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청년의 마법.. 6번의 "할수있다"

민학수 기자 2022. 7. 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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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장애인 US오픈 3언더파 기록.. 연장 끝에 챔피언 올라
중1때 간 골프장서 "나 이거 할래"
골프하며 장애 2급서 3급 좋아져
5년前 1부 투어 프로선발전 통과
"PGA 뛰는 날까지 용기 더 내겠다"
이승민母 "현실세계 희망 됐으면"
우즈 "우리에게 많은 영감" 찬사
발달 장애 이승민이 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에서 열린 제1회 장애인 US오픈에서 남자부 챔피언에 올랐다. /USGA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여섯 번 마음속으로 말하면서 경기했어요.” 우승 트로피를 받은 발달 장애 골퍼 이승민(25)이 어린이같은 말투로 소감을 말하자 시상식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다양한 장애를 지닌 전 세계 96명의 골퍼가 참가해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갔던 제1회 장애인 US오픈이 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 리조트 6번 코스(파72)에서 사흘간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한국의 이승민이 연장 접전 끝에 장애인 US오픈 남자부 초대 챔피언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이날 최종 3라운드에서 1타를 줄인 이승민은 3타를 줄이며 추격한 펠리스 노르만(스웨덴)과 나란히 합계 3언더파 213타를 기록해 연장에 들어갔다. 노르만도 역시 발달장애 골퍼다. 17·18번홀 2개홀 합산 방식으로 치러진 연장전에서 이승민은 버디·파를 기록해 파·보기를 한 노르만을 2타차로 제쳤다. 이승민은 축하 물세례를 받고는 환호성을 지르고는 “무더운 날씨에 물을 뒤집어쓰니 시원하다”며 즐거워했다.

“엄마 꿈같아요” 자폐 이승민, 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 - 이승민이 2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장애인 US오픈 골프 최종 라운드에서 우승을 결정지은 다음 물세례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발달 장애 3급인 이승민은 올해 신설된 이 대회에서 연장 승부 끝에 스웨덴의 펠리스 노르만(발달 장애)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역사가 만들어졌다”며 초대 챔피언 이승민을 축하했다. /USGA

이승민은 두 살 무렵 선천적 자폐성 발달 장애 진단을 받았다. 특이하게 어려서부터 파란 잔디에 하얀 공이 날아다니는 골프를 좋아했다. 그가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10년간 미국 등에서 생활하다 귀국하니 장애인의 현실은 숨 막혔다. 아버지를 따라 골프장에 간 날 이승민은 “나 이거 하고 싶어”라고 했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어머니 박지애(56)씨는 아들의 골프 뒷바라지를 결심했다.

골프는 기적을 선물했다. 고교 2학년이던 2014년 이승민은 세미 프로골퍼 자격증을 땄고 3년 뒤에는 한국프로골프(KPGA) 사상 처음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선수가 1부 투어 프로 선발전을 통과하는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승민은 프로 대회에서 3차례 컷을 통과했다. 낯선 이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던 이승민은 좋아하는 골프를 하면서 발달 장애 2급에서 좀 더 완화된 3급이 됐고 언어 구사 능력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승민은 시상식에서 준비해간 감사의 글을 읽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닌 그는 영어를 할 줄 안다.

“저를 어둠 속에서 밝은 세상으로 꺼내 주신 부모님께 특별한 고마움을 전달합니다. 후원사인 하나금융그룹과 캘러웨이, 보그너에도 감사합니다. 저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윤슬기 캐디 겸 트레이너에게도 고맙습니다. 목표인 PGA투어와 마스터스까지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겠습니다.”

이승민이 21일 제1회 장애인 US 오픈 최종 라운드 3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치는 순간 골프채가 햇빛을 받아 번쩍이고 있다. 이승민은 우승을 차지한 뒤 “너무 기쁘다. 라운드 중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고 계속 되뇌었다”며 “더운 날씨에 축하 물 세례를 받으니 시원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USGA

미국골프협회(USGA)가 다양한 장애를 지닌 골퍼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마련한 이번 대회에는 15세 소녀부터 80세 할아버지까지 11국 남녀 골퍼 96명(남자 78명·여자 18명)이 참가했다. 사정에 따라 코스 길이(4개의 티잉 구역 사용)는 서로 다르게 하되 최저타(3라운드 54홀)를 기록한 남녀 선수에게 우승 트로피를 수여했다.

어머니 박지애 씨는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실제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분이 승민이를 보면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리 장애 박우식(64)은 공동31위, 발달 장애 이양우(24)는 57위로 대회를 마쳤다. 고교 체육교사인 의족 골퍼 한정원(52)은 7위였다. 여자부 우승은 다리 장애를 극복하고 대학 골프 코치로 활동하는 킴 무어(41·미국)가 차지했다. 마이크 완 USGA(미국골프협회) 회장은 “역사가 만들어졌다. 세계 곳곳에 장애인 골프에 대한 관심을 높여 패럴림픽에도 골프가 정식 종목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장애인 US오픈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고 찬사를 보냈다. 미국 골프채널이 대회 기간 내내 특집 방송을 내보내는 등 현지 매체들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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