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대담 전문] 박지성, 이영표가 회고한 "가스라이팅인가 싶을 정도"의 히딩크 리더십

김정용 기자 2022. 6. 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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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2002 한일 월드컵 멤버인 히딩크 감독, 박지성, 이영표가 한국 각지에서 모인 축구 지도자들에게 성공 노하우를 공유했다.


3일 서울 월드컵경기장 리셉션 홀에서 2022 대한축구협회(KFA) 지도자 컨퍼런스가 열렸다. 2002 한일 월드컵 2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 박지성 전북현대 어드바이저,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가 대담을 가졌다. 20년 전에도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축구협회 부회장이 진행했다.


히딩크 감독은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하며 한일 월드컵 전 멸칭이었던 별명 '오대영'을 직접 언급했다. 이 대표이사는 "감독님을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스라이팅이었나 싶을 정도"는 농담으로 당시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요약했다. 박 어드바이저는 유럽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조언을 건넸다. 긴 대담을 그대로 옮겼다. 이하 대담 전문.


- 20년 전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히딩크(이하 히) : 한국에 도착해 며칠이 지났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활기를 찾는 모습이 보인다. 오랜만에 20년 전의 스태프 등을 만나 반가웠다. 20년이 지나 가장 기억나는 걸 꼽긴 어렵지만, 지도자로서 한국에 부임해서 처음 훈련을 소집했을 때가 기억난다. 남쪽 울산에서 소집했는데 좋은 날씨를 예상했지만 굉장히 추웠다. 영하 날씨에서 첫 훈련을 했던 기억이 난다.


박지성(이하 박) : 전북에서 일하고 있다. 20주년을 맞이해 에전에 같이 뛰었던 선배님들, 코칭 스태프들을 다시 만나 감회가 새롭다. 시간이 빠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앞으로 한국축구를 발전시킬 많은 지도자가 여기 계신데, 내가 유럽에서 배워 온 것들을 전해드릴수 있었으면 한다. 2002년은 좋은 추억이 너무나 많았다. 내게 가장 기억나는 한 장면은 포르투갈전 골이다. 어렸을 때부터 국가대표와 월드컵을 꿈꿨는데 월드컵 골이라는 상상만 했던 일을 어린 나이에 이룰 수 있어 기억에 남는다.


이영표(이하 이) : 눈에 띄는 건 늘 유니폼 입고 뛰는 선수지만, 그들은 여기 계신 지도자들이 없다면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 축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보물이다. 여러분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 감사한다. 2002년에서 한 경기를 꼽는다면 나도 포르투갈전이다. 그 전까지 한국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하지 못했다. 월드컵 목표가 16강이었다. 그 목표를 결정짓는 경기였다. 나도, 우리 팀도 포르투갈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히딩크에게 박지성, 이영표는 어떤 선수였나


히 : 2000년 12년 처음 한국을 맡아 선수들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하면서, 팀 스타일을 바꾸고 싶었다. 팀이 너무 보수적이고, 구식이고, 수비적이었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려면 스타일을 바꿔야 했고 새로운 선수들이 필요했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 필요했다. 지나치게 수비적이었던 당시 한국에서 활용해야 했던 게 현대적인 선수들이었다. 그게 박지성과 이영표였다. 유럽에서도 성공을 거뒀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축구 역사를 보면 이미 월드컵 본선에 5번 나갔는데 1승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게 1년 반이 주어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용수 위원장을 비롯한 축구협회에 몇 가지를 요청해 훌륭한 지원을 받았다. 첫째, 일반적인 A매치 소집보다 긴 훈련시간이었다. 일반적인 원칙에 어긋날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 충분히 양해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미 국제대회들에 참석하게 되어 있던 건 훈련시간을 보장받는 데 유리했다. 또한 쉬운 나라와 평가전을 갖는 게 아니고 어려운 경기를 택했다. 체코, 프랑스를 상대한 건 월드컵 본선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되었다. 두 번 0-5 패배를 하면서 그게 여기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된 걸 안다. 패배했을 때 축구협회가 우려하지 않고 내가 추구하는 바를 지켜준 것에 감사한다. 내 우선순위는 어려운 길을 통해 선수들을 발전시키고, 선수들의 정신자세를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월드컵 1년 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세계 챔피언 프랑스를 상대했다. 쉽게 0-5로 졌다. 프랑스 측에서 그러더라. 1년 뒤 한국에서도 A매치를 하자고. 월드컵을 앞두고 가벼운 적응 경기를 생각했던 것 같다. 좋다고 했다. 그렇지만 1년 만에 우리는 수준이 향상됐다(2-3 패배). 0-5 참패와 전혀 다른 경기를 해냈다.


- 이영표, 박지성에게 히딩크는 어떤 지도자였나


이 : 은퇴할 즈음, 지도자 몇 명을 거쳤는지 세어봤는데 전세계 지도자 200여 명이었다. 그 중 한국 지도자가 70여 명, 외국 지도자가 130여 명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완전히 지배했던 감독이 있었다. 아주 중요한 경기를 앞두면 보통 '이겨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하는데, 히딩크 감독은 '오늘 감독을 위해 죽어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선수가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건 쉽지 않다. 그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인가(웃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 후로 감독님 말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박 : 한국 선수들 대부분 비슷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처음 외국인 감독님 아래서 훈련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감독과 선수의 차이는 분명 있으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교류가 있다는 게 달랐다. 감독님 밑에서 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내 모습을 얼마나 이끌어낼지 궁금해하는 감정이 처음 생겼다. 영표 형 말처럼 감독님을 위해 뛰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건 그래서 같다. 선수를 지도하는 걸 넘어 각 선수에게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감독님이었다.


-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한국이 가장 미흡했던 점과 준비한 방법은?


신체와 정신력을 개선해야 했다. 정신력의 경우, 영표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은 했지만 때로 저렇게 과도할 정도로 투지를 보여주는 건 약간 과하기도 했지만 그거 괜찮았다. 그런데 강팀을 상대할 때 상대의 신체능력에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홍콩 대회에서 유럽 팀과 옆 라커룸을 쓰면, 한국 선수들이 '거대한 바이킹'같은 상대 선수들을 멍하니 보곤 했다. 겁을 내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 능력도 충분하다. 저런 덩치 큰 선수들 상대로 너희 능력을 보여라'라고 요구했고, 선수들은 그렇게 해냈다. 2002년 2, 3월에 걸쳐 집중 훈련을 하면서 신체능력 면에서 큰 향상을 이뤘다.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를 계속 이겨냈다.


- 질문 하나에 1분 이내로 답변해 주겠나


히 :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잠깐 낮잠을 자겠다.


- 이영표, 박지성에게 히딩크 감독이 특별히 요구했던 건


박 : 내게 남다른 주문을 했다기보다는, 각 선수에게 할 일을 정확히 주문했다. 팀이 어떻게 움직일지 말하는 게 아니라 각 선수에게, 각 포지션마다 확실한 임무를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선수의 기술적인 실수보다 전술적인 실수를 더 강조했던 것도 인상적이다.


이 : 감독님이 내게 많이 했던 말은 '팀의 목표는 승리인데,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개개인의 기량 성장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좋은 축구를 하게 되고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가 어떻게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많이 이야기해줬다. 내가 훈련마다 어떤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지 굉장히 명료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 월드컵 이후 PSV에인트호번으로 두 명을 데려갔는데, 이들이었던 이유는? 더 영입하고 싶은 선수도 있었나?


히 : 많은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 등을 보면서 그리로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이나 일본 리그는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기에 한 발 더 멀었다. 그래서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네덜란드도 좋은 리그라고 제안했다. 또한 국가대표 경기는 해 봤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하면서 프리미어리그나 라리가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영표, 박지성이 내 말을 들어 현명한 선택을 해 줬다. 2년 뒤 어떻게 됐는지 알 것이다. 우리가 리그를 지배하면서 선수들이 많은 발전을 이뤘고 토트넘과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이적할 수 있었다. 한 경기에서 나란히 뛰기도 했다. (이용수 위원장을 보며) 이 정도면 1분인가?


- 유럽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이 : 당연히 감독님 말씀에 동의한다. 2002 월드컵 몇 달 후 바로 PSV에 진출했다. 난 이미 국가대표 경험이 많았고, K리그 우승과 월드컵 4강을 경험한 선수였다.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PSV에서는 몇 달 동안 굉장히 힘들었다. 가자마자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주전 경쟁은 없었지만, 훈련부터 유럽 축구의 빠른 템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매 훈련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패스 연습을 하는데 내 패스 타이밍이 너무 늦거나 빨라서 유럽 축구와 맞지 않았고, 선수들이 내게 불만을 말했다. 그 불만이 너무 싫어서 연습마다 엄청나게 집중했고, 3개월 정도 지나 비로소 자연스럽게 훈련 템포를 따라가게 됐다. 그리고 이런 빠른 템포의 축구가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잉글랜드에 가니까 네덜란드보다도 더 빠른 축구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적응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성공적인 경력에 확실히 도움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박 : 적절한 시점에 외국으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강인, 손흥민은 어려서부터 유럽에서 축구하며 적응했기 때문에 바로 분데스리가와 라리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 등을 거치고 나가면, 환경과 템포와 스타일이 다르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에서 적응을 하고 빅 리그로 가는 게 중요할 것이다. 유럽 진출을 원하는 선수가 있다면 언어를 배웠으면 한다. 가서 아무도 한국어를 하지 않잖나. 영어, 스페인어 등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소통이 편할 거고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 유소년 선수들이 더 발전하고 유럽에 진출하려면 신경써야 할 부분은?


히 : 아까 하던 이야기부터 이어가고 싶다. 사실 박지성과 이영표가 PSV에 왔을 때 배우기만 한 게 아니고, 기존 선수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줬다. 그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많이들 아시는 런 테스트(셔틀런)를 할 때, 계속 왕복 달리기를 하면서 결국 선수들이 하나 둘 지쳐서 멈추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남아서 기절하기 직전까지 뛰었던 두 선수가 누구일 것 같은가? 내 친구들인 박지성, 이영표다. 포기하지 않는 점은 유럽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줬다.


대답을 이어가자면,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당연히 어릴 때 축구를 시작할수록 좋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을 너무 밀어붙이면 안 된다. 어린 선수들이 5년 뒤에 대한 목표를 너무 높게 세우기도 하고, 부모님이 주입하기도 한다. 이건 반대한다. 축구뿐 아니라 어느 종목도 마찬가지다. 어린 선수들에게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지 말고, 놀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조성은 언제나 혼돈에서 비롯된다.


20년 전 유소년 지도자들이 제대로 운동하지 않는 선수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엄하게 다루면서 거의 때리려고 하는 걸 봤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충격적이었다. 어린 선수들은 실수를 하되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 : 지금은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연습경기 도중 감독님이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영표, 똑바로 안 해?'라고 하더라. 그래서 경기 중 '네'라고 했는데 또 같은 말을 계속 했고 전반전 끝난 뒤에도, 후반전에도 '진짜 똑바로 안 해?'라고 계속 하더라. 난 정말 똑바로 하고 싶었는데 뭘 똑바로 하라는 건지는 가르쳐주지 않더라. 가장 안타까운 건 선수들이 창의적인 패스를 시도하지만 기술이 부족해서 실수를 범할 때 감독이 '안 되는 거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지적을 받으면 선수의 창의력이 사라지고 발전이 안 된다. 한국의 화법은 직설적이고 한 번에 상처를 주기 쉽다. 유소년 지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지시를 따랐을 때 칭찬을 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박 : 나도 최근 유럽 유스팀에서 그들의 지도법을 지켜봤다. 큰 틀에서 지도자가 철학은 갖고 있지만 그걸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고, 직접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큰 틀 안에서는 허용을 해야 한다.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이 중요하다. 그 방법은 질문이다. 선수들이 스스로 상황을 돌아보고 생각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해 줄 필요가 있다.


- 한일 월드컵을 통해 한국은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이제 연령별 대표에 이어 A대표도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히 : 잘 모르겠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가 무엇인지 확인을 해야 한다. 결국 어린 선수들의 발전에 집중하면 축구 수준이 올라가고, 나중엔 16강, 8강을 넘어 어쩌면 결승까지 갈 수 있길 바란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가나, 우루과이와 편성돼 있다. 어려운 조다. 통과만으로도 큰 성과다. 다만 16강 진출보다 더 중요한 건 한국 축구가 매력적인 축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탈락하더라도 '저 팀은 훌륭했어, 현대축구를 추구하는 팀이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중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언젠가 결승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박 : 가장 중요한 건 아주 아주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각 선수가 중간 단계를 밟아 프리미어리그를 가듯, 한국 축구도 중간 목표를 밟아 올라가야 한다. 세계랭킹 1위 팀이 꼭 결승에 가는 건 아니다. 우리가 세계 최고 레벨의 축구를 하는 선수를 보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러려면 뭐가 필요한지 생각해야 한다. 브라질은 세계 최고 리그를 갖지 못했지만 최고 선수들이 여전히 나온다. 우리도 그런 선수들이 배출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 월드컵 결승 진출은 솔직히 한국 현실에서 웃음부터 나온다. 중요한 건 본질이다. 결승보다 앞선 본질이 4가지 있다고 본다. 그건 좋은 지도자, 좋은 환경, 좋은 프로그램, 좋은 선수다. 네 가지가 만나면 좋은 축구를 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뿐 아니라 재정, 시스템, 행정이 모두 필요하다. 저변도 확대해야 한다. 본질 네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발전하기 위한 답이다.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도 있어야 한다. 그럼 언젠가 가능할 수 있다.


- (객석 지도자 질문) D급 지도자 자격증 보유자다. 한국 유소년 선수들에게 '제2의 메시'나 '제2의 호날두'같은 말을 쓰기도 하는데 대학생 정도 되면 오히려 장점을 잃어버리고 성인 무대에서 뒤쳐지는 걸 본다. 이승우가 그 예라고 본다. 장점을 유지하고 성인 선수가 되려면 어덯게 해야 할까?


히 : 어린 선수들에게 '제2의 메시'라고 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둬야지, 그런 별명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 어려서부터 과도한 기대를 하고 대단한 선수가 될 거라고 말하면 부담이 된다. 한 번에 도약하길 기대하지 말고 한 발씩 발전하게 해 줘야 한다. 박지성, 이영표처럼 그렇게 발전해 온 선수들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 이승우는 외부 시선과 별개로 스스로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도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는 늘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건 성장할 가능성과 도태될 가능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할 가능성만 기대하는데, 유스는 그저 유스다. 그 선수가 이미 유명하든, 아무런 네임밸류 없는 팀의 유스든, 유스는 유스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빅 클럽 유스 선수가 이미 빅 클럽 레벨인 것처럼 오해한다. 선수는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는데 팬들이 기대치가 과도하면 그 격차가 선수에게 부담으로 다가간다. 팬과 언론의 기대가 선수의 성장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재능 있는 선수를 언론에서 다룰 때는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뤄야 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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