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에~, 매에~
낮잠을 자고 있는데 창밖으로 소리가 들립니다. 옆집 꼬마 캐런이 입양한 어린 양의 울음소리입니다. 봄이 되자 동물농장의 양들이 하나둘씩 새끼 양을 낳기 시작했는데 어미 양이 두 마리를 낳는 경우에는 돌볼 수 있지만 세마리를 낳는 경우에는 어미 양이 모두 돌볼 수 없어 공동체 아이들이 어린 양을 입양해 젖병을 물려 키우고 있습니다. 집 앞에 짚단을 가득 채운 작은 집을 만들고 그 주위에 조그만 우리를 치고 어린 양을 돌보는데 그 옆을 지나려면 매에~ 울면서 우리 앞으로 뛰어나와 자기 좀 봐달라며 사랑스럽게 쳐다봅니다. 캐런이 젖병에 우유를 담아 어린 양을 먹이는 것이 참 귀엽기도 하지만 우유를 배불리 먹은 어린 양이 깡충깡충 뛰면서 캐런을 따라 풀밭을 뛰어놀기도 하고 강아지처럼 목에 줄을 달아 이러 저리로 데리고 산책 다니는 모습이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귀엽습니다. 내 마음도 환해지면서 행복한 미소가 절로 피어납니다.



아침에 일하면서 중간 쉬는 시간에 조애너 할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는데 할머니가 3살 된 손녀 이나스 이야기를 하시면서 얼굴에 하나 가득 웃음꽃을 피우십니다. 사연인즉슨 매주 수요일은 이안 할아버지의 날로 수요일만 되면 이안 할아버지는 어린이집 3살반 아이들을 데리고 작은 포니 말이 끄는 마차에 태우고 숲속을 돌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작은 동산인 ‘스리스 아일랜드’(Three’s island)란 장소에 가서 불도 피우고 음식도 해먹고 하는 날로 아이들은 이날을 늘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번 주 수요일에도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마차에 태우고 숲에 갔습니다. 숲 가운데에 엄청난 큰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선 ‘야곱의 필로’(Jacob’s pillow·야곱의 베개)라 부르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옆에 작은 동굴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동굴 근처를 산책하면서 손을 입에 대고 “두두두두두두…”라고 소리를 내면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곰이 그 소리를 듣고 겨울잠에서 깨어 나올지도 모른다고 하자 아이들이 하나같이 조그마한 손을 입에 대고 두두두두 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긴 갈색 털에 덮여 있는 커다란 짐승이 동굴 밖으로 살금살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갈색 곰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잽싸게 마차에 오르자 할아버지가 곰이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도록 말을 채찍질하며 열심히 마차를 몰았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고 흥분되어 지나가는 사람마다 커다란 곰을 봤다며 자랑했습니다. 방금 숲에서 산책 나온 다비드 할아버지가 “우리는 못 봤는데 너희들은 정말 행운아”라며 부러워하자 아이들이 더욱 으쓱해졌습니다. 이나스는 집에 와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종일 곰 이야기만 했답니다.
메이플릿지에는 곰이 살고 있지 않았는데 최근 몇 년간 곰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어 내심 나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도 그날 숲에 산책하러 갔다가 야곱의 베개 근처에서 죽은 그라운드 호그 야생동물을 봤고 그 옆에 곰 발자국처럼 생긴 커다란 발자국이 봤습니다. 조애너 할머니 옆에 앉아 있던 이안 할아버지 부인 되시는 자넷 할머니가 입을 여셨습니다.



곰 사건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할머니의 말씀인즉슨 이안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마침 길가에서 죽어 있는 그라운드 호그를 동굴 근처에 갖다 놓고, 나무로 곰 발자국 모양을 파서 마치 곰이 풀밭을 밟은 것처럼 발자국을 찍고, 한 형제를 시켜 곰 분장을 해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두두두두 소리를 내자 곰처럼 걸어 나온 것처럼 한 것랍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안 할아버지의 깜짝 쇼에 저도 속고 말았네요. 아무튼 아이들의 마음에 모험심을 심어준 할아버지의 위트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메이플릿지에도 이제는 봄이 찾아와 어린 양뿐만 아니라 아기 염소도 세마리나 태어났고 어제는 송아지도 태어났습니다. 3년 전 접붙인 한국 배나무들도 잘 자라주어 올해 처음으로 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곧 노란 한국 배가 주렁주렁 달려 달고 아삭하고 즙이 줄줄 흐르는 한국 배를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 입에서 침이 도네요.
집 앞마당에도 옆집 아이들이 예쁜 색 분필로 ‘해피 스프링’(HAPPY SPRING)이라 낙서해 놓은 걸 보자 “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우리 마음속에도….” 노래가 절로 흘러나옵니다.



작년 9월 워싱턴 디시(D.C) 덜레스 국제공항에 12만4000명의 아프카니스탄 난민들이 들어온 후 우리 공동체는 댈러스와 텍사스 난민 수용소에 청년들과 몇쌍의 부부들을 보내어 난민 어린이들을 돌보게 했습니다. 난민들은 난민 수용소에서 절차가 끝나면 여러 주로 보내졌습니다. 뉴욕의 주도인 올바니는 보통 1년에 200명 정도의 난민을 받아들였는데 지난 4개월간 400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올바니의 난민 담당 공무원이 손이 부족하자 우리 공동체에 도움을 요청해와 저희는 난민들이 입주할 집들을 청소하고 수리하며 난민들이 입주할 때 따뜻한 마음을 느끼도록 꾸몄습니다.


올바니 하우스 공동체는 주말에는 난민 가족들을 공동체에 초대해 함께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과 놀면서 난민들이 서로 알아가고 교제하는 장을 만들어서 낯선 사회에서 위로와 평안을 느끼도록 돕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브루더호프 공동체도 난민의 역사입니다. 공동체가 처음 독일에서 세워진 후 나치 정권에게 위협을 받자, 아이들과 청년들을 스위스로 피신시켰고, 몇 년 후엔 공동체 모든 구성원이 나치에 의해 강제 추방되어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영국에 정착한 지 몇 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적대국인 독일 사람들을 모두 포로 수용소로 보내든지 영국 땅을 떠나라고 하자 공동체 전원이 파라과이로 망명했습니다. 파라과이에서는 파라과이에 먼저 정착한 메노나이트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후 20년이 흐른 뒤 미국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난민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그동안 빚진 자의 마음으로 베트남 보트피플과 체르노빌 사태로 망명 온 가족들을 돌보기도 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공동체 청년을 우크라이나에 파송해 사마리탄 퍼스와 함께 병원을 건설하는 것을 돕게 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빈에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촌의 가족들을 돕고 있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봄축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들썩거립니다. 드디어 오후 2시가 되자 손님들이 하나둘씩 도착합니다. 행사 등록처로 가서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받으면 이름 밑에 적혀 있는 호스트 가정에 가서 기다립니다. 오늘 행사를 위해 공동체 전체가 호스트를 했는데 호스트 가족들이 예쁜 봄꽃들을 엮어 만든 화관을 손님들에게 드리자 모두 좋아하십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봄 축제를 즐길 시간입니다. 꼬마 기차가 어린 손님들을 태우고 신나게 공동체를 달리고 시드니가 모는 마차는 쉴 틈 없이 손님들을 태우고 숲을 돌고, 랜디의 헤이라이드 역시 손님들로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인기 만점인 것은 반려동물 코너입니다. 이곳은 공동체 아이들이 기르는 토끼들과 어미와 새끼 염소가 있어 직접 만져보고 안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에릭은 당나귀를 가져와 아이들에게 타게 하니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제 마음도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메이폴 댄스가 끝나자 이제 슬슬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저녁 만찬 시간. 지난 몇 주간 공동체 주방에서는 이날의 만찬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다이닝룸은 공동체 식구들과 손님들로 가득 차 빈자리가 없습니다. 메이플릿지 학교 아이들의 합창으로 저녁 만찬을 열었습니다. 애프타이저로 마늘빵과 샐러드가 나왔습니다. 마늘 빵은 공동체 식사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라 특별히 부탁했고 블루베리를 갈아 넣은 샐러드드레싱이 입맛을 당깁니다. 메인 메뉴는 미트로프에 버섯 그레이비를 얹고 감자를 갈아 만든 부드러운 매시드포테이토, 바질과 아몬드를 넣어 만든 그린빈 요리입니다. 디저트로는 아내가 좋아하는 상큼한 라임 파이와 산딸기파이였습니다. 손님들 모두 정성스러운 홈메이드 요리에 감탄하며 맛있게 드시니 제 마음도 즐거워지면서 주방에서 종일 열심히 준비한 손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넘쳐납니다.


로비 할아버지의 연주가 끝나자 톰은 한인 할아버지와 함께 나와 밴조를 연주하며 이번에는 모든 미국 사람들의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컨트리 로드 테이크 미 홈(Country road Take me home)…”을 부르십니다. 톰의 노래가 끝나자 한인 교회 성도님들도 나와 찬송가를 부르시고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 갑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공동체 모든 형제가 나와 함께 합창하는 ‘맨스 콰이어’(Men’s Chior)로 이날의 이벤트는 끝이 났습니다.

“부활절 계란을 나누어 주어라/ 주 예수님 부활했네, 부활했네/ 가난한 이에게 곳간을 열어라/ 주 예수님 부활했네, 부활했네/ 비축해 두면은 좀먹고 녹슬리/ 주 예수님 부활했네, 부활했네/ 기꺼이 주는자 풍성해 지리라/ 주 예수님 부활했네, 부활했네”
글 박성훈/브루더호프 미국 메이플릿지 공동체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