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서 오진단 받았는데 종합병원 검사 금지?..'검수완박'의 함정

이배운 2022. 4. 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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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호동 대구지검 검사, 검수완박 작심 비판
"종합병원 진료 권한 박탈?..환자 병세만 악화시켜"
"일부 의사가 죄를 지었다고 전국 종합병원 문 닫는 꼴"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종합병원 의사들이 물의를 일으키고 실수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국의 종합병원이 모조리 문을 닫아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43·사법연수원 38기)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저지의 최전선에 나선 평검사의 대표주자다. 일명 ‘n번방 사건’ 수사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전도유망한 검사인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검수완박 입법 강행 움직임을 보이자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글을 올리고 있다. 지난 22일 대검찰청이 주최한 ‘검찰 수사기능 폐지 법안 관련 공청회’에선 평검사 중 유일하게 발표자로 나서 검수완밥 입법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검찰 직접수사권 폐지 반대 이미지 (사진=차호동 검사 제공)
차 검사는 27일 이데일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검수완박의 문제점을 병원치료에 비유했다. 그는 경찰과 검찰이 각각 동네병원, 종합병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종합병원이 환자를 진료할 권한을 박탈당하는 순간 의료 시스템은 상당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큰 것처럼, 검찰의 수사 기능을 완전히 박탈하는 검수완박도 유사한 혼란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검수완박에 대해 “종합병원은 동네병원이 보내준 차트만 읽고 환자의 병을 판단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설령 종합병원 정밀검사 과정에서 다른 부위의 이상이나 병을 발견해도 종합병원이 그 병에 대해서 조치할 권한은 없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동네병원에서 폐렴 진단을 받은 환자가 종합병원에서 간에 암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도 종합병원 의사는 환자의 폐렴 유무에 대해서만 소견을 낼 수 있다. 환자는 간암을 치료받으려면 다시 동네병원에서 간암 진단을 받아 와야 하며, 그동안 병세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검찰은 새로운 범죄 혐의를 발견해도 즉각 수사에 나서지 못하면서 범죄자에게 증거를 인멸할 시간만 벌어주는 사태가 빈발할 것이라는 게 차 검사의 관측이다.

차 검사는 동네병원은 비교적 가벼운 질병을 앓는 환자들을 신속하게 치료해 주고 종합병원은 중증의 환자들을 돌보는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지만, 검수완박은 이 분담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검찰은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복잡하고 중대한 범죄들에 대응하기 위한 수사 전문성을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왔다”며 “이는 종합병원이 자기공명영상(MRI) 등 각종 첨단 의료기기를 보유하고 각 분과별 전문의를 양성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수완박은 전국의 종합병원을 폐쇄하고 능력 있는 의사들을 다른 의료기관으로 뿔뿔이 분산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동안 종합병원이 쌓아 온 고도의 의료기술이 다시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며 “당장 종합병원의 전문적인 치료가 급한 환자들과, 다른 의료기관을 마련하는 사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수많은 환자만 상당한 피해를 볼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 (사진=차호동 검사 제공)
검찰의 수사 권한 축소에 따른 폐해는 이미 통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부정부패사범 단속 건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 2017년 1755건에서 지난해 207건으로 급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에 ‘직접수사를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전해졌고, 나아가 지난해 검경수사권 조정까지 시행되면서 단속 건수가 급감했다는 얘기다.

차 검사는 “그사이 대한민국이 눈에 띄게 청렴해지고 부정부패 사범들이 사라졌다기보다 부패사범에 대한 단속이 안 됐다고 해석하는 게 정답일 것”이라며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수가 줄었다고 질병 없는 세상이 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차 검사는 검수완박은 대학병원의 일부 못된 의사들이 갑질, 부정·비리, 의료사고, 과잉 진료 등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전국 대학병원을 폐쇄시키는 발상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검찰이 그간 저질러 온 제 식구 감싸기, 선택적 수사 등 잘못에 대한 비판은 물론 달게 받아야 할 것”이라면서 “검찰이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새로운 감시·통제 시스템을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검사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검찰 조직을 폐지하자는 것은 결국 힘없는 국민들만 고통받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일선 현장의 검사들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이배운 (edu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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