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풍운아 '김학철'을 읽다

박영서 2022. 9. 1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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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은 독립운동에 몸담았던 수많은 조선의용군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남아 그 당시를 기록하고 증언했다.

때문에 그는 '최후의 분대장'이라 불렸다.

그는 책에서 순박하고 정의감 넘쳤던 조선의용군을 사소하고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재현해 냈다.

거짓과 과장 없이 그저 있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해 내고 생생하게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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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지음 / 보리출판사 펴냄

김학철은 독립운동에 몸담았던 수많은 조선의용군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남아 그 당시를 기록하고 증언했다. 때문에 그는 '최후의 분대장'이라 불렸다. 책은 김학철의 생애를 소설처럼 재구성한 자서전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동지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그는 책에서 순박하고 정의감 넘쳤던 조선의용군을 사소하고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재현해 냈다. 거짓과 과장 없이 그저 있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해 내고 생생하게 써 내려갔다. 혁명적 낙관주의자답게 그의 글 속엔 유머와 위트가 담겨 있어 책은 너무 엄숙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담백하다.

김학철의 본명은 홍성걸(洪性杰)이다. 1916년 원산에서 누룩 만드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보 재학 중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 상하이로 탈출, 김원봉 휘하의 의열단에 가담해 활동했고,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1938년 조선의용대 창립대원이 됐다. 1941년 타이항(太行)산 후자좡(胡家庄) 전투에서 다리에 총을 맞고 일본군 포로가 됐다. 전향서를 쓰지 않아 총 맞은 다리는 치료받지 못해 절단됐다. 일본 나가사키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출옥했다. 서울로 돌아와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평양, 베이징을 거쳐 연변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에 정착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시기 10년 동안 또다시 옥살이를 한 후 1980년에야 복권되어 창작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책에는 개구쟁이 말썽꾼이었던 유년 시절,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던 학창 시절, 그리고 역사의 격랑에 몸을 맡기고 무장독립 투장에 매진했던 그의 생애가 상세하게 담겨 있다. 또한 조선의용군 수많은 청년들의 삶도 기록했다. 책 말미에는 김학철의 아들 김해양이 쓴 글 세 편도 곁들여져 있다. 김학철은 2001년 스스로 죽음을 결심하고 곡기를 끊었다. 그해 9월 25일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고향 원산 앞바다로 돌아갔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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