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김수영 ‘거미’
거미는 예술가들이 오래 주목해온 생명체였다.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조형물(사진)이나 1960년대부터 변주되어온 ‘스파이더맨’처럼, 예술가들에게 유독 사랑을 받아왔다. 여느 절지동물처럼 징그러워 보이는 면도 있지만, 꽁무니의 방적돌기로 뽑아낸 실로 그물을 빚는 건축술로 인해 독보적인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면도 있다. 으스스한 공간을 상상할 때에 떠오르는 거미줄, 숲속을 걷다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영롱한 거미줄. 우리 실내 공간에서는 불청객이지만, 죽이지 않고 반드시 살려서 바깥으로 보내는 대우를 받아온 거미. 그리스 신화 속 아라크네와 아프리카의 설화 속 아난시로,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며 인류의 서사 속에서 환생을 거듭해온 거미.
시인들도 거미를 오래 사랑해왔다. 아마도 시인들이 가장 자주 호명해온 생명체 중 하나일 것임이 분명하다. 특히 김수영의 거미는 여느 시인의 거미와 사뭇 다르다. 신비로운 건축물을 직조하는 거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거미에게서 거미줄을 배제한다. 거미에게서 가장 신비로운 영역을 제외한다. 김수영에게 거미는 인간의 공간에 불쑥 나타난 불청객이 아니다. 시인이 자기 자신을 투영한 거울 같은 존재다.
김수영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설움’이라는 감정을 독차지하듯 시에 애용해왔다. 불과 4행으로 이루어진 김수영의 시 ‘거미’에는 ‘설움’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등장한다. 거미는 그러니까 온갖 서러움의 최종 이미지인 셈이다. 얕은 서러움은 물론이고 입체의 서러움에 몸서리치면서, 아침의 서러움에서부터 온 우주의 서러움까지를 감각하면서 시인은 인간의 고통을 언어로 직조했다. 서러움이 시인에겐 시를 쓰는 연료였다고 단언해도 좋을 듯하다. 서러움이 연료가 되는 운명. 이 모순에 찬 사명을 거미로 표현한다. 사실, 모순은 인간의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뿐, 거미는 거미이다. 이 인간의 모순됨을 김수영은 서러워한 것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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