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15] 영광 물걸이 무침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2022. 10. 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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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몇 년이나 되었을까. 처갓집에서 받은 밥상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생새우무침이 올라왔다. 그 반찬을 ‘물걸이’라 불렀다.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싱싱한 생새우에다 고춧가루, 마늘 등 양념으로 버무린 즉석 요리다. 오로지 찬 바람이 나는 깊은 가을에 먹을 수 있는 맛이다. 영광군 염산이나 백수에서 즐겨 먹었다.

김준 제공

목포의 백반집에서도 간혹 내놓는 집이 있다. 김장용 젓갈을 준비하러 설도항에 갔다가 눈 밝은 장모님에게 걸린 모양이다. 염산이나 백수는 칠산바다의 중심이다. 지금은 백수해안도로가 더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소금을 굽고 새우를 잡던 어촌이었다. 봄철이면 어김없이 조기가 올라왔고, 병어와 민어가 뒤따라 왔다. 가을이 되면 전어와 꽃게로 그득했던 바다다. 모두 새우를 먹기 위해 찾아온 바다 손님들이다.

칠산바다에서 조업 중인 어선./김준 제공

이곳에서 물걸이는 백새우라고도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생물종정보에 따르면 백새우는 김장새우와 함께 중하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중하는 젓새우보다 크지만 대하보다 작은 새우다. 물걸이는 영광 염산포구, 강화 외포, 인천 소래포구에서 가을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발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다. 어부들은 새우를 잡기 위해 쪽잠을 자며 하루에 네 번 들물과 썰물에 그물을 턴다. 선주의 아내는 남편이 털어온 것 중에서 값이 좋은 꽃게나 서대는 수족관에 넣고 생새우를 골라서 팔았다.

갓 잡은 물걸이 새우./김준 제공

생새우는 제값을 받으려면 소금을 뿌려 젓갈을 담기 전에 팔아야 한다. 대전에서 왔다는 손님이 반지, 황석어, 고노리에 눈독을 들이자 주인이 바로 천일염에 버무려 담아준다. 옆에 있던 남편이 잽싸게 비닐봉지를 내밀어 반지 몇 마리를 담는다. 저녁에 한잔하려는 것이다. 그 옆에 있던 노인도 생새우를 놓고 주인과 흥정을 한다.

물걸이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싱싱하다. 영광에서는 비싼 오젓이나 육젓 대신 김장을 할 때 갈아서 넣는다. 물걸이는 이때 바로 무쳐내는 것이다. 처갓집에서는 물걸이를 무쳐낼 때 묵은 김치를 송송 썰어서 넣기도 한다. 김장보다 물걸이가 더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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