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은 세상을 바꿨을까

미디어오늘 2022. 5. 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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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1349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청와대가 '세상을 바꾼 국민 청원'이라며 2017년 8월19일부터 2022년 2월28일까지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과 관련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누적 청원 게시글은 111만 건에 달했다. 동의에 참여한 국민은 2억3000만 명에 이른다.

어마어마한 숫자는 그 자체로 성과로 보인다. “의견을 개진할 마땅한 곳이 없는 국민들이 호소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 생각도 십분 공감한다.

청원 등록 후 한 달 안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청원 마감 후 30일 내 답변하는 시스템은 여론 동향을 파악해 어떻게든 답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정치적 효능감을 극대화하는 효과도 있다.

범죄 피해자가 공권력 도움을 받지 못해 고통에 시달릴 때 청원 게시판은 그들의 '구원 투수'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동의를 가장 많이 받았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여론을 환기시켰고 언론의 심층 보도로 이어지면서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스쿨존에서 차에 치여 숨진 사건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스쿨존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직접 지시했고 하루 만에 국민 청원 20만 명을 달성해 여론의 분노를 확인시켰다.

▲ 청와대 국민청원 일러스트 이미지. ⓒ 연합뉴스

그럼에도 청와대 게시판은 제도 운용상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피할 순 없었다. 지난 2019년 패스트트랙 문제로 여야가 극심한 갈등을 벌일 때 지지자들은 경쟁적으로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해산 청원을 냈다.

이에 관해 청와대는 헌법 제9조에서 정부의 정당 해산 제소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정당에 대한 평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라고 답변했다. 청와대 답변은 삼권 분립에 역행한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마치 진영 대결을 치르듯,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를 감사해야 한다는 청원도 꾸준했다.

한 일간지는 이를 두고 “국민 청원 게시판이 미확인 사실을 공론화하거나 분노를 배출하는 하수구가 됐다”고 격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청와대 게시판을 깎아내리면서도 갈등을 부추기거나 미확인 내용을 퍼다 나른 것은 언론이었다. 개인 분쟁에 가까운 사건이나 일방적 주장도 기사화했고, 사건 실체가 불분명해도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와 있다'는 팩트 하나만 갖고 '논란'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일명 커뮤니티발 보도의 전형이다. 검증은 나중이고 우선 기사화를 통해 조회 수를 올리는 방식이다.

언론은 '국민 청원 이름으로 게시된 여론 아니냐'면서도 청와대 게시판을 악마화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 출입 기자들도 큰 이슈나 이벤트가 없으면 게시판을 뒤져 입맛에 맞는 '정쟁'의 내용을 '논쟁'으로 탈바꿈시켰다. 청와대 게시판에 대한 언론의 평가를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 모순적 행태 때문이다.

언론이 현실을 왜곡해온 탓에 대중 이목이 청와대 게시판으로 쏠린 것은 아닌지 자문부터 해봐야 한다. 우리 언론이 겉으로는 '여론을 반영한다'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실은 정파적 보도를 주도하고 여론을 독점할 수 있다고 오판하지 않는지 성찰해보라는 것이다. 청와대 게시판 흥행은 언론에 대한 불신과 맞닿아 있다.

▲ 4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국민청원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그렇다고 청와대 게시판을 문재인 정부의 '직접' 소통 성과로 자찬하는 건 따져봐야 한다. 문 대통령은 손석희 전 JTBC 앵커와 대담에서 “과거처럼 기자회견이라는 방식의 소통뿐만 아니라 현장을 찾아 국민과 직접 만나는 방식의 소통, 국민의 청원을 직접 듣고 답하는 방식의 소통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150회 한 것과 비교하면 소통이 부족하다'는 손 전 앵커 지적에 대한 반박성 답변이었지만 군색하기 그지없다. “기자회견 등 직접 소통은 크게 부족했지만 대국민 소통 플랫폼 정착엔 노력했다” 정도가 적확하다.

차기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 1층에 프레스센터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당선자는 기자들과 수시로 접촉하겠다고 공언했다. 빈말이지 않으려면 프레스센터 출입 기준부터 공정해야 한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일부 매체들의 인수위 출입을 거부한 행태로는 소통을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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