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구하러… 90세 윤세영, CEO로 돌아왔다

이성훈 기자 2023. 12. 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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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

태영그룹과 SBS를 설립한 윤세영(90) 창업 회장이 5년 만에 CEO(최고 경영자)로 복귀한다. 그룹 모태인 태영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아흔 나이에 직접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것이다.

태영그룹은 4일 “윤 창업 회장이 그룹 지주회사인 TY홀딩스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2019년 3월 아들인 윤석민(59)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준 지 5년 만이다. 윤 창업 회장은 지난해 한 기업 정보 업체 조사에서 ‘국내 미등기 임원’ 중 최고 연장자였다. 아흔 나이에 매출 약 6조원(작년 태영그룹 총매출) 회사 CEO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회사 측은 “건설 업계 전체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 채무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 태영건설의 사회적 책무를 완수하기 위해 윤 창업 회장이 경영 일선 복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아들인 윤석민 회장은 TY홀딩스와 태영건설의 사내이사 및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TY홀딩스 대표이사는 전문 경영인인 유종연(58) 사장이 담당하고 있다. TY홀딩스 관계자는 “그룹의 구체적인 경영진 구성과 역할은 내년 3월 이사회와 주총 이후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위기의 태영건설 구하겠다”

윤 창업 회장 경영 복귀의 직접적인 이유는 그룹 모태인 태영건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태영건설은 윤 창업 회장이 서울 마포구 한 극장 내 사무실을 빌려 처음 창업한 회사다. 1980년대 말 1기 신도시 조성 사업 등으로 큰돈을 벌어, 1990년 국내 첫 민간 방송 사업권까지 따내는 발판이 된 회사다. 윤 창업 회장은 이번에 경영 복귀를 결정하면서 주변에 “50년 전 태영건설을 창업할 때의 정신, 창업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걸 다 바친다는 각오로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를 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사 시공 능력 평가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은 1년여 동안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부동산 경기 침체와 ‘레고랜드 사태’로 PF 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태영건설은 작년 9월 말 국내 한 신용 평가 기관에서 다른 몇몇 건설사와 함께 ‘PF 우발 채무 모니터링이 필요한 기업’으로 지목됐다. 이후 증권가를 중심으로 태영건설에 대해 ‘PF 만기 연장에 실패했다’ ‘금융 당국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등 이야기가 급속히 퍼졌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서울 성수동 오피스 빌딩 사업 등에서 PF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라며 “사업성은 괜찮은데, 주변 여건이 나빠 일시적으로 자금 부족에 빠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태영건설은 대규모 차입과 계열사 매각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올해 초 회사채 발행과 펀드 조성을 통해 약 4000억원을 확보했다. 또 최근엔 그룹의 물류 사업을 담당하는 알짜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약 24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글로벌 사모 펀드와 진행 중이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계열사 매각 자금이 들어오면 유동성 문제는 대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흔 나이에 구원투수로

윤세영 창업 회장에게 2023년은 남다른 해였다. 1973년 ‘태영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창업한 지 50년이 되는 해였다. 이 때문에 올해 초 신년사에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원칙과 정직으로 이를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도 회사 내 굵직한 사업 현안은 윤 창업 회장이 최종 결정하지만, 이번에 대표이사가 되면서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까지도 모두 지겠다는 것”이라며 “지금도 골프 18홀을 모두 돌 만큼 건강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윤 창업 회장은 1961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당시 민주공화당 이동녕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 건설회사 임원을 지내다 퇴사해 1973년 태영건설을 설립했다.

주로 관급 공사를 수주하며 성장하던 태영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 국내 첫 민영방송 사업자로 선정돼 서울방송(현 SBS)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당시 태영의 도급 순위는 30위권이었다. 윤 창업 회장은 2002년 지분의 대부분을 아들에게 넘기며 후계 구도를 일찌감치 정했다.

하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SBS 노조와의 갈등 속에 그해 9월 윤 창업 회장과 아들인 윤석민 회장이 모두 방송 경영에선 손을 떼기로 했다. 방송 업계 관계자는 “TY홀딩스가 SBS의 최대 주주인 만큼, 윤세영 창업 회장이 SBS 상황도 챙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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