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수의 경세제민]대학개혁 없인 반도체 미래 없다

신하영 입력 2022. 8. 11.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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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수 국민대 전 총장·명예교수] 미국의 군사 무기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스마트 폰에서 주로 사용하는 5나노급 반도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자국 내에 반도체 제조회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설계회사를 뜻하는 팹리스 분야에선 단연 미국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는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인 TSMC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반도체 공급이 차단돼 미국 안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인텔·브로드컴 등 자국 기업이 파운드리 공장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만들었다.

파운드리 공장 하나를 짓는 데 필요한 돈은 10조 원 이상이다. 중국은 이런 투자금액의 70%를 중국 정부가 지원한다. 미국회사가 중국 파운드리와 경쟁할 수 없는 구조다. 더욱이 SMIC·화훙·넥스칩 같은 중국 파운드리 회사가 최근 급성장하고 있으니 미국으로서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일본도 잃어버린 반도체 영광을 되찾기 위해 반도체공장을 짓는 데 최대 10조 원을 지원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반도체 전쟁은 기업 간 경쟁을 뛰어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만보다 늦게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해 부지런히 TSMC를 쫓아가고 있다. 하지만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분야는 진출도 늦었고 인력도 부족해 뒤처진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팹리스 기업들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인력 채용을 위해 대학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도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 중견기업인 반도체 장비회사도 마찬가지다. 신규 인력을 채용해 3년 정도 훈련을 시켜 쓸 만한 인력이 되면 대기업으로 이직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더 나은 기회를 잡기 위해 이직하는 사람을 법이나 제도로 막을 수 없으니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다.

교육부는 반도체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해 관련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정원 증원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대학에서 인재 양성을 제대로 해낼지는 의문이다. 특정 전공에만 △교원 충원 △공간 배정 △시설투자 △대학원생 증원 등의 지원책이 쏠리게 되면 다른 전공 분야에선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관련 정원을 늘리면 그에 따라 교수 충원, 시설 투자가 뒤따라야 하지만 대학 내 이해관계에 따라 진통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인력양성 방안을 만든 주체는 교육부지만, 이를 실행하는 주체는 대학이다. 정작 대학에서 반도체 인력양성 방안이 실행되지 않으면 정책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반도체 인력양성이 잘 되려면 크게 5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교원 확보다. 대학에는 반도체 설계를 가르칠 교수가 거의 없다. 교수의 승진·승급은 논문실적에 의해 정해지는데 설계 분야에선 학문적 특성상 논문이 잘 생산되지 않는다. 그러니 반도체 설계를 연구하는 교수가 거의 없고 교육할 교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는 반도체 기업에서 은퇴한 분들을 대학의 교수로 모시는 겸·초빙교수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과연 배타적인 대학에서 어렵게 모신 분들에게 필요한 과목을 만들어주고 수업을 배정할지는 미지수다.

또한 현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대학으로 초빙해 강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는데 빠듯한 일정에 눈코 뜰 새 없는 기업 간부들이 대학에 와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맡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대학에는 겸임교수라는 제도가 있지만, 외부 전문가 영입도 힘들고 이들이 강의를 맡는다고 해도 1~2학기 정도 마친 후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관두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는 시설투자다. 파운드리 같은 공정 기술은 적어도 미니 반도체 라인이 있어야 교육이 가능하다. 시설을 설치하려면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대학에서 공간은 항상 부족한 자원이다. 반도체 전공에 공간을 대폭 배정하는 것은 타 전공 교수들의 양보를 얻어야 하는데 이 부분도 어려운 일이다.

셋째는 대학원생 확보다. 이공계에선 대학원생이 없으면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힘들다. 교수의 지도에 따라 실제 연구개발·실험을 수행하는 주체가 대학원생이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공정 기술에선 반도체 전공자뿐 아니라 화학·물리·전자전공 학부생을 대학원생으로 받아 실습 교육을 시켜야 연구가 가능하다. 만약 반도체 분야 대학원에서 인접 학부의 졸업생을 데려간다면 타전공 분야 교수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넷째는 교내 반발에 대한 해결책이다. 반도체란 특정 학문 분야를 육성하려면 교내의 반발을 해소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학본부의 갈등 조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총장이 앞에 나서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총장이 개혁을 이끌려면 대학의 총장선출제도를 고쳐야 한다. 선거로 총장을 선출하는 대학이 상당수 있는데 이런 대학에선 총장이 선거권을 가진 교수·직원의 눈치를 보게 된다.

다섯째는 대학의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개혁이다. 혁신을 추진하려면 구성원들이 각자의 임무·권한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수들은 대학 내 모든 의사결정에 자신들이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교원에게는 교육·연구에 관한 자율성을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맞지만, 학내 구조조정이나 자원배분은 대학본부와 총장이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대학이 나아갈 방향은 대학본부가 결정하고 이에 대한 실행은 교수·직원이 해야 하지만 이런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에서 개학이나 혁신을 추진할 때 구성원 반발에 막혀 무산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얼마 전 중국의 반도체 기업 SMIC이 7나노급 반도체 제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이미 중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턱밑까지 쫓아왔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금세 역전된다. 교육부도 대학의 내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니면 세금 낭비가 커진다. 대학 구성원도 안전망만 요구하고 안주하려 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개혁 없이는 국가의 미래도 없다.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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