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김연교 "'파로호' 미리의 내면, 공감할 수 있었다"

류지윤 2022. 9. 5. 08: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6년 데뷔
'네가 사랑한 것들을 기억할게' 연출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로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김연교. '파로호'에서 진한 화장으로 슬픔을 감추고 살아가던 미리의 고단한 얼굴과는 180도 다른 인상이었다. 미리가 화장과 웃음으로 자신의 결핍을 숨기려 했다면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김연교는 자신이 느꼈던 배우로서 느꼈던 아픈 기억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그의 이런 성정이 앞으로의 김연교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는 '파로호'에서 김연교는 치매 노모의 실종 후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도우(이중옥 분)의 곁을 맴도는 다방 종업원 미리 역을 맡았다. 점철된 외로움을 숨겨보려 하지만 자신과 결이 비슷한 도우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는 인물이다.


김연교가 '파로호'에 출연할 수 있었던 시발점은 영화 '보이스'였다. '보이스'에서 보이스 피싱을 당한 취준생으로 잠깐 출연했던 모습을 인상 깊게 봤던 연출부가 '파로호'의 인물 캐스팅을 담당하게 되면서 그에게 오디션 제의를 했다. 그렇게 김연교는 '파로호'의 미리가 될 수 있었다.


"감독님께서 제 이미지가 바르고 단정한 느낌인데 오디션 때 제가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게 엉뚱해 보였대요. 제가 그 동안 편하게 했던 캐릭터들과 달라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거든요. 이 모습을 보고 제가 미리를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김연교는 미리와 자신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미리를 더 연기하고 싶었고 애착이 갔다. 살아보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해야 할 때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지만, 이번엔 굳이 미리를 멀리서 찾으려 하지 않았다.


"외적으로는 저와 너무 다르지만 내면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어요. 소속감을 필요로 하고 외로운 사람이죠.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미리를 꼭 연기하고 싶었어요. 어쩌다가 화천까지 와서 다방 일을 하게 됐을까 싶었죠. 그래서 직업군에 대한 기사와 환경을 찾아본 적이 있었어요. 알고 나니 오히려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때를 끄집어냈어요."


'파로호'는 보는 사람마다 결말을 다르게 해석된다. 어떤 의견이든 옳고 그름의 선을 긋지 않음으로써 생각할 거리를 계속해서 건져낸다. 김연교 역시 이 같은 점을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관객으로 이 영화를 본 건 아니기 때문에 시선이 다양할 수 없지만 관객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롭게 느껴지고 배운 점도 있었어요. 영화가 모호해 흥미로운 지점이 참 많아요. 감독님도 GV 때 명확하게 대답해 주지 않으셨어요. 감독님은 다양한 반응이 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문득 '내가 이래서 이 영화와 감독님을 좋아했었지'란 생각이 떠올랐어요. 답은 내려주지 않지만 오히려 영화 안에서 생각하기보단, 영화 밖에서의 삶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인 점이 마음에 들어요."


미리는 도우의 곁에 머물면서 호감을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말을 하며 도우를 외면한다. 그렇지만 또 다시 도우를 찾아가 애정을 갈구한다. 누군가는 미리의 이런 행동이 이해 가지 않을 수 있지만 김연교는 미리의 공허함에서 단서를 찾았다.


" 미리는 도우 앞에서만 솔직해지고 남들 앞에서는 늘 연기를 하고 살아요. 거짓말을 한 이유는 자신이 도우와 함께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미리는 결국 도우로부터 죽을 뻔한 위기를 겪게 되고, 영화는 이후 미리의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김연교는 미리가 지금쯤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까.


"저는 미라가 신고를 할 수 있을 거란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신고라는 건 무언가를 바로잡고 싶은 게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요. 미리가 바로잡고 싶은 게 있을까 싶었죠. 미리는 언제나 밑바닥에서 도우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일은 밑바닥에서 한 단계 더 밑바닥을 본 모습을 봤다 정도로만 받아들였을 것 같아요. 도우를 어떻게 되돌려야 하는지 미리는 모를 것 같고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일이지만 미리에게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한 번 더 좌절된 것에 그쳤을 것 같아요. 또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봐 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지 않을까요? 저의 바람은 제 안에도 미리 같은 모습이 있으니 어딘가 소속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뿌리내려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해요."


김연교의 첫 데뷔작은 2016년 연극 '안나라수마나라'다. 이후 '미옥', '용이를 찾습니다', '탐정: 리턴즈', '아워 바디', '백두산', '좀비13', '파이프라인', '보이스', '색다른 그녀', '광장' 등 독립영화 주연과 상업 영화 조연 단역들에 출연해왔다.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2008년 입시 준비를 해 연극 영화과에 입학했지만 한 달 후 자퇴를 결심했다. 이후 다시 연기를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생각 한 것이 2016년이었다.


"한 달 정도는 신이 나서 열심히 활동했어요. 그런데 몸도 안 좋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자퇴를 했죠. 다시 입시를 준비해 인문계열로 입학했고 졸업해서 취업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제일 재미있게 했었던 게 무엇인지 떠올리다 결국 연기를 다시 하게 됐어요."


그렇게 다시 시작한 연기가 삶의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다시 연기의 재미를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무 살 때는 정말 재미있게 연기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스무 살 때의 지금의 내가 너무 달라져 있었어요. 어렸을 땐 조금 더 당돌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른 후의 나는 웅크리고 있는 사람처럼 녹슬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연기가 재미있다고 느낀 적은 많지 않아요."


그럼에도 계속 연기를 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사랑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무언가에 욕심을 내본 적이 없는데 연기만큼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괴롭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난해에는 이가홍, 김서영 감독과 함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 받아 '네가 사랑한 것들을 기억할게'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이 작품은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뉴 쇼츠 부문에 선정돼 상영됐다.


"누군가가 만드는 것에 지친 세명이 모여 우리가 재밌는 걸 해보자 싶어서 만들었어요. 연기를 그만두고 싶었을 때 '그래도 더 해봐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연기에서 조금 멀어져보기 위한 도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사실 처음 연기를 시작하면서 '5년 동안은 그만두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을 먹었어요. 5년 안에 뭔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나봐요. 그 생각이 계속 저를 낭떠러지로 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멀어지고 연기 말고도 내 삶을 채울 수 있는 다른 걸 또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연출도 하고 글도 쓰고 전시도 도전해 봤어요. 정체성을 배우로만 고정시키면 너무 괴로워서 노력했던 것들이 저를 오히려 행복하게 연기를 오래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줬어요."


김연교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으니 '파도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배우'라고 답한다. 오늘도 여전히 자신을 향해 닥쳐오는 파도를 유연하게 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 중이다.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 넘실거리는 파도를 기꺼이 잘 넘으며 살아가고 싶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