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규제 하랬더니 교직원 무장 확대..미국 일부 주 규제 완화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2022. 6. 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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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교 내 총기 참사가 벌어졌던 샌디훅 초등학교가 있는 미국 코네티컷주 쥬타운의 청소년과 학부모들이 총기 폭력 경각심의 날인 3일(현지시간) 총기 폭력 근절을 뜻하는 오렌지색 옷을 맞춰 입고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뉴타운|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어린이와 교사 21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공화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미국 일부 주에서 교사·교직원의 학교 내 총기 휴대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 등 진압 요원이 출동할 때까지 무방비로 기다리기보다 교사·교직원을 무장시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이 학교 내 총기 참사 대응 수단으로 ‘교사무장론’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간)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 주지사가 지난주 주의회에서 통과된 교사·교직원 학내 총기 휴대 조건 완화 법안에 곧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기존에는 교사·교직원이 학내에서 총기를 휴대하려면 700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해야 했지만 이 법안이 발효되면 24시간의 필수 교육만 이수해도 교실에서 무기를 휴대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교사가 학내에서 무장을 하려면 범죄 전과가 없어야 하며, 매년 8시간의 교육도 받아야 한다. 드와인 주지사는 지난달 24일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총기 참사가 발생한 이후 주의회 의원들과 함께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면서 “이 법안은 학교 안전과 무관한 수백시간에 달하는 교육과정을 제거함으로써 학교 환경에 초점을 맞춘 요건을 갖추기 위한 훈련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총기 사고를 교사 무장으로 막겠다는 생각은 오하이오 주지사만의 생각이 아니다. 루이지애나주에서도 교사들을 총기를 휴대한 ‘학교 안전 담당관’으로 임명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간소화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의 너무나 많은 일상적인 곳들이 킬링 필드로 변하고 있다”면서 공격형 무기와 대용량 탄창 판매 금지, 범죄 전과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이들의 총기 접근을 막기 위한 신원조회 강화, 총기 구매 허용 연령 18세에서 21세로 상향 등 총기 규제 강화를 역설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정권을 잡고 있는 주들은 되레 교사·교직원 무장 강화라는 정반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교사무장론은 새로운 대안이 아니다. 2018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참사 등 교내 총격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공화당과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텍사스주 출신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 등은 롭초등학교 총기 참사 직후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같은 주장을 펼쳤다. 텍사스주는 교사 무장을 허용한 주 가운데 하나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 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1월 기준 28개 주가 각종 조건을 달아 교사들이 교실에서 총기를 휴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교사·교직원을 무장시키는 것이 학교 총격 사건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총기 규제 운동 단체인 ‘에브리타운 포 건 세이프티’의 롭 윌콕스 법률 담당 이사는 교사 무장 강화 법률들은 대책이라기보다 언어도단이자 총기 규제로 쏠리는 여론을 분산시키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오히려 평상시 교내에 존재하는 총기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각종 위험과 문제점만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의 여론도 극히 부정적이다. NBC에 따르면 2019년 전국의 교사 2926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교사가 교실에서 총기를 휴대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5%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로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교사 450명이 포함된 여론조사였다. 일례로 텍사스주는 2013년부터 80시간의 교육과 정신건강 테스트 등을 거친 교사에 대해 무장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1029개 교육구 가운데 62개 교육구에서 256명이 이 자격을 취득할 정도로 호응도가 낮다. 미국 최대 교사단체에 속하는 전미교육협회(NEA)의 베키 프링클 회장은 “교육자들과 부모들은 교직원을 무장시킨다는 아이디어를 거부한다”면서 “정치인들은 개별 교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아이들을 총기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무분별하고 예방가능한 살상을 끝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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