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평생 속았다' 5분의 1값 면도기로 판 깬 이 남자 [사장의 맛]

윤수정 기자 2022. 6. 6. 10: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면도기 구독서비스' 와이즐리, 멘트 하나로 매출 급상승
옷장사로 망하고, 면도기 시장 '판' 깨며 시장 진입
'구독 모델로 소비자 '데이터' 확보.. 사세 확장 중 #사장의맛

1대 98.

4년 전 생활용품 구독서비스 스타트업 와이즐리가 처음 면도기 시장에 뛰어들며 직면한 숫자입니다.

당시 질레트, 도루코 등 상위 3개 업체가 면도기 시장 점유율 98%를 차지했죠. 이 틈을 비집고 와이즐리는 지난해 이 시장 점유율을 9.3%까지 늘렸습니다. 면도기 몸체와 면도날, 때로는 남성 화장품과 샴푸 등을 섞어 정기 배송받는 와이즐리 서비스 구독자만 100만명에 달합니다.

사업 초기 ‘반값 면도기’로 젊은 층 입소문을 공략했고, 지난달엔 ‘5분의 1값 면도기’를 내놨죠. 면도기 말고도 면도날, 탈모샴푸, 고함량 멀티비타민 등 자사 제품 평균가를 43% 낮췄습니다. 주요 경쟁사 제품과 대비해선 70~80% 저렴한 가격.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소위 ‘땅 파서 장사’한 건 아닌지, 조선일보 ‘사장의 맛’이 와이즐리 김동욱(34) 대표를 만나 그 비법을 물었습니다.

면도기 구독이라는 새 사업 분야를 개척한 와이즐리 김동욱 대표. /이태경 기자

◇5분의 1값, 비결은 높은 재구독률

-5분의 1값 면도기, 어떻게 가능했나요?

“그간 시중 면도기는 소비자가의 80%가 유통비, 마케팅비에 쓰이고, 제품 제조에 20%가 쓰였죠. 저희는 제품 제조에 70%를 쓰고 마케팅이나 회사 운영비는 30% 이하로 유지해요. 유통은 직접 온라인 판매와 배송으로 해결하고요.”

-어떤 경로로 가격 다운에 집중한 건가요?

“개인 경험으로도 ‘비싸다’고 생각했거든요. 대학 때 자취하면서 엄마가 사줄 때는 몰랐던 생활용품 가격 부담을 느끼게 됐어요. 그러다 면도기의 제조원가가 판매가의 5%라는 걸 알게됐죠. 95%는 매출이익률이라는 건데,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창업을 결심한 계기였고요.”

-해보니 광고나 외부 유통 없이도 수익이 가능하던가요?

“회사 수익 90%가 재구매 매출에서 발생해서 가능했어요. 제품을 아는 사람들의 충성구매가 계속 이어지면 유통과 마케팅비를 지출할 일이 없어지죠. 가성비 좋은 제품을 싸게 팔면 재구독률이 계속 올라가고, 그럼 또 유통과 마케팅 비용을 줄여 질 좋은 제품 가격을 더 싸게 팔 수 있고. 선순환 구조가 되는 거에요.”

-처음부터 가능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비결은 데이터 분석에 있었습니다. 저희도 회사가 작을 땐 이걸 잘 못 했는데 투자 유치를 받고 2019년쯤 투자사에서 전체 고객 재구매율 분석 요청을 해왔죠. 그런데 재구매율이 93%였죠. 게다가 2018년 공식 서비스 첫 시작 때 들어온 고객들 중 60%가 구독을 유지 중이었어요. 투자사도, 저희도 깜짝 놀랐죠. 그때 회사 방향을 정했어요. 신규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마케팅비를 줄이고 재구매율을 유지하기 위한 제품의 질과 가격 경쟁에 돈을 더 투자하기로.”

-구독 서비스가 처음에는 없었다면서요.

“사실 우리 제품이 구독으로 팔릴 거라는 기대가 없었어요. 신규 고객 가입시 구독이 3% 수준이었거든요. 권유도 안했고, 구독 신청란을 홈페이지 아주 구석에 배치해서 ‘숨겨져 있다’는 소리 들을 정도였죠. 그런데 반복적으로 사는 소비자 조사를 해보니 55~60%가 정기구독이었던 거에요.”

-고객 조사는 전부 일대 일인가요?

“네. 직접 다 합니다. 데이터 처리하는 개발자와 처리팀이 따로 있어요. 외국계 기업인 피앤지는 큰 회사지만 데이터팀이 3명도 안 되고, 대부분 외부 기관의 패널 데이터를 받아 샘플 조사를 했어요. 저희는 그 방식이 편하긴 하지만 자사 데이터가 아니다보니 정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고 봤어요. 예컨대 이마트 칫솔이 100만개 팔렸을 때 피앤지는 직매입으로만 계산하기 때문에 1명이 다 산 건지, 100만명이 1개씩 산 건지 구분이 안 가요. 그런데 저흰 다 구분 집계됩니다. 이마트 가서 면도기와 칫솔, 치약 등을 40개씩 대량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데이터화 시켜놓죠. 이들 중 누가 와이즐리 서비스 구독자, 비구독자인지까지 구분해서요. 저희는 일반 판매가 아닌 ‘체험 서비스’니까요.”

-와이즐리 데이터 분석팀은 몇 명인가요?

“총 6명이 있어요. 다만 데이터 분석만 하진 않고 직접 고객들 인터뷰도 가끔 참여하고요. 또 저희는 ‘프로덕트 매니저’라 부르는 제품 기획자들 15명이 직접 고객들의 제품 피드백을 인터뷰해서 데이터팀에 전달하기도 하고요. 저희 철칙이에요. ‘프로덕트 매니저들은 절대 외주사나 인턴한테 맡기지 말고 직접 전화하라’는 겁니다.”

-이런 만족도 조사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요?

“대학 창업 학회 때요. 유독 고객 조사 과제가 많던 학회였죠. 사실 고객 조사 때 아주 퀄리티 있는 답을 꺼내기 어려워요. 예컨대 길거리에서 고객 붙잡고 어떤 면도기가 좋냐 물으면, ‘내 인생에 중요한 면도기’를 답해주는 게 아니죠. 어떻게 샀냐고 물으면 ‘그냥 마트 가서 예전에 써봤던 거 집어서 나왔다’고 말하고요. 유통 경로와 생활습관, 이런 걸 캐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배웠죠.”

◇무턱대고 뛰어든 첫 창업, 초보적으로 망하다

/이태경 기자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김동욱 대표. “열심히 공부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는 건 또 싫어했다”고 합니다. 대학 3학년 때 생활용품 대기업 피앤지에서 6개월 인턴 후 입사 제안을 받았을 때도 그랬죠. “너무나 안 맞고 재미없었지만 나만 제안 못 받으면 화나니 바득바득 일을 한 결과”였다고 합니다. 제안 받고선 막상 “현타가 왔고, 졸업까지 1년 반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네요. 그길로 휴학 후 옷장사에 뛰어들었습니다. 2013년이 첫 창업이었습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걷어차고 왜 창업을 택했나요?

“원래도 뭐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했던 (피앤지) 인턴이었거든요. 반면 창업 학회 활동은 참 재밌었어요. 밤 새워 창업아이디어도 내보고, 고객 만족도 조사도 200명씩 해보고. 사실 와이즐리 첫 아이템이었던 면도기 관련 아이디어 구상과 고객 만족도 조사도 이미 그때 생각해뒀던 것들이에요.”

-그런데 왜 옷장사를 했나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교포 친구와 창업 학회로 교류를 했었어요. 그 친구가 교회를 다녔는데 간사님이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한다고 들었거든요. 거기 놀러갔다가 요새 창신동 같은 데 공장이 많이 없어졌다. 중소형 상인들 옷 생산할 데가 없으니 그걸 최소 생산 수량만 맞춰서 하면 되지 않겠냐. 그런 생각으로 아동복 장사를 시작했어요. 돈도 없고, 실력도 없었는데... 무모했죠.”

-결과는요?

“1년도 안돼 접었어요. 정말 초보적으로 망했죠.(웃음) 피앤지 다니며 모은 500만원에 친구돈 500만원을 모아 1000만원으로 시작했고, 서서히 100만~200만원씩 수익을 남겼어요. 그런데 사업 8개월쯤 납기 문제가 터졌고, 돈을 전부 날렸죠. 겨울용 검정 패딩을 중국 공장에 주문했는데 납기일 다 되어서 ‘빨간 실로 꿰매도 되냐’는 연락이 왔어요. 안 그러면 생산을 못 한대요. 검정실이 얼마나 많은데. 알고보니 아예 패딩 생산을 전혀 안한 상태였던 거죠.”

-사기 당한 거 아닌가요?

“1차적으로는 계약서 등을 잘 못 챙긴 저희 잘못이었어요. 외국 파트너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생산관리 상식이 없었던 거죠. 업계 어르신들한테도 한소리 들었어요. 3~4년차 직장 경험만 있어도 중간 체크하고, 사후 검사도 해보고 다 챙겼지 않겠냐 싶었죠.”

◇절치부심, 컨설팅 업체서 사업감각을 익히다

주문은 밀리고, 박스는 접어야 하고...와이즐리 초창기 시절, 박스접기를 '재연'하고 있는 김동욱 대표. /이태경 기자

-졸업 후엔 또 컨설팅 회사로 향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하하. 옷장사가 망하고 보니 좀 더 체계적으로 일을 배울 필요를 느꼈어요. 그래서 2015년 베인 앤 컴퍼니에 입사했죠. 굉장히 재밌게 일을 했어요. 주 7일 근무할 정도로 일이 많았지만 마치 창업하는 것처럼 산업군별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흥미로웠죠. 그렇게 2년 간을 푹 빠져 일했네요.”

-그런데 왜 또 다시 창업으로 리턴했나요?

“사실상 여러 창업 과정을 돕는 역할을 반복하다보니 점차 새로운 배움이 적어졌고요. 무엇보다 아, 저건 내가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훗날 할아버지 돼서 ‘저걸 내가 했어야 해’ 읊조려봤자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후회하지 않게 지금 하자, 결심한거죠.”

◇부모님 몰래 면도기 상자 접은 두 형제

-창업은 회사를 다니면서 계획하신건가요?

“2016년 11월부터 주말 포함 사이드잡으로 시작했고, 2017년 3월부턴 아예 휴직을 했어요. 아는 형이 개발디자이너라 600만원 주고 면도기 제품 패키지 상자와 웹사이트를 만들어달라고 했죠. 그리고 200만원 주고 패키지 박스를 수천 개 찍어냈는데, 지인이 한 마디 하더라구요.

“왜 이렇게 똥 같이 만들었냐.”

-똥? 너무 심한 말 같은데.

“반박할 수 없었어요. 제가 봐도 돈 주고 안 살 것 같았거든요. 패키징을 처음 만들어보니깐 면도기 설명을 너무 넣고 싶었던 거에요. 책 같은 박스가 돼 있었어요. 택배 송장에 적힌 글보다도 제 포장 상자 글이 더 많고 복잡해 보이더라고요. 결국 아파트 단지 폐지 수거함에 다 버려야 했죠. 그렇게 800만원 날리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만 둘 정신이요?

“아니요. 회사를 그만둬야겠다, 정말 집중해서 팔아봐야겠다 생각한거죠. 면도기도 샘플만 받아보던 걸 3000만원어치 한꺼번에 팔 제품을 주문을 해버렸어요. 그렇게 집으로 면도기가 가득찬 미니 냉장고 사이즈의 대형 택배 상자 6개가 놓였어요.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 상자 6개가 중형차 한대 값이잖아요. 이걸 언제 다 파냐 싶었죠.”

-친동생도 같이 면도기를 팔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작심하고 시작하니 판매 과정은 생각보다 더 빨리 진행됐거든요. 면도기 온 게 2017년 3월인데, 패키징 박스와 웹사이트 만들어 와이즐리 베타 서비스로 판매를 시작한 게 6월이었어요. 문제는 그 사이에 면도기 포장할 상자를 접고, 고객 전화도 받아야했죠.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니 마침 대학생으로 집에 있던 동생 도움을 받은거죠.”

-두 사람이어도 적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 특히 돈이 없으니깐 부모님이 해외 파견 가신 사이 고객센터 번호를 몰래 집으로 연결해서 사무실처럼 썼거든요. 부모님께 화상 통화 걸려오면 몰래 상자 없는 방에서 받아가면서.(웃음) 거실이 거의 물류창고였어요. 밤 늦으면 새벽까지 동생과 하루종일 200개씩 상자를 접었죠. 게다가 아침 7시부턴 고객 전화가 울리기 시작하고, 8시 반에 택배아저씨가 새 면도기 포장 상자를 가져왔어요. 그럼 또 접고. 중간에 동생이 구글코리아 인턴도 시작해서 베타서비스 시작 직전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동생이 구글 인턴을 그만두고 면도기 상자 접기를 택했다고요?

“정말 난감했죠. 동생이 인턴이 바쁜데도 절 도와주더라고요. 그래서 ‘둘 중 하나만 해라’라고 했죠. 그랬더니 면도기 상자를 접겠대요. 처음에는 곤란하다고 했어요. 제가 퇴사하고 창업한다고 할 때도 사실 싫어하셨는데. 부모님께 동생까지 꼬드겼다고 혼날 것 같았거든요.(웃음)”

-구글 인턴도 쉽게 포기할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저도 의아했어요. 들어보니 본인도 어렵게 간 일인데 한달 쯤 일 했을 때 생각했던 것과 많은 게 달랐대요. 구글도 광고 상품 파는 영업직군과 다를 바가 없더라는거죠. 거기에 마침 피앤지 다닐 때 알고지내던 친구가 퇴사 후 스타트업 갔다가 자기 사업 하고 있다고 쉬고 있던 때였죠. 베타 서비스 시작 후 3개월쯤 고객 4000명이 모였을 때 카페에서 그 데이터를 보여줬더니 친구도 하고 싶다고 했죠. 그렇게 공동창업자 3명이 모였고, 2017년 9월 와이즐리 법인이 설립됐어요.”

◇파격적 광고 “남성 소비자들은 평생 속고 살았다”

면도기 구독서비스로 시작한 와이즐리는 이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와이즐리제공

-사업 초기 소셜미디어 광고가 대박이 났었다고 들었어요.

남성 소비자들은 평생 속고 살았다

“이런 슬로건을 담은 카드뉴스 27장을 공식서비스 시작 한 달 만에 냈어요. 그 전까지 ‘독일산 면도날 8900원’ 등 싼 가격을 강조하는 단건 온라인 배너광고도 걸어봤는데 성과가 썩 좋진 않았거든요. 그러다 초기 고객들끼리 ‘소비자로서 느꼈던 불편한 진실을 해결하려 모인 사람들인데 얘네 잘돼야 한다’고 이야기 한 걸 봤어요. 시중 가격 거품을 저희가 걷어내준다는 말이었죠. 아, 이게 우리가 사랑 받는 이유다, 이걸 써야겠다 싶었죠.”

-슬로건은 돈을 주고 제작했나요?

“아뇨. 그때 저 포함 공동창업자 3명이 직원 전부였고, 셋 다 문돌이었거든요.(웃음) 포토샵도 못 해서 PPT로 그림처럼 저장해가며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꼬박 이틀 밤 새서. 나름 텍스트는 20자 이하로, 핸드폰에 넣어서 보며 가독성 좋은지도 보면서요.”

-얼마나 성공적이었나요?

“사실 처음 카드뉴스를 밤 새서 완성했을 때 오전 9시쯤 업로드 시켜놓고 전 그대로 잠들어버렸거든요. 그런데 두시간쯤 뒤 일어나서 매출 데이터를 봤는데 어, 이상하다. 이건 잘못됐다 했어요. 원래 시간당 두 자리수 주문이 들어왔었는데, 시간당 1000단위가 훌쩍넘은 주문건수가 찍혔거든요. 허겁지겁 카드뉴스 게시 댓글수를 봤는데 막 몇 천개가 쌓여 있었죠. 헉, 큰일났다 싶었죠.”

-“뿌듯하다”가 아니라요?

“또 박스 접어야겠구나, 아찔해서요. 인원이 3명 뿐인데 주문 건수는 갑자기 늘고, 당장 물건 사올 현금도 없고. 게다가 마침 물류창고를 새로 구했을 때인데 인력이 없어 한 달정도 품절 공지를 냈을 때였고, 설연휴 시작 때라서 배송도 늦고. 좋은 스토리 보고 주문 넣었는데 물건은 안 오고, ‘사기꾼’ 소리 들을 위기다 싶었죠. 성공해도 너무 힘들면 성공한지 모른다는 소리까 딱이었어요. 잘 팔린다는 즐거움보다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이 더 컸죠.”

-어떻게 해결했나요?

“안 된다는 면도기 회사를 설득해서 후불결제를 요청했어요. 주문이 갑자기 늘어서 일단 물건부터 찍어야 하는데 우리가 현금이 안 되니까 도와달라고요. 다행이 제가 컨설팅 회사 경험이 있으니까 후불결제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비교 매출 그래프를 꼼꼼히 갖고 갈 수 있었어요. 지원해주시면 우리가 이만큼 성장하는거라고 설득하니 해주셨죠. 지금은 그 회사가 저희 주주로 참여해 계시고요.”

스타트업의 살 길은 투자를 받는 겁니다. 김동욱 대표는 그 때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데 어쩔거냐’ ‘외국 진출은 안하냐’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가 답했답니다. ‘오프라인 매장 없는 건 단점이다’ ‘외국 시장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투자를 받았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전하는 노하우를 8일 수요일 소개합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