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꿈 친구', 구본웅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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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알려진 그림이다.
구본웅은 이상보다 네 살 많았지만, 청소년기에 만나 이상이 요절할 때까지 두 사람은 지음(知音)으로 지냈다.
구본웅은 의부 이모를 이상에게 소개해줬고, 둘은 결혼했다.
그의 곧은 정신에 반한 이상이 '나의 나약함이 오히려 불구'라고 고백하며 구본웅을 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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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꽤 알려진 그림이다.
파이프를 물고 세상을 직시하는 듯한 모습, 삐딱하게 쓴 모자와 날카로운 눈매가 퍽 반항적이다. 파이프도 타고 입술마저 빨갛게 타오르고 있다.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흔적을 남긴 김해경, 즉 이상 시인(1910~1937)의 초상이다.
이상은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그가 그린 자화상은 아니다. 절친 구본웅(1906~1953) 작품이다. '친구의 초상' (1935)
구본웅은 이상보다 네 살 많았지만, 청소년기에 만나 이상이 요절할 때까지 두 사람은 지음(知音)으로 지냈다. 서로 예술혼을 나누며 존경하는 사이였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구본웅에게 의붓어머니가 있었는데, 그 여동생이 변동림이었다. 구본웅은 의부 이모를 이상에게 소개해줬고, 둘은 결혼했다. 이상의 죽음으로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변동림은 이후 김향안으로 개명해 김환기 배우자가 됐다.
구본웅은 한국적 표현주의를 연 화가다. 앙리 마티스 화풍과 매우 닮았다. 척추장애인이었지만, 자신의 불구를 부끄러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본웅은 김상옥 열사와 연결돼 자주 언급된다. 김상옥은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에 비해 덜 알려진 애국열사다.
1923년 1월, 서울 종로경찰서 폭파계획은 실패하고 혈혈단신으로 일본 경찰과 싸우며 신출귀몰한 시가전을 펼치다 마침내 한 알의 총탄을 자기 머리에 겨눈 뒤 눈을 감았다.
그날 잠을 설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현장을 목격한 소년이 구본웅이었다. 성인이 된 뒤 친일 활동을 한 그가 해방 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아래와 같은 글과 스케치를 남겼다. (현대식 맞춤법 적용)
아침 7시. 찬바람.
섣달이 다 가도 볼 수 없던 눈이
정월 들자 내리니 눈바람 차갑던
중학 시절 생각이 난다.
아침 7시 찬바람, 눈 쌓인 들판,
새로 지은 외딴집 세 채를 에워싸고
두 겹 세 겹 늘어선 왜적의 경관들
우리의 의열 김상옥 의사를 노리네.
슬프다 우리의 김 의사는 양손에
육혈포 꽉 잡은 채. 그만-
아침 7시 제비(김 의사 별명을 제비라고 불렀었음)
길을 떠났더이다.
새봄 되오니 제비시여 넋이라도 오소서.
그의 표현주의 작품을 보면, 외로운 장애인으로서 삶을 노정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신마저 불구는 아니었다.
그의 곧은 정신에 반한 이상이 '나의 나약함이 오히려 불구'라고 고백하며 구본웅을 따랐다고 한다.
미술 에세이스트 이소영은 둘 사이 우정을 '꿈 친구'로 부르며, '현재의 나'를 대입시키며 이렇게 썼다.
"기나긴 인생을 함께 걸어갈 내 자화상 같은 친구는 누구고, 나를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하는 '꿈 친구'는 누가 있을지 생각해보자"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리나 강수진(현재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구본웅 외손녀다. 마치 할아버지의 장애를 떨쳐 버리려는 듯이 몸을 펴 도약한다. 훨훨 난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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