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고 휴양지까지 갔는데 수영 한번 안 했습니다

백종인 2022. 7. 11. 11: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LA 태평양의 유일한 관광섬, 산타 카탈리나에 하이킹한 이야기

[백종인 기자]

▲ 카탈리나섬이 대문 격인 아발론 항구 항구 마을인 아발론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보기에도 메말라 있다.
ⓒ CHUNG JONGIN
LA(엘에이)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면 검푸른 바다의 수평선만이 보인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섬을 찾을 수 없다. 새들의 날갯짓이 고달프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수평선 너머 배를 타고 나가면 이곳에도 섬이 있다. 이른바 '채널 제도'라 불리는 8개의 섬이다. 이중 엘에이 카운티에 속한 산타 카탈리나섬은 8개 섬 중 가장 넓고 채널 제도의 총인구 90%가 살고 있으며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거의 유일한 관광섬인 셈이다.

한국의 산과 섬을 누비며 걷다 4년 반 만에 엘에이로 돌아와 첫 번째 나들이 장소로 선택한 곳이 산타 카탈리나 섬이었다. 섬으로 출발하는 롱비치항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고 한여름에도 해양성 기후로 어느 정도 더위를 피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또한 얼마 전 보았던 영화 <Her>에서의 장면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다가 아름답겠지만 물놀이에 대한 흥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나로서는 두 다리만 믿고 그곳의 하이킹 코스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하이킹 하러 가는 섬

롱비치항에서 남서쪽으로 47km 떨어진 곳에 있는 카탈리나섬은 면적이 194.2제곱킬로로 울릉도의 세 배 가까이 되는 작지 않은 섬이다. 원주민부터 스페인 점령군 등에 의해 산발적으로 사용되다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 것은 껌을 파는 재벌인 리글리(Wrigley)에 의해서다. 이후 70년대에 섬의 90% 이상을 섬 보호 협회가 관리하게 되어 오늘날의 해상 관광지가 된 것이다.
 
▲ 롱비차항의 앞바다 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섬 대신 화물선들이 즐비해 서있는 것이 롱비치항이 미 서부의 물류 중심 항임을 말해주고 있다.
ⓒ CHUNG JONGIN
6월의 마지막 날, 카탈리나섬의 출발지인 롱비치항은 휴가철이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섬 대신 화물선들이 즐비해 서 있는 것이 롱비치항이 미 서부의 물류 중심 항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속정으로 약 한 시간 가량 태평양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바다는 눈부신 태양 빛을 받아 검푸르게 변해갔다. 고속정을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러 섬으로 갈까? 적어도 우리처럼 산을 오르기 위해 가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섬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빌딩만 한 크루즈 선이 떠 있고 해안은 요트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패라 세일링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항구 마을인 아발론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보기에도 메마른 것이 앞으로의 산행이 걱정스러웠다. 
 
▲ 아발론 항구의 골목길 가든으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드니 관광객들은 사라지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 CHUNG JONGIN
 우리의 목적지는 <Garden to Sky Loop Trail>로 일단 출발점을 찾아야 했다. 세밀한 준비 없이 시작한 하이킹, 멀리서 보아도 산길이 훤히 보여서였나보다. <Garden to Sky Trail>이나 여기에 Loop을 덧붙이는 트레일이나 출발점이 같을 거라는 막연한 짐작으로 <Wrigley Memorial And Botanic Garden>으로 향했다. 가든으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드니 관광객들은 사라지고 갑자기 조용해졌다. 햇볕은 강렬했으나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트레일이라기에는 너무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말을 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CHUNG JONGIN
 약 3km가량 걸어 도착한 가든 입구는 이곳의 수송 수단인 골프 차를 타고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희귀한 선인장으로 꾸며진 가든을 통과하는 길에 마중 나온 사슴과 인사하고 우리는 리글리 뮤지엄 옆길의 트레일 입구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우리만을 위한 트레일. 트레일이라기에는 너무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말을 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는 듯한 햇살로 솟아오른 땀은 시원한 해풍에 곧 사라졌다.
길을 잘못 들어서도 좋은 이유
 
▲ 트레일에서 만난 쉼터 바다 쪽 길이 산등성이에 막히니 바람도 막히고 햇살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반가운 쉼터를 만났다.
ⓒ CHUNG JONGIN
 일찍이 트레일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일행과 만난 우리는 <Garden to Sky Trail> 정점을 지나 섬의 뒤편으로 돌아섰다. 길 오른쪽이 산등성이에 막히니 바람도 막히고 햇살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멀지 않은 곳에 정자처럼 생긴 쉼터가 보였다. 도착해보니 지붕이 넓적한 나무 살로 되어있어 충분한 그늘이 되기에는 부족했으나 아쉬운 대로 잠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사막 숲 한가운데 짙푸름을 과시하는 나무가 있다.
ⓒ CHUNG JONGIN
 어느 길로 올라왔는지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이제까지 우리가 걸었던 길과 이어진 길로 가길래 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사실 쉼터 앞에 다소 가파른 내리막 길이 보였으나 뚜렷한 길 표시가 없고 낯설어 의심 없이 큰길로 나선 것이었다.

길은 계속 이어지고 지도에 나와 있는 Lone Tree가 멀리서 짙푸름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마을이 보여야 할 거 같은데… 이때, 우리가 가는 트레일 이름이 예정된 <Hermit Gulch Trail>이 아니라 <Trans Catalina Trail>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뭔가 잘못되었군. 길 맞은편 메마른 저수지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다소 거칠게 포장된 길이 마을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길로 몇 대의 트럭과 자동차가 지나갔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발론 항구로 가려면 포장된 길을 따라가야 했다.

포장된 길이라 재미는 없었지만 길 양쪽에 제법 큰 나무들이 있어 그늘을 제공해 주었다. 알고 보니 이 길은 주로 산을 관리하는 차량과 Eco-Tour라는 관광객들에게 카탈리나섬의 자연환경을 설명하는 개조된 트럭이 다니는 곳이었다. 트럭 한 대가 잠시 멈추더니 우리에게 찬 음료수 한 병을 건네 주기도 하였다. 
 
▲ 트레일에서 내려단 본 아발론 항구 빌딩만한 크루즈선이 떠 있고 수편선 멀리 희미하게 엘에이가 보인다.
ⓒ CHUNG JONGIN
아발론 앞 바다에 떠 있는 크루즈선이 점점 크게 보이고 마을의 집들이 선명해졌다. 이제는 트럭 대신 관광용 골프 차가 떼지어 다녔다. 우리의 긴 트레일 여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 속 목마름과 허기를 채워줄 식당을 찾을 차례가 된 것이다.
늘 그렇듯, 우리의 트레일 여정은 세심한 준비와 날카로운 길눈 대신 튼튼한 다리가 해결해 주었다. 예정한 6km의 트레일 대신 10km를 걸었다. 돌아가는 배 시간까지 한창 여유가 있었으나 나이 탓인지 지친 다리 탓인지 물놀이는 물론이거니와 짚라인을 즐기거나 잠수함을 탈 생각이나 여력도 없었다. 그저 정박해 있는 요트 앞을 헤엄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것으로 만족했다.
 
▲ 아발론 항구를 메우고 있는 요트들 정박해 있는 요트 앞을 헤엄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 CHUNG JONGIN
그래도 찾아보니 여행 사이트에서 권하는 카탈리나섬에서 해야 할 몇 가지 어드벤쳐 중 하이킹은 꼭 순위에 들어가 있었다. 우리의 하이킹은 트레일만을 다녀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Eco-Tour 코스까지 두 발로 다니지 않았던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당일치기 여행 팁: - 카탈리나 익스프레스: https://www.catalinaexpress.com/ - 섬을 즐기는 7가지 방법: https://www.catalinatours.com/blog/7-fun-things-to-do-on-a-day-trip-to-catalina/ - <Garden to Sky Loop Trail> 가는 방법: <Hermit Gulch Trail Campground>에서 출발하여 쉼터 도착(3km), 왼편의 Divide Road(1.3km)를 거쳐 <Garden to Sky Trail>로을 따라 Wrigley Memorial(2km)까지 간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