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 현실화? 성평등 정책 기로에 서다

김영화 기자 입력 2022. 4. 2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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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의 성평등 정책은 어떤 기로를 맞게 될까. 여가부 폐지 논란을 들여다보면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가 겨누는 곳은 '가족'이 아니라 '여성'에 가깝다.
4월7일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현장단체연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시사IN 조남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여성가족부 폐지’란 일곱 글자 공약을 공식화한 것은 지난 3월25일이다. 이날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은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미 확인한 상황에서 여가부란 이름으로 존치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4월7일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인수위 기간 중 조급하게 결정해 추진하기보다는 새 정부에서 야당 의견을 충분히 경청한 뒤 정부조직 개편안을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국가의 성평등 정책은 다가올 윤석열 정부에서 어떤 기로를 맞게 될까. 여가부 폐지 논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가 겨누는 곳은 ‘가족’이 아니라 ‘여성’에 가깝다. 대안으로 신설될 부처 이름으로 ‘미래가족부’ ‘복지가족부’ ‘인구가족부’ 등이 거론되었다. 신설된 부처에서 아동·가족·저출산 등 인구절벽 문제를 주로 다룬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당선자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조직 개편안을 공약으로 내건 지 3개월이 지났지만, 그 배경과 대안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감춰져 있다. 단순히 ‘여가부’라는 명칭만 바꾼다는 것인가? 새로운 이름(예컨대 ‘미래가족부’)을 단 부처의 기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여가부의 여성·성평등 업무는 어떻게 될까? 추측과 소문만 무성한 상황이다. 여성가족부 지원 사업의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터져 나온다.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이하영 공동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가부 해체 소식이 들려오자 ‘이제 상담소와 쉼터 없어지는 거냐’ ‘우리 이제 지원 못 받나’ 하는 전화 문의가 빗발쳤다. 우리 단체 말고도 많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일이다.”

여성가족부는 ‘여성만을 위한 부처’ 등의 비난에 시달리며 여러 차례 폐지를 요구당해왔다. 그러나 정작 정책분야별 예산 규모만 뜯어보면 이런 비난들엔 합리적 근거가 없다. 여성가족부의 업무는 크게 여성·성평등 정책, 가족 정책, 청소년 정책, 권익 정책 등으로 나뉜다. 2022년 예산안을 보면, 여가부의 그것은 1조4650억원으로 전체 예산(607조7000억원)의 0.24%에 불과하다. 이 1조4650억원 중 80%가 ‘가족·청소년 업무’에 사용된다. 이 업무의 대상은 한부모가족, 학교 밖 청소년 등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이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해당된다. 여가부 예산의 9.22%는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데 쓰인다(권익 정책). 정작 ‘여성 정책’으로 묶이는 사업 예산은 7.2%에 불과하다. 여성 정책이란 경력단절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 성인지 관점에서 정부 정책에 성차별 요소가 없는지 평가하는 성별영향평가 등을 의미한다.

인수위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은 3월14일 “여가부에 숨은 기능과 역할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그 정책의 대상이 되는 국민이 있는데 정책들을 없앨 순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가부 폐지 시나리오 중  하나로 ‘기능 분리’ 방식이 떠올랐다. 가족과 청소년 정책을 보건복지부로, 젠더 폭력 피해자 지원 정책을 법무부로 이관하는 안이다. 성평등 정책의 검토 및 총괄 기능은 대통령 혹은 총리 직속의 ‘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시사IN〉에 “그렇기 때문에 여가부 폐지가 여성 정책이나 양성평등 정책의 폐지는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가부가 여성 정책과 양성평등 정책을 담당했지만, 사실 힘이 없어서 제대로 집행 못한 부분도 있다. 예산과 권한이 훨씬 큰 부처로 배치하면 관련 정책들이 더 힘을 받지 않겠나.”

여가부는 성평등 정책의 컨트롤타워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2001년 출범했지만, 예산과 권한의 한계 속에서 위기를 거듭 맞았다(〈시사IN〉 제724호 ‘탄생부터 무용론․폐지론에 시달린 여성가족부 수난사’ 기사 참조). 국민의힘 의원 말대로 여가부 업무를 복지부나 법무부로 분산하는 것이 더 좋은 방안일까? 여가부가 해체되더라도 성평등 정책은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폐지론자들은 여성 의제 하나로는 여가부를 독립 부처로 존속시킬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시사IN 최예린

그러나 여가부와 사업을 수행하는 관계자들은 ‘기능 분리’ 안이 국가 전체적으로 성평등 수준이 크게 후퇴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우려한다. 독립된 중앙부처라야 국무회의에 대표로 참석해 성평등 관점의 정책을 추진하고, 기재부와 협상으로 관련 예산을 따내며,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사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가부는 중앙부처였기 때문에 국회부터 국책 연구원, 산하기관,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의 성평등 추진 체계에 참여해 컨트롤타워 구실을 할 수 있었다. 여가부 해체의 파급효과가 단순히 중앙부처 한 곳을 없애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여성단체들은 ‘여성’ 글자를 빼더라도 성평등 업무 담당 중앙부처는 남아야 한다는 데 대체로 합의한다.  

여가부와 일해본 현장 관계자들은 여가부의 성과를 단순히 “계산기만 두드려서” 알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학교 밖 청소년, 온라인 폭력 피해자 등 다른 부처가 포괄하지 못했던 이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전직 여가부 공무원 A씨는 “미혼모, 한부모, 다문화가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수행해왔다. 이런 기능들을 큰 부서로 떼내는 것이 성과를 수치화하기엔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약자와 피해자들을 잘 돌보고 지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해 아동 혹은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정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여성가족부가 취하는 태도는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여가부의 권익 업무를 법무부로 이관하는 방안이 거론되자,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 단체들은 크게 우려했다.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이하영 대표가 보기엔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방안이다. “우리는 사건화되지 않는 무수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피해 여부를 추궁당하고 이를 증명해낼 것을 요구받는다. ‘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은 피해자만 지원하는 현재 법무부 시스템에서 젠더 폭력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여성단체들이 성매매피해자보호법,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안 등 피해자의 개념을 정립하기 위한 법 개정 운동 때마다 가장 격렬히 부딪친 정부 부처는 법무부였다.

4월7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535개 단체가 모인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현장단체연대는 인수위원회 앞에서 ‘성평등 관점의 여성폭력 방지 전담부처’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여성 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여성 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활동이기도 하지만, 여성폭력을 발생시키고 ‘피해자를 탓하는’ 성차별적인 사회와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4월4일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여가부 폐지 여론이 주목받으면서, 여가부뿐 아니라 관련 현장 단체들도 활력이 떨어졌다. 한 지자체에서 여성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 b씨는 지난 여성가족부의 업무들이 와르르 무너질 모래성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여가부 국비로 운영되는 성별영향평가센터 등 지역에서 진행 중이던 성평등 사업이 많은데 그냥 흐지부지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여가부가 사라지면 누가 지자체의 양성평등 사업을 적극적으로 가져가겠나.” 여성 폭력 피해 지원부터 성평등 임금 공시제, 여성 일자리 사업 등 지역사회에 자리 잡아가던 성평등 정책들이 부서 통폐합으로 인해 추진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b씨는 “여가부 폐지냐 존속이냐 따지고 있는데 어째서 지자체가 어떤 문제를 겪을지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시사IN 최예린

이명박 정부 때도 개편 시도했으나…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우려들을 인수위가 충분히 듣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인수위 파견 인력에 여가부 공무원이 배제된 데 이어(이후 한 명 파견), 3월25일 여가부 업무보고는 30분 만에 종료되었다. “예산과 업무보고 분량이 제일 적었다(임이자 인수위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는 이유였다. 인수위는 당초부터 여성분과를 설치하지 않았다.

여성가족부와 관련된 개편은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그 성과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이명박 정부는 행정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2008년 2월 당시의 여성가족부에서 가족 및 보육 정책을 떼어내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시켰다. 여성가족부의 명칭도 여성부로 바뀌었다. 그런데 2010년에 다시 가족 및 보육 정책을 여성부로 이관시키면서 부처 이름도 여성가족부로 바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한 차인순 국회의정연구원 겸임교수는 그 2년 동안 정책 현장이 더 큰 혼란에 빠졌다고 말했다. 차 교수가 보기에는 저출생, 아동 정책, 청소년 정책, 경력단절과 성평등 정책이 함께 가야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부처 조직의 상부는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이슈가 되는 사안들을 중심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복지부는 현재 코로나 대책 이외에는 다른 무엇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을 거다. 아동학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제기되니 그제야 수동적으로 대응한다. 거대 부처인 만큼 선제적으로 취약한 부문을 키워내기 어려운 구조다.”

3월30일 ‘여성가족부 폐지론 진단과 성평등 정책 정부조직 개편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시사IN 조남진

이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현재 인수위가 추진하는 대통령 혹은 총리 직속 양성평등위원회의 역할도 유명무실해지기 쉽다.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이 페미니즘의 냄새만 맡아도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공격하고 심지어 가짜뉴스까지 확산시켜왔기 때문이다.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 “성인지 예산 30조원 중 일부만 떼어내도 북한의 핵 위협으로 안전하게 막아낼 수 있다”라며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던 허위 정보를 확산시켰다. 성인지 예산은, 여성가족부가 미리 확보해놓고 성인지 사업이라는 것에 사용하는 돈이 아니다. 각 정부 부처의 사업 예산 중 성평등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업을 분류해 ‘성인지 예산’이란 이름으로 묶었을 뿐이다. 윤 당선자는 여가부 폐지 이유에 대해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일 뿐”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여가부의 대안으로 꺼내든 의제는 저출산과 자살 등 인구문제였다. 그러나 여성문제를 도외시하면서 인구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계획’이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시장의 여성 차별과 편중된 가사노동에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차인순 교수는 “인구 정책의 직접적·단기적 해법은 없다. 성평등 일자리와 돌봄 정책이 전향적으로 수립되지 않으면, 주거 정책을 잘한다고 해도 인구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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