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호 칼럼] 지방선거, 대통령 탄핵의 유탄을 맞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2. 5. 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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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 유권자들은 전무후무한 지방선거를 치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최초로 경험해야 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방선거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중앙정치에 휘말리고, 다시 중앙정치는 지방선거에 휩쓸려 진행되는 초유의 현상을 말한다. 한국정치의 모든 문제점들이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왜곡되고 불안한 공존 위에 퇴적되고 있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응축되고 폭발되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지난 3월의 대통령 선거와 5월의 취임, 그리고 뒤이어 예정된 6월1일 지방선거의 복잡한 일정을 우리 정치와 유권자들이 한 번도 치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일정이 이렇게 복잡해진 것은 물론 2017년 대통령 탄핵과 뒤이은 궐위선거가 우리의 선거 캘린더에 던진 유탄 때문이다. ‘87년 체제’의 핵심이었던 5년 단임제 대통령 선거가 늘 12월에 치러지다가,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궐위로 이제는 헌정질서의 변화가 없는 이상 계속 3월에 치러지게 된 것이다.

양대 선거가 약 석 달을 사이에 두고 치러지는 것이 큰 문제인가 반문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우선 무엇보다도 3월의 대선 기간까지 양당의 지도부는 일체의 지방선거 관련 활동을 금지했다고 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어느 예비후보자에 의하면, 해당 지역의 현직 위원장이 대선 직전에 지방선거 예비 후보자들을 모아 놓고 “과거는 묻지 않겠다. 대선기간 중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예비 후보자를 (지방선거에) 공천하겠다”고 공언했다는 것이다.

반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두 달이 지나서도 여전히 지방선거가 대통령 선거의 연장전처럼 치러지고 있는 중이다. 지방선거는 대선주자 재활의 그라운드가 되었으며, 지방선거 공천은 대통령 선거 운동을 포상하는 도구가 되었다. ‘검수완박’이 지방선거의 의제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탄핵의 뒤늦은 유탄을 맞은 것은 지방선거만은 아니다. 치열한 선거국면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으레 모든 대통령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 집무를 시작하게 되는 ‘허니문’ 기간을 누릴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5년의 집무기간을 준비하고 기획하며 미래의 포석을 깔아놓을 수 있는 취임 직후의 기간, 야당과 당선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까지도 기본적으로 당선인의 큰 그림과 의사를 존중하고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의미에서 약간의 말미를 주게 될 짧디짧은 ‘허니문’ 기간조차 대선의 연장전 같은 선거의 자장(磁場)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한 정권의 성패가 그 첫 단추가 어떻게 끼워지는가에 좌우된다면, 윤석열 정부는 매우 어려운 암초밭에서 운항을 시작하게 되는 셈이며,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탄식할 만한 일은 이와 같은 탄핵의 유탄이 앞으로 10년마다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2032년 제22대 대선이 3월에 치러지고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 바로 이어 4월에는 24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대선의 연장전 같은 총선, 대통령직 인수와 취임은 총선의 영향권 안에서 진행될 것이다. 물론 멀다면 먼 훗날의 일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이 현재 세대를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고려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선거 캘린더를 입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시급하다.

문제는 이것이 쉽사리 해결될 간단한 숙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 일정은 대통령의 임기와 보장된 재임기간을 고려한다면 개헌사항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직의 임기를 약간 줄인다면 선거가 겹치는 해당 연도에 동시 선거를 진행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며 심각하게 고려해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애초 지방선거가 대선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에 동의한다면 이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해소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는 지방선거를 통해 자치단체의 형태와 임기, 선거 일정까지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제공하는 형태도 생각해볼 만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지금 진행되는 지방선거를 본다. 제헌헌법에서부터 연이은 군사정권의 헌법에까지 명문화되어 있었고 6·29 선언에도 포함되어 있었던 지방자치의 원리가 결국 구현되었던 것은 민주화 이후에도 한참 지났던 1995년 제1대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였다. 주변과 이웃에서 시작되는 생활의 문제들을 직접 참여하고 정치로 풀어나가는 그 이상에 우리는 너무도 멀리 떠나와 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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