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차 박정현 "음원 순위 연연 안 해요, 다만 노래할 뿐"

권혜숙,인터뷰 2022. 10. 1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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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G아트센터 서울서 3년 만의 단독 콘서트 앞둬
"노래할 수 있고, 노래할 자리가 있고. 그 두 가지면 돼요"
가수 박정현은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어, 마지막 곡까지 왔네’가 된다”고 했다. “그만큼 몰입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한테도 미안하고 저도 아쉽죠. 저도 그 순간을 즐기고 싶으니까요.” 본부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歌手)’의 사전적인 의미는 ‘노래 부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다. 하지만 가수와 연관돼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척 다양하다. 보컬리스트, 아이돌, 래퍼, 직접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 연예인 혹은 셀럽…. 가수 박정현은 스스로를 “콘서트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그처럼 거의 매년 대규모 단독 콘서트를 할 수 있는 역량과 티켓 파워를 갖춘 여성 가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콘서트는 힘들지만 가수로서 제일 의미 있는 순간이에요. 예를 들어 가수 활동 중에 노래를 완성시키는 작업은 녹음실에서 이뤄지죠. 좋은 오디오 환경에서 뮤지션들이나 엔지니어들과 노래를 디테일 있게 완성시킬 수 있으니 녹음실에 들어가는 건 즐거워요. 그런데 결국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녹음을 하는 것이어서 저에게는 무대까지 가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저한테 최종 단계는 역시 무대인 것 같아요.”

오는 19~22일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에서 콘서트를 앞둔 그는 “코로나19 이후 첫 단독 콘서트여서인지 공연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고민이나 압박감보다 흥이 생긴다”고 했다.

-2019년 ‘만나러 가는 길’ 이후로 3년 만의 콘서트예요. 코로나19로 가수 데뷔 이래 가장 오래 쉬었다가 갖는 무대인 만큼 각별하겠는데요.

“어쩔 수 없이 쉰다는 핑계가 처음엔 잠깐 좋았지만 콘서트를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그리웠어요. 콘서트 제목을 ‘지금’으로 붙였는데, 관객분들도 저도 지난 3년을 돌아보면서 소중한 지금을 즐기자는 의미예요.”

이번 공연은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박정현은 LG아트센터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강서구 마곡동으로 이전하면서 준비한 두 달간의 개관 페스티벌에 유일하게 참가하는 대중가수이자 LG아트센터가 개관 22년 만에 사실상 처음 직접 기획한 대중가수 공연의 주인공이 됐다. LG아트센터는 대중가수에게 쉽게 무대를 내주지 않지만 박정현은 다섯 번 콘서트를 해 LG아트센터에서 가장 많은 공연을 한 대중가수라는 인연이 있다. 마곡으로 이전하면서 프로그램을 확장해 대중적인 면을 넓히려는 LG아트센터와 코로나19 이후의 공연을 고려하던 박정현 측의 뜻이 일치해 공연이 성사됐다. 티켓은 두 달 전에 일찌감치 매진됐다.

지난 7월 발표한 박정현의 ‘4시즌스 프로젝트’ 중 여름 ‘하늘을 날다’. 본부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계절마다 싱글을 발표하는 ‘4시즌스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1월에 미니앨범 ‘다시 겨울이야’를 발매했고, 4월에는 봄 프로젝트 ‘이름을 잃은 별을 이어서’, 7월에는 ‘하늘을 날다’를 선보였고요.

“코로나 때문에 쉬는 동안 빨리 음원을 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라디오(KBS 월드라디오 ‘박정현의 원 파인 데이’)를 병행해야 하니까 정규 앨범으로 작업하기에는 여유가 없고, 뜬금없이 싱글 하나를 내는 것보다 주제를 가지고 해보자고 4시즌스 프로젝트를 계획했어요. 그럼 팬들이 계절마다 새 노래가 나올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고 저도 꾸준히 음원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틀이 생기는 거죠.”

-가을이 가고 있어요. 가을 노래는 언제쯤 들을 수 있나요.

“살짝 스포를 하면, 가을 신곡은 콘서트에서 선공개할 예정이에요. 계절 프로젝트다 보니 벚꽃이 빨리 지면 어떡하지, 시간 때문에 불안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스트레스라기보다 좋은 자극이 됐어요. 해내고 나니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가을 신곡은 ‘미아’를 만든 작곡가 황성제씨의 작품이에요. 8집 수록곡 ‘서두르지 마요’ 이후 10년 만에 같이 작업했어요. 음원은 11월에 발매되고요.”

-지금은 가수 박정현의 커리어에서 어느 단계에 와 있는 걸까요.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인데, 성숙기쯤 될까요. 어느 팬분이 ‘박정현은 가수 활동 전체가 다 전성기’라는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글쎄요, 제가 성숙해졌다면 ‘잘해야지, 멋있는 걸 만들어야지’ 대신 ‘일단 해보자’ 정신으로 바뀐 것 같아요. ‘샹들리에’를 불러서 반응이 좋았으니 다음엔 그 이상을 보여주자, 이런 부담을 가진다고 잘되는 건 별로 없더라고요. 오히려 더 빨리 한계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것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져야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겠더라고요.”

-‘샹들리에’ 얘기를 하셨는데 ‘비긴어게인’(JTBC)에서 부른 ‘썸원 라이크 유’ 영상도 조회수 1500만뷰 가까운 인기를 모았죠. 그런데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요.

“‘썸원 라이크 유’는 저랑 안 맞는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비긴 어게인’이 외국에서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어서 누구나 아는 팝송을 기준으로 선곡했거든요. ‘샹들리에’도 살짝 위험했어요. 유행이 지나서 고민하다가 급하게 준비했거든요. 저는 유재하의 ‘지난날’을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불렀다는 걸 기억 못하시더라고요.”

가수 박정현. 본부엔터테인먼트 제공


-결국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에 대한 고민인데, 팬으로서 아쉬운 게 싱글 프로젝트지만 5곡을 꽉꽉 채운 ‘다시 겨울이야’처럼 공들여 만든 신곡들을 알리는 프로모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음원 순위는 신경 쓰지 않는 건가요.

“저는 순위에 연연한 적이 없어요. 물론 제 노래를 많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죠. 그 균형을 찾는 게 항상 제일 큰 도전인데 판단이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고,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해?’하는 의외의 것들이 늘 생기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대중성을 판단하는데 이번에 맞았으니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최종 목표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트렌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플러스 알파, 저만의 색깔을 넣은 음악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4시즌스 프로젝트’ 중에 ‘하늘을 날다’가 눈에 띄던데요. 떼창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 아닌가요. 대중적인 곡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 같아요.

“맞아요. 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떼창이라는 주제로 얘기하고 있었는데 게스트인 싱어송라이터 스텔라장씨가 ‘정현 언니 노래들은 떼창할 수 있는 곡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그런 노래를 만들어 보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핸드폰 메모장에 떼창에 어울리는 짧은 가사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고 멜로디를 상상했어요. 그렇다고 ‘요요, 소리 질러!’ 이런 건 아니고요, 제가 원래 록음악을 좋아해서 록스럽게 신나게 완성했어요.”

-4옥타브가 넘는 초고음 애드리브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데뷔 초에 많이 불렀던 팝송 원곡자인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 같은 스타들은 지금 박정현씨 나이가 되기도 전에 목소리가 악화됐잖아요.

“저도 가성 고음이 제법 빨리 없어졌어요. 어렸을 때 휙 올라가던 가성이 20대 중반 정도에 없어지더라고요. 데뷔 전에는 그렇게 노래를 많이 한 적도 없었고,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은 적도 없어서 그랬나 봐요. 오히려 잘 된 게, 빨리 없어지니까 미련이 남지 않더라고요. 그냥 앞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노래할 수 있는 폭 안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고음으로 따지면 제가 다른 가수들보다 그렇게 높지는 않아요. 제가 항상 주장하는데, 진짜예요.”

-설마요.

“제 음폭은 보통보다 살짝 높아요. 높은 만큼 아래 음이 조금 없고, 노래를 많이 할 때는 자연스럽게 아래 음들이 열리면서 높은 음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조금 쉬었다가 회복되면 다시 올라가지만 폭이 달라지진 않아요.”

지난 1월 발표한 박정현의 ‘4시즌스 프로젝트’ 중 첫번째 미니앨범 ‘다시 겨울이야’. 본부엔터테인먼트 제공


-국악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와 판소리 ‘이별가’를 불렀고 트로트 ‘비내리는 영동교’에 도전했었죠. 후배 아이돌 비스트의 ‘픽션’으로 랩을 하기도 했는데,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또 있나요.

“랩 한번 해봤으니까 이제 끝이야,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장르를 시도하면 그 장르와 관계가 시작되는 거죠. 그 장르의 요소를 제 음악에 조금씩 다시 활용하기 때문에 항상 제 앞에는 많은 장르가 펼쳐져 있어요. 기회가 생기면 계속 도전해볼 수 있겠죠.”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도 많이 하시는데, 요즘 정말 잘하더라는 후배가 있나요.

“스트레이 키즈가 잘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데이식스 팬이에요. 젊은 나이에 라이브도 잘하고 노래도 잘 만들어서 부럽더라고요. 싱어송라이터 중에는 폴킴이 늦게 시작했는데도 짧은 시간에 많이 발전했어요. 권진아씨도 잘하고, 잘하는 젊은 친구들 많아요.”

-20년 넘게 활동하면서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었나요.

“계속 있죠. 슬럼프도, 극복하는 것도, 그냥 일상이에요. 슬럼프 대부분이 뭔가 큰일을 앞두고 있을 때, 조금 높은 벽을 넘어야 할 때 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때 저는 큰 작업을 아주 작은 일들로 나눠서 하나씩만 하는 방법을 택해요. 저 먼 길 끝의 도착지를 보지 않고 앞에 있는 한 발짝에 집중하려고 해요. 작은 일을 해내면 저 자신을 조금씩 어루만지듯이 오냐 오냐 잘했어, 조금만 하면 돼, 괜찮아, 그렇게 극복하는 것 같아요.”

-올초에 이선희씨와 함께 출연했던 방송에서 ‘즐기면 안 돼, 긴장 풀면 안 돼’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했던 게 기억나네요.

“선배님이 제 롤모델이신데 그날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중요한 건 즐겁게 살고 있느냐는 것이라고, 내려놔도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선배님은 자기 관리부터 모든 부분에서 굉장히 부지런하세요. 온전히 노력으로 저렇게 될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저도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닮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수 박정현. 본부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가 되기 위해 가족을 떠나 홀로 미국에서 온 소녀는 단칸방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만들었다. 데뷔앨범에 실린 자작곡에 ‘평범한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며 두려움을 내비쳤던 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 됐다.

“노래를 평생 할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은 없을 거예요. 저는 완벽함을 찾는 건 아니에요. 그냥 노래를 할 수 있고, 그리고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있고.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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