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감영 선화당에 설치된 특별한 안내판

박임근 2022. 6. 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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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 선화당은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군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선화당은 민관상화(서로 잘 어울림)의 기치를 내걸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최초로 실현된 상징적인 곳이다."

전북 전주시 옛 도심에 위치한 전라감영 선화당에 '특별한' 안내판이 등장했다.

동학농민혁명과 전라감영 선화당은 동학농민군과 조선관군의 전주화약을 끌어낸 곳이다.

선화당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최초로 실현된 상징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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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 선화당에 동학농민혁명과의 연관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지난 15일 새로 새워졌다. 동학혁명기념관 제공

“전라감영 선화당은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동학농민군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선화당은 민관상화(서로 잘 어울림)의 기치를 내걸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최초로 실현된 상징적인 곳이다.”

전북 전주시 옛 도심에 위치한 전라감영 선화당에 ‘특별한’ 안내판이 등장했다. 선화당은 조선시대 호남과 제주를 관할했던 전라감영의 책임자인 전라감사가 집무하던 곳이다. 안내판은 지난 4월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이 김승수 전주시장에게 제안해 이뤄졌다고 이 관장이 설명했다. 내용은 시 문화유산과에서 초안을 잡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거쳐 결정했다. 기존의 선화당 안내판 옆에 동학농민혁명과 연관성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같은 크기로 최근 설치했다.

전라감영 선화당에 동학농민혁명과의 연관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지난 15일 새로 새워졌다. 3년 전 복원된 선화당의 종전 안내판 옆에 새로 설치했다. 동학혁명기념관 제공

동학농민혁명과 전라감영 선화당은 동학농민군과 조선관군의 전주화약을 끌어낸 곳이다. 128년 전인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조선정부에 폐정개혁안을 제시했고, 이를 수용한 정부는 전라감사 김학진을 통해 전봉준과 선화당에서 전주화약을 맺었다. 이후 전라도 일대에 동학농민군 자치조직인 집강소를 설치했고, 이를 총체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위한 대도소가 전라감사 집무실인 선화당에 세워졌다. 선화당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최초로 실현된 상징적인 곳이다.

옛 전라감영 선화당의 모습. 전북도 제공

이윤영 관장은 “근대 민주자치시대를 열은 장소인 선화당 복원건물에 동학관련 내용 등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전주시장에게 제안해 안내판을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전라감영은 한국전쟁 때 폭발로 사라진 지 약 70년 만인 2020년 10월, 복원기념식과 함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제주도 56개 군·현을 다스렸던 전라감영은 1951년 한국전쟁 중 폭발사고로 완전히 사라졌고, 이듬해 전북도청사가 지어졌다. 전북도청이 2005년 신시가지로 옮겨지면서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힘을 얻었고, 2017년부터 사업비 104억원을 투입해 옛 전북도청사를 철거했다. 3년 뒤에 선화당, 고위관료를 맞았던 사랑방인 관풍각, 감사의 휴식공가인 연신당, 감사 가족이 살던 내아, 하인들이 살던 내아행랑, 감영으로 들어가는 중간문인 내삼문과 외행랑 등 7개 건물을 복원했다.

2020년 10월7일 조선시대 전라감영 복원 기념식이 열렸다. 전북도 제공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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