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배우에겐 정년 없어".. 오영수 "배우로서 70·80살 돼야 참모습 나와"

이강은 2022. 9. 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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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연극배우)에게 정년은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두 발로 단단히 서고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 (연기하겠다는 게)무대를 향한 마음입니다.”(박정자)

“연극은 인생을 얘기하는 것인 만큼 배우로서 인생을 얘기할 정도의 연륜을 밟아가면 배우로서 내공도 생기고 한 인물이 보여진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로서 길을 간다면 거기까지 가야지 않을까요. 70살 80살까지 갔을(연기를 했을) 때 배우의 참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오영수)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러브레터’ 제작발표회에서 오경택(왼쪽부터) 연출과 배우 오영수·박정자·배종옥·장현성이 작품 소개과 연극 참여 소감 등을 말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다음달 6일 개막하는 연극 ‘러브레터(LOVE LETTERS)’ 무대에 커플로 서는 박정자(80·멜리사 역)와 오영수(78·앤디 역)는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최근 원로 배우들의 활발한 공연 무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60년가량을 오롯이 연극에 바친 대배우들답게 묵직한 울림을 줬다.

박정자는 “연극 배우는 운동선수와 같다. 운동선수가 하루도 운동을 게을리하면 안 되듯 (배우도) 항상 훈련해야 한다”며 “그런데 사실 우리 연령 배우들이 작품하는 게 그리 쉽지 않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관객들이 기다려 주셨고, 연극 만드는 분들도 저희를 무대에 불러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영수는 “제가 40, 50(살) 때까지만 해도 연기라는 게 사회 부조리 현상을 표현하는 거였고, 당시 관객들도 그런 연극을 선호했다”면서 “그 시기 열렬한 관객 호흥에 희열과 배우로서 자긍심을 느꼈고, 그런 시간이 흘러 60대를 넘어 70대 되니 원로(배우)란 말도 듣게 됐다”며 연극계와 후배들을 향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인생을 얘기하는 게 연극이니 배우도 인생을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대한 그런 (부조리) 문제는 사건이지 인생을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배우로서) 나이를 먹으니 인생 얘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 현상을 보면 70(살) 넘을 경우 사라지거나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것 같아요. 연극도 젊은 연극으로 흘러가니 사건만 얘기하고 인생이 없어요. (요즘 연극은) 사건만 열심히 말하면서 관객과 호응하는 게 있지만, 결국 인생을 얘기하는 게 연극이란 점에선 ‘반연극’(적)입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500년 가까이 흐르는(계속 공연되는) 건 작품 속에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만 거기에(그 사건들을 통해) 인생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우가) 인생을 얘기할 정도의 연륜을 밟아가면 배우로서 내공도 생기고 한 인물이 보여진다”며 “후배들에게도 ‘배우로서 가는 길이라면 거기까지 가야하지 않겠는가. 70, 80(살)까지 갔을 때 배우의 참모습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가끔 얘기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1971년 극단 자유에서 만나 연극 ‘따라지의 향연’ 무대에 처음 같이 섰으며 50년 넘게 연극계 동료와 선후배로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약 7년 만에 다시 함께 무대에 서는 이번 공연과 관련해, 오영수는 “박정자 선생은 연배도 저보다 위시고 연극도 선배이시다. 50년 넘도록 (친한) 누님 같은 선배로 지내고 있다”며 “그동안 박 선배와 많은 연극 해왔는데 연극 ‘러브레터’를 준비하면서 (과거에 활동하며 쌓은 우정 같은) 감정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반가워했다. 이어 “저는 이 연극을 하면서 요즘 같이 ‘사랑’이란 말을 자주 표현하지 않는 삭막한 세상에서 ‘사랑’이란 말 되새기며 연극하는 게 뜻 깊다”고 했다. 

박정자는 “‘글로벌 스타’ 오영수와는 극단 자유에서 오래 전 만났는데 우리가 (이렇게) 나이 먹어서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니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앤디’와 죽도록 싫어하는 ‘멜리사’가 50년 동안 편지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축복이고, 그 추억과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러브레터를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아, 저렇게 머리가 하얘져도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놓지 않을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게 하려 한다. 저로서는 또 다른 무대로의 도전”이라고 의욕을 내비쳤다.  

박정자, 오영수와 함께 각각 ‘멜리사’와 ‘앤디’ 역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배종옥(58)과 장현성(52)도 두 선배에 대한 존경을 나타냈다.
배종옥은 “현장 나가면 어느덧 저도 위에 선배가 없을 정도로 나이 먹었더라. 아무도 내 연기에 대해 (어떻다고) 말해주지 않고 잘못하면 스스로 캐치해야 해 굉장히 고독하다”며 “(두 분 선생님과) 무대에 같이 서지는 않지만 함께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다. 제가 무대에 서는 것 이상으로 선생님들께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라 기대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하다보면 상대방과 느낌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감정과 기운들이 있는데 (연극 ‘러브레터’는) 편지만 읽으면서 감정을 가져와야 해 나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며 “선생님들이 연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는 것도 다른 공연과 다르게 의미가 있다. 연배가 다른 페어(두 쌍의 배우가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거)여서 작품은 하나지만 실상 두 개의 작품을 보실 수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장현성은 “소년 장현성일 때 동경하고 선망하며 바라본 무대 위 스타셨던 분들이고, 사적으로 가끔 훌륭하지 않은 분도 있는데 이 분들은 제가 좀 더 좋은 후배가 되고 싶게 만든다”며 “연습도 즐겁게 하고 있고 공연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이 분들(박정자·오영수) 공연을 보면 ‘앤디’와 ‘맬리사’의 20년 전이 궁금할 것 같은데, 그러면 우리(배종옥·장현성) 공연을 보고 싶을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우리 공연을 보면 ‘앤디’와 ‘멜리사’의 20년 후가 궁금해져 이 분들 공연을 보러 갈 것 같다”고 많은 관객이 찾아 줄 것을 당부했다.
오경택 연출은 연극 ‘러브레터’는 대본이 너무 좋은데 형식이 단순해 관객들에게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주고 집중할 수 있게 할 만한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한 작품이라면서 많은 고심 속에 캐스팅한 과정을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다. 그는 “아무래도 액팅(동작) 없이 말로만 (이야기가) 전달돼야 하니까 굉장히 섬세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작품”이라며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모시는 게 첫째였다”고 말했다. 이어 “둘째는 배우들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속내를 편하게 터놓을 수 있을 만큼 실제로 오랜 세월 친밀감이 있었으면 하는 거였고, 셋째는 미국이란 공간과 1930년∼1980년대란 시대적 배경을 떠나서 작품의 보편적 힘과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끔 많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로 떠오른 게 박정자와 오영수였다고. “작품이 오랜 시간 진정한 인간관계를 나누고 소통한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오랫동안 연극 무대를 지켜오신 박정자, 오영수 선생이 지닌 연륜과 내공, 시간의 힘 등이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직관적으로 (두 분이) 떠올랐습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될(10월6일∼11월13일) 연극 ‘러브레터’는 두 남녀 ‘앤디’와 ‘멜리사’가 5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들을 관객에게 읽어주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미국 대표 극작가 A.R. 거니의 대표작으로, 드라마 데스크상 4회 수상, 루실 로텔상 2회 수상, 퓰리처상에 2회 노미네이트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까지 30개 언어로 번역되며 전세계 국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계 스테디셀러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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