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시리즈 연속 'No 스윕패'…한 명의 선수는 팀을 어떻게 바꿨나? [김한준의 재밌는 야구]

김한준 2023. 7. 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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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점을 자축하는 볼티모어 선수들.사진 = AP 연합뉴스

긴 프로야구 시즌을 치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투타의 균형이 완벽하게 들어맞으며 쉽게 승리를 거둘 때도 있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1승을 달성하기 어려운 시기도 많습니다. 때문에 좋은 사이클에서 가급적 많이 이기고, 팀 분위기가 하락세일 때는 빨리 연패를 끊어주는 게 긴 시즌을 잘 치르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뜻대로 되기는 쉽지 않고, 선두를 질주하는 팀이라도 안 좋을 땐 스윕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선 무려 69시리즈 연속 스윕을 당하지 않고 있는 팀이 있습니다. 바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입니다.

볼티모어는 지난해 5월 13~15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3연전에서 스윕을 당한 이후로 지금까지 1년 2개월 동안 모든 시리즈에서 패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 기간 69번의 시리즈를 치렀는데, 시리즈마다 최소한 1번 이상은 승리를 거둔 겁니다.

현재 MLB에서 볼티모어보다 오랜 기간 '스윕을 당하지 않고 있는 팀'은 없습니다. 이 부문 현재 2위가 22번의 시리즈에서 스윕패가 없는 텍사스 레인저스일 정도로 격차가 큽니다.

스윕패가 없다는 건 좋지 않을 때 연패를 끊어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연패가 길지 않으면 성적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러다 보니 볼티모어의 올 시즌 성적도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볼티모어는 현재 8연승을 달리며, 57승 35패(승률 0.620)로 아메리칸리그(AL) 승률 2위, 리그 전체 3위를 질주 중입니다. AL 1위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격차는 겨우 1게임입니다.

볼티모어 리빌딩의 핵심 선수 애들리 러치맨.사진 = AP 연합뉴스

■ 애들리 러치맨의 콜업 이후 확 달라진 볼티모어

그런데 특이한 점이 눈에 띕니다. 볼티모어가 이렇게 지지 않은 팀으로 바뀐 시점 때문입니다. 시계추를 1년 2개월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볼티모어는 지난해 5월 21일 당시 리그 최고의 유망주였던 포수 애들리 러치맨(25)을 빅리그로 콜업했습니다.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볼티모어에 입단한 러치맨은 '모든 것을 다 갖 춘 선수'(the complete package)로 평가받았고, 마이너리그에서 그 평가를 실력으로 입증해 왔습니다.

또래에 비해 압도적인 리더십과 수비력은 물론, 마이너리그 통산 타율이 0.281, OPS(출루율+장타율)가 0.877일 정도로 공수 모두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의도적인 탱킹으로 수년간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았던 볼티모어는 지난해 러치맨을 콜업하는 결단을 내렸는데, 러치맨이 팀에 합류한 이후 볼티모어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했습니다.

러치맨 데뷔 직전까지 16승 24패로 승률 0.400에 그치던 볼티모어는 러치맨 합류 후 67승 55패, 승률 0.549로 뛰어 올랐습니다. 지난해 마지막까지 AL 와일드카드 경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러치맨이 풀타임으로 출전하고 있는 올해, 볼티모어는 리그 최강팀 중 하나로 올라섰습니다. 러치맨이 메이저리거가 된 뒤 볼티모어는 124승 90패(승률 0.579)를 기록 중입니다.

물론 러치맨 혼자서 이룬 성과는 아니지만, 러치맨이 주전포수가 된 뒤 팀이 달라진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실제로 러치맨은 지난해(113경기 13홈런 OPS 0.807)에 이어 올해에도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89경기에서 12홈런, 타율 0.275, OPS 0.801로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특히 수비와 팀 케미스트리 차원에서 러치맨의 역할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궁금한 게 있을 때 러치맨에게 문자를 보내면 항상 최고의 조언을 해 준다"고 말하는 동료들이 상당수인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닙니다.

지난해 말 빅리그에 데뷔한 거너 헨더슨.사진 = AP 연합뉴스

■ 볼티모어는 어떻게 강팀이 됐나?

그러면 이 글은 한 팀을 바꾼 선수인 빅리그 2년차 러치맨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싶어서 쓴 글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러치맨에 가려져 있는 볼티모어의 리빌딩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쓴 글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2016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볼티모어는 2017년 승률 5할에 미치지 못하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합니다. 2018년 팀이 더 나락으로 빠지자, 볼티모어는 리셋 버튼을 누릅니다. 팀의 주축들을 팔아 남기며 아예 꼴찌를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해 팀을 떠난 선수들은 매니 마차도, 잭 브리튼, 브래드 브락, 케빈 가우스먼, 대런 오데이, 조나단 스쿱 등이었습니다.

볼티모어는 '꼴찌의 유산'으로 얻은 전체 1픽으로 러치맨을 지명했고, 이후 러치맨의 성장 가능성을 확신하고, 러치맨 콜업 시점에 맞춰 탱킹을 종료하겠다고 꾸준히 밝혀 왔습니다.

이후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볼티모어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늦어도 내년 초까진 메이저리그 데뷔를 할 수 있는 나이대의 선수들을 위주로 지명했었고, 트레이드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러치맨과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할 수 있는 유망주들을 대거 모아 육성시킨 겁니다.

실제로 볼티모어는 지난해 러치맨을 콜업을 전후로 팀의 코어 유망주들을 순차적으로 데뷔시켰습니다. 우완 선 카일 브래디시(26), 내야수 거너 헨더슨(22), 우완 선발 그레이슨 로드리게스(23), 좌완 선발 DL 홀(24), 내야수 조던 웨스트버그(24), 외야수 콜튼 카우저(23) 등이었습니다. 이들 상당수는 로스터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볼티모어를 리그에서 가장 젊은 팀 중 한팀으로 변모시켰습니다.

AL 전체 승률 1위를 노리고 있는 볼티모어.사진 = AP 연합뉴스

■ 만년 '셀러'에서 '바이어'로 변신한 볼티모어, 그 결과는?

볼티모어가 올시즌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아직 모릅니다. AL 동부지구는 천하의 뉴욕 양키스(50승 44패)도 최하위로 떨어질 정도로 리그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지구입니다.

AL 동부지구에 있는 탓인지 볼티모어는 지난해 7월 10연승을 달리며 가을야구가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며 트레이드 시장에서 '셀러'로서 팀의 마무리와 중심타자를 내다 팔았습니다. (그때 반대급부로 팀에 온 선수 중 한명인 예니어 카노는 올해 8회를 완벽하게 틀어막는 필승조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볼티모어는 드디어 '바이어'가 될 의향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팀이 올라올 만큼 올라왔으니, 이제는 제대로 승부를 보겠다는 겁니다. 약한 부분으로 평가받는 선발 또는 불펜을 보강할 것으로 보입니다.

볼티모어는 탱킹과 동시에 육성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 본 결과, 현재 유망주들의 양과 질 모두에서 리그 최고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MLB 파이프라인 기준 리그 TOP 100에 속한 상위 유망주만 해도 1위인 유격수 잭슨 홀리데이(19)를 비롯해 8명이나 됩니다. TOP 100에 8명의 유망주가 속한 팀은 볼티모어 외에는 LA 다저스 빼곤 없습니다. 즉시 전력을 위해서 '희생'시킬 유망주가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데뷔 2년차에 에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카일 브래디시.사진 = AP 연합뉴스

볼티모어의 리빌딩 과정은 다른 MLB 팀들은 물론, KBO의 팀에게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습니다. 중장기 플랜을 세워 팀의 코어를 육성을 통해 세운 뒤, 그러고도 부족한 부분을 즉시 전력으로 데려오는 방식 말입니다. 이 글을 쓴 목적이기도 합니다.

분명 한 명의 선수가 팀을 바꾼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볼티모어는 그 한 명의 선수에게 의존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고, 그 선수를 중심으로 팀의 체질을 바꾸려고 했고, 올해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볼티모어의 최종 성적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

◆ 김한준 기자는?
=> MBN 문화스포츠부 스포츠팀장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에서 일했습니다. 야구는 유일한 취미와 특기입니다.

[ 김한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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