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칼럼] 추석 차례상, 그리고 서울대학교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2. 9.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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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이 약간은 달랐다. 힘겨운 귀성과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는 일은 변함없었겠으나, 아마도 차례상을 준비하는 마음들이 약간은 가벼워진 추석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성균관이 추석 즈음에 발표한 ‘차례상 표준안’은 송편, 나물 등의 간소한 6가지 음식만이 제시돼 있었고, 놀랍게도 명절 때마다 후손들, 사실은 주로 어머니들과 며느리들이, 그토록 힘들게 씨름해왔던 전(煎)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성균관의 설명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당연하지만 너무나 새롭게 들리는 말이었다.

이미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많고, 명절을 온갖 허례(虛禮)로 점철된 성가신 연례 행사로 받아들이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평생 명절 때면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기름 두른 판에 곱게 갠 반죽을 조심스레 펴놓던 어머니들이, 그리고 수많은 며느리와 아들들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전 부치기’에서 해방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확실한 것은 성균관의 발표로 인해 전 부치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례가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 수도 있는 ‘보너스’가 된 것은 하나의 거대한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시아버지와 남편이 감히 성균관의 주장에 토를 달겠는가.

우화와도 같은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확하게 다음과 같다. 예전에는 아무리 저명한 한학자들이 나와서 “차례는 간단하게 지내는 것이고 홍동백서 같은 것은 원래 없었다”고 해도 전 부치기는 변함없이 계속됐지만, 막상 성균관에서 답을 내어놓고 원칙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은 누구나 수긍하는 정답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정답은 누구나, 전 부치는 어머니들과 며느리들과 아들들이 평생 기다리고 있던 정당성 있는 답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균관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중세적 국립교육기관이 아니라 적어도 이 장면에서는 오늘의 우리에게 답을 주는 ‘국민의 대학’이 된 셈이다.

이제 지난날의 실질적 권력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성균관의 견해를 존중하듯, 우리 사회는 권력보다 학문의 권위를 존중하는 나쁘지 않은 전통을 오래 보유해왔다. 수천년 전 부터 인재를 모아 펀더멘털부터 가르치는 국립교육기관 하나씩은 왕조에 있었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공부에 대한 경외감, 학문의 권위에 대한 존중, 그 긴 전통의 끝에 내가 일하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있다.

여기서 ‘국민의 대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금 되씹어보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정부예산을 받고 국회로부터 국정감사를 받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국민의 대학’이라 부르는 것이라면 그 시효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이곳은 고등학교 한 철, 학교 공부를 잘했던 청년들을 골라 받아서 출세가도를 열어주는 곳으로, 그리고 ‘잘나가는’ 교수들이 유무형의 특권을 누리는 ‘타인의 대학’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곳은 수많은 이들의 지분으로 이루어진 곳이 아닌가. 아들과 오빠를 뒷바라지하던 이전 세대 여성들로부터,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합격하지 못했던 수많은 수험생들까지, 그리고 학교를 방문하여 지금도 교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을 중고생들과 오늘도 학원 앞에서 인생을 갈아넣고 있을 수험생 어머니들에게도 서울대학교의 중요한 지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지분’이라는 말을 꿈과 희망과 기대라는 말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물음들은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인구감소와 4차산업과 취업경쟁과 국제화와 관료화 그 어느 골목 어딘가에서 우리는 다 함께 길을 잃었다. 그 와중에 진심을 다해 가르치고 배우는 그 기적 같은 일에 자신감을 잃은 나 자신을 돌아본다. 어쩌면, 또 다른 중세적 조직인 대학이 공룡처럼 멸종하는 것이 이상할 이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답변을 갈구하는 질문들은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것, 대학만이, 지식에 대한 깊은 고민과 탐구만이,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인재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심각하고 어려운 난제들이 그 어느 때보다 즐비하다는 것. 마치 성균관이 어느 날 불쑥 우리에게 정답을 안겨주었던 것처럼, 대학도 뼈아픈 변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국민의 대학’이기 위해, 그 크나큰 지분을 돌려드리기 위해 연구실과 도서관에서는 이름 모를 연구자와 학생들이 답을 구하기 위한 지적 탐험을 벌이고 있다는 것 또한 말하고 싶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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