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타고난 영재와 길러진 영재

기자 2023. 9.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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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학고 백강현군의 자퇴 소식이 알려진 후 한동안 시끄러웠다. 여러 언론 매체가 “동급생들이 지속적인 언어폭력으로 백군을 괴롭혔다” “학교 측은 이것의 사건화를 만류하였다”는 백군 아버지의 주장을 알렸다. 이런 기사에는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고, 많은 이들이 백군이 학교폭력을 당한 것에 분노하며 서울과학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비난했다. 우리나라는 안 된다며 미국으로 보냈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대중의 백군에 대한 사랑과 기대는 지대하다. 서울과학고 학생들은 뛰어난 어린애가 동급생이 되니까 시샘해 못살게 군 나쁜 학생들로 치부됐고, 그들은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애들일 뿐 진짜 영재는 아니라는 댓글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인지 이 사건은 애초에 부모의 과욕이 문제가 아니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중과 언론은 어린 영재에게는 열광하지만 그 영재가 자라 10대 중반쯤 돼 진짜 영재인지 여부가 판정될 때는 관심이 없어진다. 수학 영재들에 대한 인터뷰에서도 기자들은 나이 어린 영재에 대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지만, 이미 진짜 영재임이 확인된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그것은 영재학교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해 만들어진 영재일 뿐이라는 통념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이 성취한 높은 수준의 수학적 내용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예전의 국민영재 S군과 백군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자식을 국민영웅으로 만들겠다는 의욕이 과다한 아버지가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가정 형편이 아주 좋지 않다는 점이고, 셋째는 어린아이를 턱없이 높은 수준의 학교에 보내 교육시키려고 한 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반응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진짜 영재’와 ‘가짜 영재’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과 일부 언론은 진짜 영재인 백군이 가짜 영재들에게 따돌림과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백군 아버지는 예전에 올린 ‘길러진 영재와 타고난 영재’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서 “영재에는 이 두 가지가 있는데 백군은 후자에 속한다”고 했다. 타고난 영재는 진짜 영재이지만 길러진 영재는 진정한 영재는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체로 모순적이다. 어린 영재에게 선행학습을 시키고, 과도한 월반을 하게 하면서 “타고난 영재이지 길러진 영재는 아니”라고 하니 말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천재성의 정도, 그 천재성의 지속성, 학습 의지 등은 속단하면 안 된다. 타고난 영재와 길러진 영재가 따로 있지 않다. 각자의 지능이란 타고난 재능과 교육이 공동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타고난 재능이 길러진 능력보다 더 귀한 것도 아니다. 어릴 때 보이는 재능의 큰 차이는 성장하면서 점차 줄어든다. 뒤늦게 크는 아이들이 무서운 법이다. 영재교육은 긴 호흡을 갖고 차분하게 해야 한다. 결국 목표는 훌륭한 전문가로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다한 대중 노출과 과도한 월반은 당연히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뛰어난 영재를 보면 대개 그 학생을 위해 “특별하고 효율적인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교육은 주로 속진교육과 월반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식과 지능의 발전은 그렇게 도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차분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아이의 능력, 학습 의지, 성격 등에 맞는 교육 환경을 조성해주고, 좋은 멘토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능이 뛰어난 고도영재를 발굴하고 교육하고자 할 때 꼭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훌륭한 과학자나 전문가로 키우는 과정은 운동선수, 음악 연주자, 바둑선수 등을 키우는 과정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훌륭한 학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내가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최고 수학 영재들이 10대를 거쳐 어른이 돼 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점은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20대 중반이나 후반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고도영재들에게는 당장의 실력향상보다 정서적 안정과 사회성 향상이 더 중요하다. 만일 진짜 머리가 좋다면 실력향상의 기회는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정서 발달은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영재들의 실력향상을 위해서도 새로운 지식의 습득보다는 지식을 충분한 시간과 사고를 통해 머릿속에서 숙성시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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