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칼럼] 폭우, 대통령, 그리고 관료제적 합리성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2. 8.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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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한 한반도를 강습한 폭우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우리에게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던져주었다. 특히 폭우에 대처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공적 담론은 대체로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과 언행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그러나 나는 해당 사안이 단순히 순간적 판단 오류나 ‘홍보’의 실패, 혹은 스타일과 언행의 문제라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비판은 매우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통령은 매우 일관된 ‘세계관’ 내에서 움직였고,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우리 사회가 어떤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일 따름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을 굳이 이름 붙이자면 ‘관료제적 합리성’의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요약해 준 말은 대통령이 폭우 당일 “경호 의전을 받으면서 나가는 게 적절치 않다고 본 것”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요컨대, 재난에 대비하는 효율적인 관료제적 작동에 오히려 대통령의 개입이 방해가 되며, 대처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만만하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두 개의 뿌리깊은 연원을 지닌다. 그 하나는 한국의 효율적 관료제에 대한 믿음. 중앙정부 공무원만 100만명이 넘어서는, 조선시대와 일제의 강력한 관료제를 거치고 발전국가를 이끌었던 우리의 관료시스템은, ‘관료제’라는 말의 부정적 뉘앙스만 제외한다면 한국 사회 모든 영역의 발전을 이끌어온, 혹은 이끌어왔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압도적 집단이 아닌가. 우연찮게도 수많은 공무원의 호소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치가 우리를 흔들지만 않으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들을 “흔들지 않았을” 따름이다.

두번째 연원은 대통령 개인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쉽게 잊고 있지만, 윤 대통령의 당선은 정통 관료가, 그것도 퇴임 후 꼭 1년 만에 정무직의 최고 자리에 선출된 한국 정치사에 전무한 사건이었다. 이를테면, 한국의 압도적 관료제가 정치의 외피를 뚫고서 직접 통치를 시작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연찮게도 역사책에 남을 윤 대통령의 한마디 인용구는, “저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말. 여기서 조직이란 말을 ‘관료제적 절차’라는 말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관료제적 합리성의 세계란 그런 것이다. 미리 정해진 절차와 매뉴얼이 있고, 기능적으로 분화된 업무와 담당 부서들이 있으며, 이를 상명하복의 인적 조직으로 채워서 근대 국가의 통치를 질서정연하게 구현하는 기계 같은 것. 현대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는 이상과 같은 관료제적 기계를 어떻게 시민들이 잘 통제할 수 있을지, 영혼 없는 관료제의 영혼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관료제의 절차적 효율성에 정무적 판단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매우 좁아졌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윤 대통령이 오늘의 자리까지 오른 기반은 끊임없는 ‘정무적 판단’ 혹은 정치의 영역에 대한 관료제적 공격이었으며, 그 핵심에는 ‘직권남용’의 네 글자가 상표처럼 찍혀 있다. 검찰총장으로서 법무부 장관에게 반기를 들었고, 탈원전정책을 진행한 장관을 구속 신청했으며, 대북정책을 포함한 지난 정부의 일들에 대한 감사도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한 죄목의 상당부분도 직권남용이라는 점이다.

이상 재판과 수사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정치 영역이 끊임없이 축소돼왔고, 관료제적 합리성에 대한 시민적 통제라는 이상은 타격을 입었으며, 현재, 직권남용을 피하기 위해 가장 조심스러워할 사람 역시 윤 대통령이라는 역설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공무원들이 상급자의 지시를 ‘보험’으로 녹음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그리고 폭우.

예상을 불과 살짝 뛰어넘었을 따름인 자연의 일이 무심코 알려준 것은, 우리의 관료제적 매뉴얼, 혹은 법으로 질서정연하게 구축된 세계가 너무나도 많은 빈틈을 안고 있고, 그 빈틈에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이 ‘익사’할 수 있단 사실이었다. 폭우를 뚫고 떠오른 ‘#무정부상태’라는 해시태그는 정부 공적 대처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소한 빈틈을 메울 리더십의 부재를 지칭한 말일 따름이었다. 있어야 하지만 없었던 그 무엇을 우리는 ‘정치’라 부른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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