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이게 맞나요" 영화 '소년들' 정지영 감독[인터뷰]

신진아 2023. 11. 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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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시대다. 그게 현대사회 (불변의) 가치관인 것처럼 생각하나 아직도 (공동체 가치관이) 남아있는 그런 세계가 있다. 각자도생의 가치관에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1999년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년들'은 '강약약강'이 일상화된 한국사회의 초상과 같다.

하지만 1999년 2월 6일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힘 있는 권력자들에 맞선 소시민의 연대를 보여주며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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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CJ ENM 제공)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각자도생의 시대다. 그게 현대사회 (불변의) 가치관인 것처럼 생각하나 아직도 (공동체 가치관이) 남아있는 그런 세계가 있다. 각자도생의 가치관에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1999년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년들’은 ‘강약약강'이 일상화된 한국사회의 초상과 같다. 힘없는 자들은 쉽게 짓밟히고, 불의에 저항하던 소시민은 불이익을 당하며, 권력자들은 지난 과오가 드러나도 그 어떤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1999년 2월 6일 새벽,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힘 있는 권력자들에 맞선 소시민의 연대를 보여주며 눈길을 끈다. 비록 진실을 밝히는데 장장 17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누명을 쓴 소년들, 양심선언을 한 진범, 살인사건 피해가족의 유가족이 같은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미친 개'로 통하던 수사반장 황준철(설경구)은 의문의 제보전화를 받고 우리슈퍼 강도치사 사건을 재수사한다. 세 소년이 경찰의 폭행과 강요에 못이겨 허위자백을 하고 복역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분노하며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당시 사건의 책임 형사(유준상)와 담당 검사(조진웅)의 방해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16년 후 권력에 순응한 듯한 황준철 앞에 피해자 할머니 딸이자 유일한 목격자였던 윤미숙(진경)과 성인이 된 소년들이 나타난다.

어느 순간 ‘사회파 감독’으로 자리 잡은 70대 노장 정지영 감독은 “'소년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이 세상 또 다른 '소년들'의 고통을, 힘없는 약자들의 처지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 외침 이후..."

―영화에서 세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먼저 아이들을 고문하는 장면은 감독의 전작 ‘남영동 1985’와 겹쳤다. 국가나 경찰이 국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폭력의 주체라는 것을 보여줘 아이러니하다.

▲“‘남영동 1985’를 본 사람은 고문의 강도가 약하다고 하던데, 그 소년들에겐 (경찰의 강압 수사가) 무서웠을 것이다. 그 일 이후 경찰을 두려워하고, 혹시나 재심하면 경찰 조사를 다시 받을까봐 무서워한다. 트라우마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찍었다.

―세 진범과 누명을 쓴 소년들이 서로 마주보고 대질 신문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자료를 읽으면서 그 상황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진범 중 한명이 우는 게 중요했다. 나중에 자살한 친구다. 왜 울었을까? 단지 미안한 게 아니라 상당히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봤다.

―재심 과정에서 성인이 된 세 소년이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장면은 내가 대사만 써놨고, 외친 후 어떻게 행동할지는 모르겠더라. 17년 전에 5-6년씩 징역살고 출소한 뒤 간신히 재심을 해서 누명을 벗었다. 배우들께 그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겠냐? 그랬더니 자리에서 뛰어나오더라. 계속 지켜봤더니 (방청석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박수쳤다. 내가 시킨 게 아니다. 좀 오버스럽다고 생각됐으나 실제 입장이 되어보니 울분을 토할 것 같더라.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정지영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소년들' 언론시사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3.10.23 jin90@yna.co.kr (끝)

―그 장면에 대한 사건 관계자의 반응은 어땠나?

▲(실제로 재심한) 박준영 변호사가 너무 고맙다고 하더라. 박 변호사 말로는 애들이 재판 끝날 때까지 두려워했다더라. 30대가 된 후에도 트라우마를 못 벗었다고. 영화에서나마 소년들이 목소리를 내게 돼 고맙다고, 소년들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해 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황반장이 재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집안 사정이 드러나는데, 하나같이 소외계층이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는 발언이 세상에 나온 게 벌써 7-8년이 됐더라.

▲(억울한 일을 당한 아이들의 현실을 공감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편에선 저런 애들을 구제하기 위해 17년을 소모하는 사회적 비용을 들여?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애들, 저런 애들은 무시하면 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소년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절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영화”라고 했다. “우리는 주변 이웃을 보면서 살고 있는가, 신자유주의가 우리사회의 이데올로기가 된 이후로 경쟁을 당연시하고, 돈 많고 똑똑한 사람은 옳고, 반대로 소외계층 애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게 아닌가? 우리들의 일반적 시선을 재점검해보고, 관객들과 토론하고 싶었다.”

■ "진범 중 한명이 증언에 나서면서 재심에서 이겨"

―설경구가 연기한 황반장을 익산약촌오거리 택시기자 살인사건을 해결한 실존 인물을 모델로 했다고?

▲(영화화하려고 눈여겨봤던) 익산약촌오거리에서도 진범이 나타났는데, (경찰이) 덮으려했다. 그때 한 형사가 끝까지 싸우다가 좌천당했다. 불의에 맞서는 그 실존인물을 보고, 설경구가 연기한 '공공의 적' 강철중이 떠올랐다. 저돌적이고 무모했던 강철중이 나이가 들면 황반장처럼 될수 있다고 봤다. 설경구가 황반장의 좌절한 모습을 좋아했다. 다시 (젊은시절 무모했던) 황반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배우로서 욕심이 났을 것이다.

―설경구 배우가 피해자와 진범이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고 했다.

▲영화에선 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며느리다. 그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죽인 진범을 받아줬다. 진범들도 일부로 죽인 게 아니고 실수였다. 그 진범 중 한명이 증언을 하면서 재심에서 이긴 것이다.

―감독의 전작에 출연한 '블랙머니' 조진웅과 '남영동 1985' 박원상 배우가 특별 출연했다. 뿐만 아니라 허성태, 염혜란, 진경, 서인국 등 충무로서 잘나가는 조연배우들이 큰 분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출연했다.

▲운이 좋았다. 유준상은 빌런인데, 잘생기고 모범생 같고 똑똑해 보이는 배우가 하길 바랐다. 조진웅이 연기한 검사는, '저놈은 이기기 힘든데' 그런 긴장감을 주는 인물이길 원했다. 염혜란은 내 영화 ‘블랙머니’를 보고 나와 일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원래는 진경이 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진경이 캐스팅된 후라서 극중 설경구 와이프 역을 제안했다. 서인국은 뜻밖의 캐스팅이었다. 중요하지만 작은 역할인데 하겠다고 해서 고마웠다. 박원상은 판사 역인데, 잠깐 나와서 해달라고 연락했다.

―진범 중 한명이 죽고, 한명이 양심선언을 한 사건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피해자 유가족이 소년들을 위해 연대한 점도 그렇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그게 현대사회 (불변의) 가치관인 것처럼 생각하나, 아직도 (공동체 가치관이) 남아있는 그런 세계가 있다. 각자도생의 가치관에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대다.

―배우들이 70대 감독을 이구동성 소년 같다고 하는 비결은?

▲그게 나는 (50대) 설경구가 까만 후배라거나 동생으로 생각되지 않고 그냥 친구라고 느낀다. 그 느낌을 상대방도 받을 거 같다. (30대) 서인국은 나를 형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겠구나 싶다.(웃음)

―여전히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그냥 열심히 하는 거다. 너무 힘줘도 안 돼. 이 작품 꼭 해야 해 그럼 안 된다. 하면 좋고, 안되면 할수 없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살면서 긴장을 별로 안한다. 그렇게 살면 너무 힘들어서. 관객이 정지영을 외면할 때까진 영화를 하고 싶다.

―감독님 본인도 스크린 안팎에서 세상에 맞서 목소리를 내왔다. 오락적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부러진 화살’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을 확고히 구축했고, 주로 사회적 현실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사회파 감독이 된 것은 운명과 같다. 다른 장르 작품도 시도했는데 잘 선택이 안됐다. 넌 그런 거 해라 운명이 그렇게 주어진 게 아닌가.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지적에) 맞다. 내가 이런 작품을 하게 되는 이유도 남들이 안하더라, 그래서 내가 한 것이다. 그것이 차별화가 된 것이다.

―원래 잘 싸우시는 편 아니셨나?

'소년들' 스틸 컷 /사진=뉴스1

'소년들' 스틸 컷 /사진=뉴스1

영화 '소년들' 보도스틸

영화 '소년들' 보도스틸

▲하하. 제 캐릭터라고 이야기한다. 끈기나 오기, 용기가 다른 사람보다 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 소재 영화를 하는 것과 관련해) 위험하지 않아요? 걱정하는데, 난 뭐가 위험해요 그런 생각이 든다.

―스스로 대중영화 감독이라고 하는데?

▲난 일부 지식인들, 영화광들에게만 사랑받는 감독이 되고 싶진 않다. 많은 관객이 보고 떠들고 토론하길 바란다.

―실화극 연출 시 조심하는 것은?

▲실존인물의 허락을 받고 찍지만, 이것이 나중에 (해당 사건 인물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그런게 조심스럽다. 다행히 이번에 '감독님 감사합니다' 꽃다발을 줘서 감동했다.

정지영 감독은 차기작으로 제주 4.3사건을 소재로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그는 “4.3평화재단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인데, 아이디어 하나가 빛나서 그걸 발전시켰다. 4.3사건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라는 점에 흥미를 갖게 됐고, 마침 내가 다루지 않았던 해방 공간 직후의 이야기라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CJ EN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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