇴’를 앞두고 연기 비법들을 조권에게 전수 중이다. 김호영은 “조권은 하이힐을 신고 퍼포먼스를 하는 데에 익숙한 아티스트라서 배우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고 말했다. “제가 40대가 되면서 ‘후배’보다 ‘선배’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위치가 됐어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도 좋은 선배의 덕목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렌트>를 대표하는 넘버 ‘오직 오늘뿐(No day, but Today)’에는 작품의 주제가 함축돼 담겼다. 김호영은 “친구들이 저를 부르는 별명인 ‘호이’도 스페인어로 ‘오늘’이라는 뜻”이라며 “저도 <렌트>에 영향을 받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자’는 나름의 철학이 생겼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어떤 뮤지컬의 어떤 역할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넷플릭스였다면 달랐을 수 있겠지만 뮤지컬은 그렇지 않죠. 무대를 계속하려면 자신감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호영은 <렌트>에서 ‘배우’로선 은퇴하지만 언젠가 ‘연출’로 복귀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시 배우 시절 엔젤을 연기했던 앤디 세뇨르 협력연출과 대화하며 통역 없이도 말이 잘 통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배우로서 참여하진 않겠지만 연출 스태프로 참여하고 싶어요. 이번 시즌은 어떤 역할을 보여줘야 하는지, 어떤 부분은 줄여야 하는지, 나무보다 숲을 보는 스태프의 관점으로 접근했어요. ‘스파이의 마음’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렌트>에서 ‘엔젤’ 역의 배우 김호영(오른쪽)이 연인 ‘콜린’ 역의 임정모와 함께 ‘아이 윌 커버 유(I’ll Cover You)’를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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