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법경영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CP)을 진정성 있게 운영한 기업에 공정거래법상 형벌을 감경할 수 있다는 원론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집행과정에서 적용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언급된 공정위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도입에 대해서는 학계는 물론 검찰에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CP 기업 형벌감경 가능하겠으나…法·檢 모두 ‘신중모드’
2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준법경영 활성화를 위한 공정거래 형벌제도 개선 방안’ 정책 세미나에서는 CP 프로그램이 공정거래법상 형벌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두고 강우찬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와 고진원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이 각각 개인 의견을 냈다.
CP란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업 스스로 자신들의 사업행위가 담합,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등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등에 저촉되지 않는지 검토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자주 언급되는 기업의 ‘자율규제’와 크게 맞닿아 있기도 하다.
강 부장판사는 “공정거래법 위반을 형사처벌하려면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업무에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를 심리해야 한다”며 “이때 CP의 완비 여부와 실제 작동 여부는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고 이러한 점을 법인 책임뿐 아니라 양형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다만 법원에서는 CP의 양형 반영에 관련한 실무 관행이 사실상 없다. 앞서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재판 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양형 반영 여부를 검토했으나 인정하지는 않았다. 또 해당 사건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따른 형사재판이 아니었기에 직접적인 비교도 어렵다. 강 부장판사는 “얼마 전 화제가 됐으나 일회적 이벤트에 머물지 향후 법인 처벌과 관련 경향성을 가질지는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단계”라며 “영향 기준 반영 여부는 별도의 정책적 논의사항으로 보인다”며 말을 아꼈다.
그는 “검사의 기소재량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고, 다른 범죄에 대한 사건처리 균형을 고려할 때 기업의 준법경영 노력이 상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기소하지 않기는 어렵다”며 “다만 범행의 경중, 수단, 방법, 결과 등 다른 양형 사유와 함께 기소유예 처분을 결정할 때 중요한 참작사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검찰의 CP 감경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현재로서는 구형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CP를 고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제안했다.
특사경 도입 반대의견 중론…범칙조사제도 역시 ‘갑론을박’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잠시 언급됐던 공정위에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도입에 대해서는 학계뿐 아니라 검찰 역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특사경이 도입되면 공정위는 검찰의 지휘를 받아 구속영장·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등 강제조사가 가능하지만, 재계에서는 검찰이 사건을 들여다보며 얻은 정보로 별건수사를 하거나 공정거래법 취지에서 벗어난 과한 형사처벌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수사권을 가진 특별사법경찰관제도가 도입되면, 공정거래‘처벌’법의 영역이 공정거래‘경제’법의 영역을 압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조사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도 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 사업자와의 의사소통 등을 통한 임의조사 방법보다는, 손쉽게 증거확보가 가능한 압수·수색이라 는 강제수사의 영역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위법성에 대한 실질 판단 노력보다는, 강제조사를 얻은 증거 위주로 범죄성립 여부만 지나치게 강조될 수도 있다고 봤다.
고 부장검사 역시 “특사경제도는 공정위에서도 반대의견이 많고 아직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여 신중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검찰에서 파견된 윤병준 공정위 법률자문관(부장검사)은 공정거래법상 형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공정위의 ‘행정조사’(임의조사) 그리고 검찰의 ‘형사조사’의 간극을 메우는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범칙조사제도’를 제안했다. 범칙조사란 행정기관이 법으로 규정된 특정 범칙혐의로 조사할 때 검사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다만 강우찬 부장판사는 범칙조사제도가 행정절차 일반에 수사기관의 조기개입 내지는 ‘편리한 별건 수사 방편’을 마련해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공정위 고발 관련 별도 심의’ 제안도…의무고발요청제 개선 요구
공정거래법 전속고발권(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사건에 대해서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을 가진 공정위가 고발 관련 심의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공정위는 과징금·시정명령 등 행정제재에 대한 심의와 고발 여부 심의를 동시에 하는데 이를 분리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박성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시간 제약하에 단순히 심사관 고발조치의견에 대한 피심인 의견을 청취하는 차원이 아니라 고발 여부 심의를 위한 별도의 사건번호 부여와 함께 독립적인 심의절차를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고발여부 결정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고발 이후 검찰 단계에서는 이뤄지는 강제수사 과정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갈만한 요구”라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도 이미 비판이 나오는 의무고발요청제를 재검토 할 때라는 의견도 많았다. 의무고발요청제란 검찰·중소벤처부·조달청·감사원 등 4개 기관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경우 공정위 자체 전속고발권 판단과는 관계없이 고발해야 하는 제도다.
신동열 공정위 경쟁정책과장은 “중기부 등의 의무고발 요청과 관련해서는 고발절차나 요건 그리고 고발기한을 보다 세밀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무 고발 요청 기관과 협의해 MOU라든가 이런 형태로 해당 기관의 규정에 많은 (방어권 등의)절차가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제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검찰청과 한국공정경쟁연합회, 한국경쟁포럼이 공동 주최한 이날 세미나에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권오승 전 공정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