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국립발레단 이끈 윤홍천·강효정… 까다로운 유럽 관객도 박수

빈/김기철 전문기자 2023. 5.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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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글로벌 문화현장]
‘골드베르크 변주곡’ 공연 가보니
지난 주 개막한 빈 국립발레단 ‘골드베르크 변주곡’ 주역으로 출연한 강효정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현지 일간지로부터 청춘의 발랄함을 능숙하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빈 국립발레단·Ashley Taylor

세계 정상급 빈 국립발레단 무대에 한국 예술가 두 명이 나란히 섰다. 피아니스트 윤홍천(41)과 빈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강효정(38). 지난 27일(현지 시각) 개막한 빈 국립발레단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다. 한국 피아니스트가 빈 국립발레단 연주를 혼자 맡아 연주한 것은 처음이다.

개막 하루 전인 26일 오전 최종 공개 리허설을 찾았다. 2100석(입석 435석 포함) 규모 빈 국립오페라 극장은 가득 찼다.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백지)가 먼저 올랐다. 에스토니아 출신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모던한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지금, 여기’의 순간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2부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선 윤홍천이 가장 먼저 등장했다. 오케스트라 피트 왼쪽에 자리 잡은 그가 아리아 첫 소절을 누르자, 유백색 흐릿한 무대에 선 무용수 수십명이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녀 무용수 모두 가슴까지 올라오는 흑, 백 의상으로 통일성을 갖춰 정갈한 느낌을 줬다. 이어 변주가 시작되면서 적(赤), 황(黃), 홍(紅), 녹(綠), 자(紫)색 옷을 차례로 바꿔 입은 무용수들은 솔로와 파 드 되(pas de deux ·2인무), 군무로 변화무쌍한 선율을 담아냈다.

강효정은 5번째 변주곡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노란 의상을 입은 그는 경쾌한 선율에 맞춰 나비처럼 무대 위를 날아다녔다. 남자 파트너가 있었지만 사실상 솔로 무대였다. 19번째 변주곡에서 같은 의상을 입은 강효정은 남자 무용수 2명과 함께 췄고, 20번째 변주곡은 파 드 되였다. 청춘의 발랄함을 온몸으로 발산하는 요정같았다.

바흐가 1741년 출판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한 개의 아리아와 이 선율을 변주(變奏)한 30개의 짧은 곡을 모은 작품. 글렌 굴드, 안드라스 쉬프, 랑랑까지 이름난 피아니스트들이 녹음에 도전한 고전이자 음악 애호가들이 손꼽는 명곡이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안무, 연출한 제롬 로빈스가 1971년 뉴욕 시티발레단을 위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안무한 이래, 여러 무용가들이 이 음악에 도전했다.

지난 4월 27일 개막한 빈 국립발레단 '골드베르크 변주곡' 피아노 연주를 맡은 윤홍천이 커튼콜에서 인사하고 있다. 윤홍천 왼쪽이 강효정이다. /Wiener Staatsballett/Ashley Taylor

스위스 바젤 발레단과 취리히 발레단을 정상으로 키워낸 안무가 하인츠 슈푀를리(83)는 1993년 뒤셀도르프 발레단을 위해 만든 이 작품을 30년 만에 빈 국립발레단 맞춤용으로 손질했다. 무대와 의상을 바꾸고 무용수 동작도 많이 고쳤다. 슈푀를리는 바흐를 학구적으로 파고들기보다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청춘과 노년의 만남과 이별, 분노와 두려움, 사람들의 관계를 무용수들의 몸짓에 담아냈다. 280년 전 바흐 음악과 어울린 무용수의 아름다운 동작은 80분짜리 명품 예술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오스트리아 대표적 일간지 비너 차이퉁은 ‘강효정의 능숙함은 아무도 뛰어넘을 수없다’고 호평했고, 또다른 일간지 ‘데어 슈탄다르트’는 ‘윤홍천의 피아노 연주는 충분할 만큼 자격있는 박수를 받았다’고 썼다.

지난달 27일 개막한 빈국립발레단 '골드베르크 변주곡'. 세계적 안무가 하인츠 슈푀를리가 빈 국립발레단을 위해 다시 손질한 작품으로 바흐의 명작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에 맞춰 청춘과 노년의 만남과 이별, 기쁨과 우려를 무용에 담았다. /Wiener Staatsballett/Ashley Taylor

강효정은 “슈푀를리 안무가가 두 달 넘게 연습을 지도하며 일일이 손봤고, 최종 리허설 전날에도 의상과 무대를 바꾸려고 할 만큼 정성을 들였다”고 말했다. 강효정은 마틴 슐래퍼(Schläpfer) 빈 국립발레단장이 콕 찍어 스카우트한 무용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였던 그는 슐래퍼 단장의 제안을 받고 17년간 몸담은 발레단을 떠나 2021년 9월 빈으로 옮겼다. “무용의 영역을 넓혔으면 하는 생각”에서라고 했다. 이적 직후인 2021년 12월 존 크랑코 작 ‘오네긴’에 주인공 타티아나로 나서 입맛 까다로운 빈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올 시즌 슐래퍼 단장의 신작 ‘잠자는 숲속의 공주’ 주역 오로라 공주로 나섰고 지난주에도 슐래퍼 단장이 안무한 브람스 ‘독일 레퀴엠’에 주역으로 출연하면서 이 발레단을 대표하는 무용수로 자리잡았다.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과 피아니스트 윤홍천. 2021년 9월 빈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이적한 강효정은 '오네긴' '잠자는 숲속의 공주' 브람스 '독일 레퀴엠' 주역을 잇따라 맡으면서 이 발레단의 대표 무용수로 떠오르고 있다. 윤홍천은 한국인으로는 처음 빈 국립발레단 피아노 연주를 맡아 주목을 받고 있다. /Wiener Staatsballett/Ashley Taylor
빈 국립발레단 골드베르크 변주곡. 남자 무용수 넷이 초록색 의상을 입고 역동적 동작을 선보였다. /Wiener Staatsballett/Ashley Taylor

윤홍천은 2013년부터 독일 음반사 웸스(Oehms)에서 낸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으로 영국 클래식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에 이름을 올리는 등 주목을 받아왔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윤홍천은 “빈 국립발레단에서 1년 전 출연 의사를 타진해왔고 안무가 슈푀를리가 흔쾌히 동의하면서 연주를 맡았다”고 했다. 그는 “피아니스트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너무 엄청난 작품인데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연주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눈높이 남다른 빈 관객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을 만큼 수준급 연주를 보여줬다. 윤홍천은 이달 8번 더 빈 국립발레단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고 강효정은 이 중 절반쯤 무대에 선다. 윤홍천은 7월1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 작품 '타불라 라사'. 아르보 패르트 음악에 맞춰 안무한 이 작품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앞서 30분간 공연됐다. /Wiener Staatsballett/Ashley Taylor

/빈=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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