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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개발한 ETF, 미국 증시 상장" 소년 워런 버핏 꿈 이루는 문효준 아크로스 대표

입력
2022.05.04 04:30
수정
2022.05.04 16: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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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배당 주는 ETF 개발 "게으른 돈 없앨 것"
중학생 때부터 주식 투자, 대학생 때 리서치 헤드 역임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소년은 어려서 동화책이 아닌 투자 서적에 둘러싸여 자랐다. 아버지는 은행에서 자산가들의 투자를 상담해주는 전문가인 프라이빗 뱅커였고 어머니도 외국계은행에서 기획투자(PF) 업무를 담당해 집에 금융 및 투자 서적이 넘쳐났다.

소년은 초등학생 때부터 호기심에 동화책 읽듯 투자 서적을 읽었다. 그러면서 의심이 싹텄다. 과연 책대로 투자하면 결과가 그렇게 나올까. 그래서 이를 검증하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었다. 워낙 게임을 좋아해 게임 개발을 하려고 컴퓨터 학원을 다니며 프로그래밍을 배워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탈 만큼 개발 실력이 좋았다.

그렇게 만든 소프트웨어로 주식 투자 서적을 검증해 보니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출간 시점에서 6~12개월까지만 수익률이 좋고 이후에 떨어졌다. 소년은 수익을 내려면 최신 데이터로 과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소년은 깨우친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를 졸라 부모 동의 아래 증권 계좌를 만들고 그동안 모은 용돈 100만 원을 종잣돈 삼아 직접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그가 눈여겨본 주식은 스마트폰 덕에 인기를 끈 모바일 게임업체들이었다. 그는 컴투스 등에 투자해 수백% 이상 수익률을 기록했다.

어려서부터 '소년 워런 버핏'처럼 남다른 투자 재능을 보인 소년은 금융기술(핀테크) 분야의 독특한 신생기업(스타트업) 아크로스테크놀로지스를 창업한 문효준(26) 대표다. 서울 강남역 근처 아크로스 사무실에서 문 대표를 만나 금융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대한 꿈을 들어 봤다.

문효준 아크로스 대표가 서울 강남역 인근 사무실에서 직접 개발한 AI를 이용해 ETF 개발에 필요한 자료 분석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한 기자

문효준 아크로스 대표가 서울 강남역 인근 사무실에서 직접 개발한 AI를 이용해 ETF 개발에 필요한 자료 분석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배우한 기자


“투자가 게임이었다” 중2 때부터 주식 투자

문 대표는 주식 투자 덕분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용돈을 받지 않았다. 항상 직장인들 못지않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2 때 선물의 차익거래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해 투자자문사에 제공하고 큰돈을 벌었다. "투자가 게임 같았어요. 시장에서 예측 가능한 정보들을 모아 해석하는 일이 재미있었죠. 고교 1학년 때 각종 증권사에서 개최한 모의 주식투자 대회에 나가 항상 10위 안에 들었죠."

덕분에 그는 서울대에서 전기정보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2학년 때부터 핀테크 업체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에서 리서치 헤드로 일했다. 리서치 헤드는 주로 관련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맡는다. "중고교 시절 활동한 투자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사람들 덕분에 2018년 크래프트에 입사해 3년 동안 일했어요. 당시 크래프트는 은행과 증권사들을 상대로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인공지능(AI)을 개발했는데 관련 연구개발팀을 이끌었죠."

금융시장의 문제 ‘게으른 돈’ 없애려 창업

그가 지난해 1월 아크로스를 창업한 것은 크래프트에서 일하며 금융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문제란 정보와 시간의 불평등이다. "누구나 좋은 투자 기회를 똑같이 갖기 힘들어요. 사람마다 얻는 정보가 다르고 일일이 투자 상품을 알아보고 확인할 수 있는 시간도 제각각이죠."

이런 문제 때문에 금융시장에 그가 명칭을 붙인 '게으른 돈'이 발생한다. "게으른 돈이란 정보와 시간 부족으로 남이 권하는 투자상품에 무조건 따라서 투자하는 것을 말해요."

게으른 돈을 유발하는 금융시장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것이 창업 목표다. "정보기술(IT)을 이용해 믿을 만한 투자상품을 만들어 해결해야죠. 금융상품 개발을 자동화하고 상품을 투명하게 구성해 투자자들의 시간을 아끼고 신뢰를 높이는 것입니다."

문효준 아크로스 대표의 목표는 IT를 이용해 정보와 시간의 불평등으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금융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배우한 기자

문효준 아크로스 대표의 목표는 IT를 이용해 정보와 시간의 불평등으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는 금융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배우한 기자


100년치 경제정보 분석해 금융상품 만드는 AI 개발

이를 위해 문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금융상품을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인공지능(AI) 개발이다. 문 대표를 비롯해 영국 옥스포드대학에서 자율주행 로봇을 연구하던 개발자, 끈 이론을 연구한 서울대 박사,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매니저 출신 등 전문가가 '알파 인텔리전스'라고 부르는 AI 개발에 참여했다.

알파 인텔리전스는 100년치 금융 데이터를 학습해 안정적이며 투자 가치가 높은 금융상품을 만드는 AI다. "양질의 데이터 학습이 중요해 1910년부터 각종 거시경제 지표와 모든 미국 기업들의 재무제표, 주가 데이터를 확보했어요. 자그마치 2만5,000가지 항목의 100년치 데이터를 수집했죠. AI가 특정 기업의 제품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원자재 가격까지 분석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수백, 수천 명의 연구원을 고용한 대형 금융사들을 이기기 힘들죠."

관련 경제 정보들은 S&P글로벌, 래피니티브 등 5군데 시장조사업체에서 구입하고 프레드, 에드거 등 미국 공공기관 자료들을 활용한다. "굉장히 비싼 자료들이어서 투자금 대부분을 데이터 구입에 사용해요. 이들로부터 날마다 실시간 데이터를 받아 AI가 분석하죠."

그만큼 데이터 용량이 매우 커서 하드웨어를 다루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것도 문 대표와 개발자들이 직접 해결한다. "모든 서버를 하나로 묶어 필요한 곳에 컴퓨팅 파워를 집중 배분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 같은 미니 클라우드를 개발했어요. 이를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다들 놀라죠."

국내 최초로 월 배당 주는 ETF 개발, 이달 초 미국 증시 상장

문 대표는 올해 AI로 개발한 두 종류의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선보인다. 우선 이달 초 '엠페이'(MPAY)라는 ETF를 뉴욕증시에 상장한다. 엠페이는 300조 원 이상의 투자금을 운용하는 미국 금융사 모닝스타의 자회사 무어게이트 벤치마크와 함께 AI를 이용해 개발한 엠페이 지수로 구성한 상품이다. "엠페이 ETF는 미국 국채와 회사채, 미국 기업들의 주식, 금 등의 원자재와 부동산 등 각종 19개 자산군에 분산해 투자합니다."

엠페이 ETF는 특이하게 국내 최초로 매달 수익을 나눠주는 월 배당 상품이다. "연 7% 수익을 월로 나눠줘요. 분기 배당 상품은 있었지만 월 배당 상품은 처음이죠."

두 번째 상품 'RTRN ETF'는 하반기에 내놓는다. 관련 RTRN 인덱스는 개발이 끝났다. "RTRN ETF는 글로벌 헤지펀드 수준의 10~20% 수익률이 목표입니다. AI가 여기 필요한 RTRN 인덱스를 미국 기업 중 50개를 뽑아 구성했죠."

두 가지 상품은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주식 거래 서비스로 살 수 있다. 투자 상품이므로 원금 손실이 일어날 수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문효준 아크로스 대표가 서울 강남역 인근 사무실에서 AI를 이용해 개발한 '엠페이 ETF'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엠페이 ETF는 이달 초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다. 배우한 기자

문효준 아크로스 대표가 서울 강남역 인근 사무실에서 AI를 이용해 개발한 '엠페이 ETF'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엠페이 ETF는 이달 초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다. 배우한 기자


책임 운용 위해 자본 50%로 판매하는 ETF 구입

관건은 상품의 신뢰 확보다. 이름이 알려진 금융사도 아닌 스타트업의 상품을 과연 믿을 만할까. 이를 위해 문 대표는 스타트업다운 해결책을 내놓았다.

우선 상품 구성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헤지펀드들은 투자 상품의 구성 요소를 숨기거나 상품 공개 후 3~6개월 지나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구성 요소를 모른 채 깜깜이 투자를 하게 되죠.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상품 구성 요소를 계속 공개합니다. AI가 ETF 구성을 1개월 주기로 바꾸는데 변경 즉시 공개합니다."

이와 함께 판매하는 ETF에 회사 자본의 50%를 투자한다. 도의적 책임감 때문이다. "금융사들이 투자 상품을 권할 때 그렇게 좋은 상품이면 너희는 왜 안 하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소비자들의 요구죠. 수익이나 손해가 나도 소비자들과 함께하려고 판매하는 ETF를 직접 구입해 믿음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남다른 채용 과정 "미션 공감이 우선"

문 대표에게 창업은 상품 개발만큼이나 힘든 도전이었다. "부모님들이 금융업을 반대하셨죠. 예측 불가능한 요인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이유였어요."

가장 힘든 일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다. "소수 정예로 갈 수밖에 없어 좋은 사람을 뽑는 일이 힘들었어요."

그는 채용과정에서 급여 등 조건보다 회사의 목표를 강조한다. "돈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은 더 많은 돈을 주는 곳이 나타나면 떠나요. 금융시장의 문제를 바꿔보자는 회사의 목표를 먼저 이야기하고 여기에 공감하면 연봉을 협상해요. 그런 과정을 거쳐 외국 대학 박사 과정을 포기하거나 좋은 조건의 금융사를 그만두고 전문가들이 옮겨 왔죠."

그러면서 문 대표는 스타트업 특유의 유연한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출퇴근 시간도 없고 굳이 출근 여부를 따지지 않아요. 매주 1회 목표 공유 회의 때 각자 한 일을 확인할 수 있어 굳이 근무 시간에 얽매이지 않죠. 알아서 각자 밤에도 서로 의견 교환하며 열심히 일해요. 휴가 일수도 정해 놓지 않아 기한 없이 쉴 수 있어요. 이런 기업 문화는 직원이 늘어도 계속 유지할 생각입니다."

금융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회사의 목표는 문 대표의 꿈이기도 하다. "남들이 평생 벌어야 할 돈을 벌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모두 포기했어요. 돈 버는 게 삶의 목표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상품 출시 후 회사 상품을 제외한 주식이나 암호화폐 등 개인적인 투자도 일절 하지 않아요. 앞으로 직접 개발하는 상품에만 투자해 소비자들과 함께할 계획입니다."

투자 유치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체 피플펀드로부터 45억 원을 받았다. "좋은 인력을 더 많이 뽑기 위해 하반기에 추가 투자 유치를 생각 중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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