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75걸음.. 말이 끌던 여왕 운구포차, 水兵이 맡은 이유
1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 행렬을 이끈 것은 영국 해군의 수병이었다. 영국 수병들은 이날 오전 10시44분, 5일간 일반인들이 조문하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여왕의 관(棺)을 대포를 싣는 수레인 포차(砲車ㆍgun carriage)에 올려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운구했다. 앞에서 98명이 로프를 잡고 포차를 끌고, 뒤에 로프를 쥔 40명의 수병은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행렬이었다. 걸음 속도는 장례 행렬용(用)인 ‘분 당 75걸음’이었다.
이 포차는 1901년 2월 빅토리아 여왕(1837년~1901년)의 장례식 때 처음 쓰인 2.5톤짜리 포차다.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장례 행렬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생전에 ‘군대식(式)’을 선호했다고 한다. 더 타임스와 BBC 방송 등 영국 언론은 수병이 장례 포차를 끄는 전통도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했다. 원래는 말이 포차를 끌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의 운구 행렬이 거행된 2월2일은 매우 추웠다. 관이 안치될 윈저 성까지 포차를 끌 영국 왕립 기마포병대 소속 말들은 앞다리를 드는 등 동요했고, 왕실은 관이 포차에서 떨어질까봐 우려했다. 설상가상으로, 포차와 말을 연결하는 봇줄을 고정하는 지지대(bar)까지 망가졌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 제1해경(海卿ㆍFirst Sea Lord)이 된 왕실의 독일계 친척 마운트배튼 경은 새로 왕이 된 에드워드 7세에게 “해군 의장대가 포차를 끌도록 하자”고 제의했고 왕은 이를 받아들였다. 9년 뒤 에드워드 7세가 숨졌을 때, 영국 해군이 왕의 운구 수레를 끄는 것은 새로운 ‘전통’이 됐다.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관을 덮는 천도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했다. 40년 전 먼저 세상을 뜬 사랑하는 남편 앨버트 공(1861년 12월 사망)을 만나러 가는 즐거운 날을, 검은색으로 ‘애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 군주의 장례식이 낮에 치러진 것도 빅토리아 여왕 때가 처음이었다. 이전 200년 동안 왕의 장례식은 저녁 때 열렸다. 심지어 선왕의 장례식에 새 왕이 참석한 것도 하노버 왕조(현 윈저 왕조의 이전 이름)의 다섯 번째 군주였던 윌리엄 4세(1765~1837)가 처음이었다. 새 왕이 ‘죽음의 장막’에 둘러싸인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상서롭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20여 년 전 빅토리아 여왕의 운구 수레는 윈저성 언덕까지 영국 수병이 끌고 올라갔지만, 이번엔 운구 차량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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