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어텐션] 김치 카르보나라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2023. 1.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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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양진경

까르보나라를 좋아한다. 하얀 파스타다. 한국인은 파스타를 색깔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빨간 건 스파게티, 하얀 건 까르보나라, 색이 없는 건 알리오 올리오나 봉골레다. 지난 세기만 해도 까르보나라를 파는 식당은 흔치 않았다. 요즘은 어르신들도 이름 정도는 안다. 배달 앱으로 까르보나라를 검색하면 파는 식당도 줄줄이 이어진다.

몇 년 전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을 가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본토의 맛이 궁금했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면을 삼켰다. 귤은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일본에서 먹는 김치와 한국 김치는 다르다.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국 까르보나라의 크림과 우유로 만든 달콤한 소스는 없었다. 고모라의 소금 기둥을 긁어 양념을 한 듯 지옥처럼 짰다.

본토 까르보나라는 ‘관찰레’라는 염장육을 볶아 기름을 낸 뒤 달걀노른자에 치즈를 섞은 소스를 면과 버무려 뻑뻑하게 먹는 음식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이탈리아 친구에게 동네 파스타집 까르보나라를 시켜준다면 그는 손가락을 모아 흔들며 분노할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음식 자부심이 지나친 편이라 퓨전을 잘 용납하지 않는다. 파인애플 얹은 피자가 국가적 혐오 음식으로 통하는 이유가 다 있다.

며칠 전 소셜미디어에 ‘김치 까르보나라’ 요리법이 돌기 시작했다. 작년 뉴욕타임스가 발행한 기사였다. 사람들은 칠색 팔색했다. 누구는 “이탈리아와 한국을 동시에 화나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면 성공”이라고 했다. 나도 처음엔 이 정체불명의 미국식 요리에 고개를 저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질색할 일은 아니었다. 까르보나라는 그리 오래된 음식이 아니다. 볼로냐의 한 셰프가 1944년 선보인 후 현대적으로 변용된 것이 지금의 까르보나라다. 많은 해외 ‘전통’ 요리는 20세기에 창조됐다. 김치도 비슷하다. 고추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속이 꽉 찬 배추가 전해진 것은 1850년대다. 지금 배추김치는 한국전쟁 이후에나 대중화된 것이다.

문화적 전유라는 개념이 있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전통문화를 무단으로 차용한 뒤 자기 방식대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몇 년간 문화적 전유는 소셜미디어에서 광범위한 공격의 대상이 됐다. 한국 래퍼가 흑인 헤어스타일을 차용하거나 백인이 아시아 전통 의상을 입는 순간 남의 문화를 훔치지 말라는 분노가 쏟아지곤 한다. 그런데 문화라는 것이 온전히 한 국가나 민족이나 인종의 것일 수 있을까. 문화는 어차피 서로서로 전유하며 진화한다. 전통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새로운 전통은 생겨날 수 없다.

아직 김치 까르보나라를 메뉴에 올린 식당은 찾지 못했다. 사실 김치는 달걀이나 치즈와 정말 잘 어울린다. 다소 느끼한 한국식 까르보나라에 신김치를 더하면 감칠맛이 끝내줄 것이다. 신김치가 부담스럽다면 묵은지를 넣어도 좋겠다. 얼큰한 해장 파스타도 파는 나라가 김치 까르보나라를 팔지 않는다는 건 한국과 이탈리아 전통의 낭비다.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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