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귀신 스캔들' 의사들의 범죄 입증은 왜 어렵나

이준목 2022. 6. 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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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강남 개미귀신 스캔들' 편

[이준목 기자]

한 번 발을 잘못 들이면 절대 빠져나올수 없다는 개미지옥, 그 아래엔 함정을 파놓고 개미 를 잡아먹으려고 기다리는 개미귀신이 있다. 여성들을 개미같은 먹잇감으로 여기고 덫을 놓는 개미지옥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 개미지옥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피해자들이 있었다.

1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강남 개미귀신 스캔들 - 그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부제로 유명 병원에서 불법적으로 벌어지는 약물 관련 범죄 실태를 조명했다.

지난해 12월 송유미 씨(가명)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빼어난 미모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결혼생활을 했던 유미 씨는 이혼 이후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었다고. 사망하기 얼마 전부터 유미 씨의 통장내역에는 특정 병원이 유독 자주 등장했고 일정한 금액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계속해서 결제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유미 씨의 언니는 동생이 지난해 11월부터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에 여기저기 돈을 빌렸다고 증언했다. 다급하게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하다가 몇시간 지나서는 멀쩡한 목소리로 다시 통화하기도 했다고. 유미 씨가 남긴 노트에는 '그만 가자, 제발 정신차리자'라는 의문스러운 글귀가 적혀있었다.

알고보니 유미 씨는 사실 강남의 한 병원 원장인 장 원장(가명)에 대해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고,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함께 장 원장을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다. 유미 씨와 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정희영 씨(가명)는 "유미 언니가 되게 수치스러워했다. 부끄러워하고 울었다"고 증언했다.

희영 씨는 장 원장을 '교주'에 비유했다. 희영 씨가 몰래 녹취한 녹음 파일에는 장 원장이 폭언을 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장 원장은 간호사도 없이 예약제로 운영되던 병원에서 찾아온 여성환자들을 성폭행했다. 유미 씨가 남긴 기록에는 성폭행당한 날과 장소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었다.

의아한 부분은 유미씨와 희영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원치않는 일을 당하고서도 이후로 장기간 해당 병원을 지속적으로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약물 중독' 때문이었다. 희영 씨는 "처음엔 잠을 잘 재워주는 약인줄 알았다.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불법이 아니라고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저희도 중독이 될 줄 몰랐다. 중독성이 분명히 없다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장 원장은 피해자들에게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라는 전신마취 유도제를 투약했다. '제2의 프로포폴', '저지방 우유'라는 은어로 불리는 에토미데이트는, 향정신성 의약품이 아닌 의사의 처방에 따라 사용가능한 전문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다. 장 원장의 병원은 대외적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소개되어있었지만, 실체는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해주는 전문 병원으로 이용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있었다.

장 원장은 약을 무기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의 피해자들에게 상습 추행과 강간을 일삼았다. 장 원장은 지난 4월 구속되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대신 변호인을 통하여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미 씨가 장 원장의 병원을 처음 찾은 것은 2016년 10월 경이었다. 경찰에 남긴 진술서에 따르면 처음에는 일반 피부 관련 시술만 받았던 유미 씨는 약 6개월이 지나고 문제의 에토미데이트를 접하게 됐다. 향정신성 의학품으로 규제대상이 된 프로포폴과 달리 에토미데이트는 마약으로 구분되지 않았기에 장 원장의 처방이 있으면 법적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 원장은 권장 사용량을 훨씬 초과하는 하루 평균 앰플 10개 분량의 에토미데이트를 피해자들에게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미 씨는 2년간 거의 매일, 많게는 하루 20개 가량의 에토미데이트를 투약받으며 약물중독에 빠졌다.

의학 전문가들은 "에토미데이트를 장기간이나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 부산피질이라는 장기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약재의 용량과 사용방식이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2020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는 에토미데이트를 진정내시경 목적으로 사용하지않을 것을 권고했다. 의사들은 인간이 외부의 자극을 견딜수 있는 항산성을 떨어뜨리고 근육경련-호흡곤란 등을 유발할수 있다며 에토미데이트 사용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피해자들은 장 원장이 철저하게 병원에 오는 손님들을 선별했다고 밝혔다. 현금으로 지불할 능력이 되고 남자친구나 남편이 없는 독신여성이 대상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절대 받지않았고 강철로 된 출입문은 두드려서는 안되고 전화를 해야만 열어줬다고.

희영 씨는 약물중독의 후유증으로 "눈만 뜨면 가고 싶고 하고 싶고, 일상생활을 하고 싶지가 않다"고 증언했다. "여러 차례 끊으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하루라도 주사를 맞지않으면 잠을 잘 수 없고 계속 그 생각만 났다." 약물에 중독된 피해자들은 일주일에 5, 6번씩 병원을 방문했고 하루에 300만 원에서 5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지출했다. 피해자들의 피해액 누적규모는 1인당 10억에서 20억에 이르렀다.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가는 돈보다도 피해자들이 더 무서웠던 것은, 점점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앰플 하나의 투약이 끝나면 거기서 멈추기가 쉽지않고 약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로 추가 투약을 원하게 된다고. 피해자들은 이러한 추가 투약 과정에서 장 원장의 성폭행까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반면 장 원장은 여성들과 합의된 관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병원 내부에는 CCTV가 없었고 장 원장은 휴대폰 사용도 철저하게 금지했다. 유미 씨는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 정액이 묻은 물티슈를 몰래 숨겨 보관한 것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조성남 법무부 국립법무 병원 원장은 약물중독의 위험성에 대하여 "의지만 갖고 해결이 가능하다면 중독이라는 말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중독이라는 병을 판단할때는 신체적 의존성만이 아니라 심리적 의존성을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중독된 환자들에게는 투약 당시의 느꼈던 강렬한 기분이 뇌의 기억장치속에 저장이 되어 평생 가게된다. 심리적 금단 현상에 시달리던 피해자들은 약물중독으로 인한 고통, 더 이상 약을 구하기도, 누군가에게 사정을 밝히기도 어려운 복합적인 스트레스가 맞물려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장 원장은 에토미데이트 투약을 피해자들의 불면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행위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박성용 아주대 교수는 "불면증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은 다르다. 보통 전신마취제를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홍성진 가톨릭대 교수는 "수면치료라는건 없다. 수면제는 일시적으로 환자를 재워주는 것 뿐이다. 그게 의료행위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장 원장의 병원에서 에토미데이트를 투약받다가 사망한 여성은 유미 씨만이 아니었다. 4년전인 2018년 조수진 씨(가명) 역시 주사기를 목에 꽂고 건물에서 투신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여성은 지난해 장 원장을 고소한 피해자들 중 한 명의 지인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장 원장이 직접 이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했으며 환자들이 자살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SBS는 지난 2019년에 이미 장 원장의 에토미데이트 투약 문제를 뉴스로 보도했다. 당시 제보를 받은 취재진은 환자로 위장하여 어렵게 장 원장을 만나는데 성공했지만, 장 원장은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이런저런 핑계로 진료를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또다른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 장 원장은 상호만 변경했을 뿐 병원 운영과 투약을 계속했다고.

해당 병원이 위치한 강남구 보건소는 비정상적인 의료행위에 대하여 신고가 들어오지않는 이상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현행 의료법상 에토미데이트가 향정신성 의약품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가 임의대로 처방한다고 약물 오남용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장 원장은 식약처 조사관들이 방문했을 때 미리 허위로 작성한 진료기록부를 준비해놓고, 병원에 보관 중이던 에토미데이트는 집으로 빼돌려놓아서 위기를 넘겼다고.

전문가들은 프로포폴을 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이 대체 약을 찾아서 에토미데이트를 남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며 일부 의원에서 이를 조장하고있는 현실에 우려를 표시했다. 현행법상 금지약물이 아닌 에토미데이트가 진료기록부에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에 사용된 것처럼 기재되어있으면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장 원장의 병원에 에토미데이트를 공급한 유통업체는 유통과정상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정병원에서 특정약품이 지나치게 많이 납품되는 수상한 정황이 발견되어도 현행법상 이를 신고하거나 관리-감독할 체계도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의약품 관리 책임이 있는 식약처 측은 놀랍게 2019년 당시 '에토미데이트의 오남용이나 의존성 문제는 보고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2년 제작진의 재문의에도 "의료계나 소비자와 함께 논의한 결과, 여전히 에토미데이트의 마약류 지정에 대한 당위성은 떨어진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태도로 일관했다.

에토미데이트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지않은 것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류에서 지정한 성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앞으로 기존과 다른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검토가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긴 것은, 하루 사용에도 효과가 강렬한 에토미데이트의 특성상 지속사용에 대한 연구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미 씨처럼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해사례가 확인된 뒤에야 제도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일까.

유미 씨는 어렵게 용기를 내어 장 원장을 신고하고도 왜 결말을 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안타깝게도 이미 약물에 심각하게 중독된 상태였던 유미 씨는 장 원장의 병원에 발길을 끊은 이후에도 다른 병원들을 찾아다니며 거액을 지급하고 에토미데이트를 투약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미씨 사망 이후 유족들은 해당 병원에서 진료기록부 원본 제공을 요청했으나 병원들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도 거부했다.

김태경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유미 씨가 남긴 기록들로 당시의 상태를 분석하며 "심리적 금단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잠을 잤다기보다 정신을 잠깐 마비시키는게 필요한 정도의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움이 필요해서 병원을 찾았던 환자들이 그에 합당한 치료를 받지못하고 오히려 고통에 내몰린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전문가들은 의사들이 자의적인 처방으로 의약품을 오남용해도 치료목적이라는 명분만 내세우면 인정해주는 풍토가 바뀌어야한다고 지적한다.

의료인 면허 관련 법안을 발표했던 서영석 국회의원은 "현행 의료법상 강력한 범죄를 저질러도 의료인 면허를 취소되지않는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환자들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로 윤리의식이 와해된 의사들에게 회원자격 정지 3년 같은 징계가 큰 의미가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하며 "문제행동에 대해서는 면허적 제한이 가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료와 관련된 범죄행위를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적 현실도 개선되어야한다. 전문의인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은 "진료 행위 외의 범죄 행위가 발생했을 때 고의성이 있는지 윤리적인 행위인지 아닌지 분별할수 있는 것은 전문가 집단만이 가능하다.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3의 사람이 같이 동반되어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부나 의사단체가 협조하지 않으면 이런 범죄를 막을 수가 없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막기 위한 인프라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식약처는 논란이 커지자 올해 7월부터 약사법에 따라 에토미데이트를 불법구매한 사람들이 처벌받는 개정안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미 씨의 사례에서 보듯 에토미데이트를 처방하고 가장 많이 다루는 사람은 의사다. 여전히 의사들은 약물 오남용을 해도 입증이 어려워서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결국 에토미데이트를 처방받은 환자에게만 철퇴를 내리는 꼴이다.

지난 2015년 극약에 속하는 약물을 섞은 약물을 환자에게 투약하고 성관계를 한 한 의사의 이야기는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법원은 의사의 일방적인 성폭력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내연 관계였던 환자에게 선의를 베풀려다 약의 부작용을 몰라서 뜻하지 않게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의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불과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그는 복역 후 지난해 의사면허 재발급을 신청했고 법원은 지난 5월 의사면허 재발급을 허용했다.

법과 정의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각성해야할 것은 어쩌면 약물에 빠진 중독자뿐만이 아니라, 삐뚤어진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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