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아담'부터 '이세계 아이돌'까지, 가상의 세계관은 진화한다

성상민 문화평론가 입력 2022. 4. 17. 21:58 수정 2022. 8. 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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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디지털 세계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세계관'들

[미디어오늘 성상민 문화평론가]

1998년에 처음 등장한 '사이버 가수 아담'이라는 존재를 아는가. 2018년 '아담'의 이름 뒤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 박성철(제로)가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2'에 나오면서 비화를 알리고, 이후 2021년 JTBC '싱어게인 2 무명가수전'에 다시 출연을 하였기에 이전보다는 '아담'을 아는 사람이 조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에 대한 인지도는 증가했을지 몰라도 '아담'을 기억하는 방식은 여전히 '1990년대의 추억담'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는 '사이버 가수'라는 특성 때문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것을 패러디하여, 부상 등 여러 사유로 인해 제대로 모습을 등장하지 못하는 스포츠 선수 등을 일컬어 '사이버 선수' 같은 식으로 살짝 조롱하는 투의 유행어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다수가 지닌 '아담'에 대한 인식은 한창 컴퓨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 국가와 민간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디지털'을 놓고 시행착오를 하던 상황의 한 단면이 아니었을까.

그 모습은 한국에서만 벌어졌던 상황은 아니다. 다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수많은 '사이버 가수' 또는 '디지털 가수'들이 세계 각국에서 출몰했다. 가장 먼저 사이버 가수의 도전장을 내건 곳은 일본이었다. 1996년 일본의 대형 연예기획사 '호리프로'의 주도로 탄생한 세계 최초의 사이버 가수이자, 최초의 '사이버 아이돌'을 표방한 '다테 쿄코'(伊達杏子)이다. 다테 쿄코가 처음 기획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은 한창 코나미의 전설적인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두근두근 메모리얼'(도키메키 메모리얼)이 등장해 일본은 물론 물 건너 한국까지도 강타하던 시기이다. 여성이 등장하는 게임은 종종 등장해도, 컴퓨터나 게임 콘솔 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와 연애를 하는 컨셉의 게임은 이전까지는 별로 없었다. '두근두근 메모리얼'의 유행에 영향을 받은 호리프로는 연예 기획사로서 이 유행에 따르기 위해 고민하다가, 3D CG로 만들어 낸 캐릭터를 자사의 아이돌로 만들자는 기획까지 이어진 것이다.

중소 IT 개발사에서 기획해 상대적으로 2-3년의 짧은 활동 끝에 사라진 아담에 비하면 다테 쿄코는 대형 연예 기획사에서 주도했다는 특성 때문인지 2001년까지 약 6년 간이나 계속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 사이 다테 코코는 라디오 DJ가 되기도 하고, 정부 기관 중 하나인 통산성(현, 경제산업성.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유사한 조직)의 홍보 포스터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1차 일본문화개방 직후인 1999년에는 '디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진출해 (이는 일본 연예인의 첫 한국 진출이기도 했다.) 당시 존재하던 PC통신 서비스 '나우누리'의 모델을 하기도 했었다.

▲ 가수 박성철(제로)가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2'에 출연한 장면. 사진출처=JTBC.

그러나 기획사의 꾸준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다테 쿄코의 인기는 참으로 미묘했다. 지금보면 딱히 퀄리티가 높지 않은 CG이지만, 1996년은 그렇게 질이 부족한 CG를 만들기 위해서 무척이나 많은 개발 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이 필요했다. 지속적으로 활동의 폭을 넓히며 인지도를 넓히려 애써도, 인지도는 생각대로 오르지 않고 막대한 투자 비용 만큼의 수익을 거두지도 못했다. 심지어는 다테 쿄코의 탄생에 영향을 준 '두근두근 메모리얼'의 제작사 코나미가 게임의 주인공 '후지사키 시오리'을 내세워 일종의 '2D 가상 아이돌' 활동을 하는 것이 더욱 큰 반향을 얻는 일까지 있었다. 결국 2001년을 끝으로 다테 쿄코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아담은 물론 아담의 영향을 받아 1998년 한국에서 등장한 사이버 가수 '류시아' 등등도 모두 활동을 중단하던 시기기도 했다. 그렇게 '사이버 아이돌'의 첫 번째 피리어드는 높은 관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저조한 결과를 낳으며 중단되었다.

하지만 아담이나 다테 쿄코의 프로젝트 중단과 상관없이 이미 전세계에서 번지던 디지털의 물결은 이미 널리 퍼지고 있었다. 특히 '게임'이 매우 큰 일익을 했다.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하던 시기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서서히 '온라인 게임', 그것도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MUD'(Multi User Dungeon, 텍스트 기반 온라인 RPG 게임)이나 현재까지도 꾸준한 사용자를 유지하는 넥슨의 '바람의 나라' 같이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대규모 다중 접속 온라인 RPG 게임)이 등장하던 시기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무조건 실명 사용이 강제되던 PC통신과 달리, 처음으로 '익명'을 내세울 수 있는 최초의 사이버 스페이스기도 했다.

게임 속의 새로운 나의 모습인 '아바타'는 지금 보면 투박해 보여도, 꾸준히 사냥을 하고 돈을 모아 옷이나 장구를 구입해 조금씩 성장을 하는 '내 아바타'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서서히 가상 세계에 빠져들었다. 사이버 가수 아담이나 다테 쿄코는 그저 '신기한 존재'였다면,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는 내 자신이 직접 체감하고 부딛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고 '아바타'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자 다른 인터넷 서비스들 역시 이를 반영한 움직임을 드러냈다. 최근 오랜 연기 끝에 가까스로 서비스를 재개한 '싸이월드'는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상대적으로 꾸밀 수 있는 요소가 제한적인 근래의 SNS와 달리, '싸이월드'는 마치 휴대폰 케이스나 다이어리를 꾸미는 느낌처럼 SNS를 꾸밀 수 있는 컨셉을 지니며 유행이 되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스킨을 내마음대로 요리조리 바꿀 수 있는 가운데, 미니홈피에 접속하면 바로 등장하는 '마이룸',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대표하는 캐릭터 '미니미'는 그 자체로 싸이월드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시간과 실력이 된다면 별도로 돈을 들이지 않았도 꾸밀 수 있었던 그 당시 게임 속 아바타와 달리, 싸이월드의 '미니미'는 무료 아이템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거나 이벤트가 없는 한 싸이월드 내 화폐 '도토리'로 구매를 해야지 내가 원하는 대로 미니미를 꾸밀 수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니미'는 정말 별다른 부가 기능 없이 심미적인 효과가 있음에도, 내 자신을 대리한 '아바타'에 기꺼이 돈을 쓸 수 있음을 드러낸 하나의 예시기도 했다.

▲싸이월드 홈페이지.

동시에 '싸이월드'의 등장과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늦은 2007년이 되어서야 서비스 되었지만 해외에서는 2003년 이미 맹위를 펼치던 또 하나의 '가상현실 게임'이자 '플랫폼'이 있었다. 바로 본격적으로 3D 아바타를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한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이다. 세컨드 라이프는 어떤 점에서는 현재의 '로블록스'(Roblox) 또는 '제페토' 등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게임이라 하기엔 딱히 어떤 특정한 목표도 없고, '두 번째 생활'이라는 제목대로 디지털 생활 속에서 일상 생활을 보내는 것이 게임의 전부였다. 그러나 아무리 투박한 아바타나 미니미라도 이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처럼, 지금 보기엔 조금 거칠어도 사람의 모습을 닮은 세컨드 라이프 속 3D 아바타는 큰 주목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했다. 게다가 세컨드 라이프는 2000년대 초중반 게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도도 높아서, 상상할 수 있는 활동을 의지만 있다면 최대한 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범죄적이거나 음성적인 행동까지도 말이다. 2001년을 끝으로 한동안 모습을 감춘 다테 쿄코가 2007년 세컨드 라이프 속 아바타로 등장할 정도로 세컨드 라이프는 2000년대 가상 세계관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감쌌던 가상 세계관 시기, 한번 막내리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이런 '가상 세계관 플랫폼'은 다시 퇴조했다. 그 시기는 2022년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플랫폼이 등장하던 상황이다. 가상의 아바타를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고, 다양한 활동을 즐기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실명성이 강한 SNS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들 SNS는 헤더(header, 머릿이미지)나 프로필 이미지 정도를 제외하면 내가 원하는대로 색을 바꾸기도 쉽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정형화된 면모가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는 것이 가능한 가상 세계관에 살짝 지친 사람들을 끌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글, 또는 사진만 올리면 제법 근사하게 짜여진 템플릿이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그 자체가 SNS 속 내 자신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게 2000년대를 감쌌던 가상 세계관의 시기는 다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기는 또 다른 '가상'이 막을 올리던 시기였다. 일본을 시작으로 15년 넘게 꾸준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가상 가수' 또는 '가상 아이돌'이 본격적으로 전세계를 매혹하기 시작하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한 축에는 '보컬로이드'가 있었다. 본래 보컬로이드는 일본의 대형 음향 장비악기전동기 메이커인 야마하가 2004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음성 합성 소프트웨어'였다. 이전에도 소위 '보이스웨어' 같은 TTS(Text to Speech, 텍스트를 발성 사운드로 만드는 음성 합성) 기술이 있었지만 여기에 박자나 리듬, 음정에 맞춰 노래를 하게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보컬로이드가 최초였다.

그러나 보컬로이드는 한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상 목소리'라는 컨셉은 독특했지만 누구도 이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를 잘 떠올리지 못했다. 게다가 이 합성된 목소리는 지금보다도 기술의 수준이 많이 낮아, 마치 어설프게 사람의 모습을 닮은 3D CG 캐릭터에 기묘한 감정을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이 발생하듯 보컬로이드 특유의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기계음처럼 들리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 때문에 보컬로이드가 부른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서서히 잊히던 보컬로이드를 대중들이 열광하게 한 존재가 있었다. 일본 홋카이도에 소재한 음향 전문 회사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발표한 보컬로이드 캐릭터 '하츠네 미쿠'(初音ミク)이다. 전형적으로 사이버저인 감각을 주는 녹청색으로 몸을 둘러싼 하츠네 미쿠는 보컬로이드의 기술에 본격적으로 '캐릭터'라는 옷을 입힌 시도였다. 당시 서서히 일본에서 인기를 넓히고 있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니코니코 동화'(ニコニコ動)의 사용자들이 장난감을 만지듯이 다뤄보기 시작했다. 초창기에 제작된 노래들이었기에 그 수준이 마냥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UGC(User Generated Contents, 유저가 직접 만든 콘텐츠. 한국에서는 'Generated'가 아니라 'Created'라는 표현을 사용한 UCC라는 호칭으로 더 알려졌다.) 붐이 일던 상황에서 노래에 자신이 없거나, 부끄럽거나, 보컬로이드가 만든 목소리의 특유의 음색을 독특해하거나, 아니면 하츠네 미쿠의 모습에 흥미로워하는 등 여러 이유로 사람들은 '하츠네 미쿠'에 열광했다. 야마하나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별도로 홍보를 크게 하지 않았음에도 하츠네 미쿠는, 그리고 보컬로이드는 금새 일본의 화제가 되었고 다시 한국을 비롯한 세계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열기에 주목한 크립톤 퓨처 미디어는 이후 새로운 음색을 입힌 하츠네 미쿠의 자매 캐릭터들을 계속 개발, 출시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지방 중소기업이 단숨에 일본 전역의 화제가 된 것에 주목한 수많은 기업들이 속속 보컬로이드에 달려들거나, 자신만의 음성 합성 노래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유저들은계속해서 출시되는 또 다른 '보컬 캐릭터'에 열광해고, 어느 프로 뮤지션 못지 않게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이들이 곧 새로운 스타가 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아무리 좋은 노래를 만들어도 보컬이 하나의 난관이었지만, 보컬을 대신 할 수 있는 가상 보컬 캐릭터의 등장은 장벽을 크게 낮추는 데 일익을 했다. 동시에 이 보컬 캐릭터의 음성을 실제 사람이 다시 불러 또 다른 매력을 만들 수 있는 '우타이테'(歌手를 훈독으로 읽은 표현, 음독으로 읽은 '카슈'는 일반적인 가수를 뜻한다.)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일본 대중음악계 전반의 성장으로도 이어져, 2022년 현재 일본은 물론 한국 등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요네즈 켄시(米津玄師)나 Ado 등과 같은 신진 뮤지션의 등장으로도 다시 이어졌다.

이렇게 한 축에 '보컬로이드'를 비롯한 기술이나 캐릭터로서의 '가상 보컬'들이 있었다면, 다른 한 축에는 '가상 아이돌'이 있었다. 이후 등장하는 모든 가상 아이돌 프로젝트의 시초가 되는 반다이남코의 아케이드 게임 '아이돌 마스터'가 2005년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음악이 등장하는 게임이지만 게임은 일반적인 리듬 게임처럼 전개되지 않았다. 무작위로 발급되는 카드에 기록된 '아이돌 캐릭터'를 플레이어 자신이 '연예기획사 프로듀서'가 되어 육성하는 게임이었다. 마치 실제 연예 기획사에서 소속 연예인들에게 트레이닝을 하듯, 플레이어는 직접 자신이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유한 캐릭터를 육성하고 콘서트가 하는 장면을 지켜보면 되었다. 적절하게 육성을 했다면 한 걸음 전진해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쓸쓸하게 은퇴 콘서트를 봐야만 했다.

이전에도 '탄생 ~ Debut'(1993) 같이 아이돌을 육성하는 게임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저 흔한 하나의 미소녀 캐릭터를 내세운 시뮬레이션으로 취급 받았다면, '아이돌 마스터'는 연애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캐릭터가 성장하고 인기를 얻는 것에 초점을 받았다. 음악에도 꽤나 공을 기울여 다양한 음악씬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초빙해 탄생한 악곡들은 게임을 즐기지 않는 팬들도 주목할 정도가 되었다.

'아이돌 마스터'의 인기가 심상치 않자 게임의 개발사이자 퍼블리셔인 반다이남코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인기 게임들이 흔히 하듯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미디어 프랜차이즈, 온갖 기념상품을 내었지만 이 작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바로 '아이돌 마스터'에 등장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가 직접 무대로 나와 각자의 캐릭터 모습으로 코스프레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 성우 본인으로서가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 '실제 활동'을 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시도가 없던 건 아니지만, 이를 게임 프랜차이즈의 핵심 프로젝트로 연결시킨 것은 '아이돌 마스터'가 처음이었다. 동시에 완전한 2차원의 캐릭터도, 그렇다고 완전한 실제 현실도 아닌 그 사이에 걸쳐 있는 '2.5차원'이라는 장르 표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최초의 가상 아이돌 다테 쿄코가 게임 '두근두근 메모리얼'에 영향을 받고 나왔던 것처럼, 게임이 새로운 가상 세계관을 현실에 이끌게 되는 국면이 찾아온 셈이었다. '아이돌마스터'의 성공은 이후 '러브 라이브! School idol project series'(2010)나 '앙상블 스타즈'(2015)와 같은 유사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아동 대상 작품으로도 이어져 '프리티 시리즈'(2010), '아이엠스타!'(아이카츠, 2012) 같은 작품을 낳고, 아이돌을 넘어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다룬 'BanG Dream!'(2015), 힙합을 다룬 '히프노시스 마이크'(2017), DJ를 비롯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으로 넓힌 'D4DJ'(2020) 등의 기획으로도 이어졌다. 심지어는 새로 '가상 가수'의 세계를 만든 하츠네 미쿠 계열 보컬 캐릭터를 활용한 '프로젝트 세카이 컬러풀 스테이지! feat.하츠네 미쿠'(2020)이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

2010년대 아이돌을 통해 다시 나타난 세계관 기획

이렇게 일본에서는 주로 유저가 직접 기획한 창작물이나 기업이 기획한 게임-애니메이션-만화를 중심으로 한 가상 세계관 기획이 주를 이뤘다면, 한국은 201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의 한 주류가 된 '아이돌'이 가상의 한 축이 되었다. '아이돌마스터' 등의 실제 무대 활동처럼 원작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세계관'을 설정에 삽입함으로서 가능했다. '아이돌마스터'와 같은 가상 아이돌 프로젝트들은 프로젝트가 인기를 얻은 뒤 그 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성우가 캐릭터를 대리해서 활동했다면, 세계관을 삽입한 아이돌들은 스스로 현실에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처럼 활동하는 식으로 현실과 가상을 이어냈다.

▲SM엔터테인먼트의 EXO 프로필 사진.

처음으로 화제가 된 '가상 세계관'을 지닌 아이돌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2012년에 데뷔한 '엑소'(EXO)이다. 엑소의 세계관에서 엑소에 소속된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외계에서 들어온 '12개의 전설'이 인간의 몸을 얻은 존재이다. 실질적으로는 한국어 그룹과 중국어 그룹으로 분류한 유닛인 EXO-K(Korean)과 EXO-M(Mandarin, 중국 보통화)이지만 이 설정에서는 EXO-K와 EXO-M은 전혀 다른 평행 세계에서 있어 같은 곳에 있어도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나,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면 이들은 비로소 하나로 뭉쳐 EXO가 될 수 있다. 이후 멤버들의 탈퇴 등등 여러 사건이 겹쳐 이 설정은 이후 많이 묻히게 되었지만, 단순한 캐릭터 컨셉이 아니라 아이돌 전체를 하나의 가상 세계관에 묶어서 만드는 모습은 이전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인 것은 분명했다.

EXO가 처음부터 꾸준히 하나의 세계관에서 아이돌을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캐릭터로 만들었다면, 2022년 현재 한국 아이돌팝에서 가장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있는 하이브의 '방탄소년단'(BTS)는 시기별로 설정을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세계관을 만든 케이스이다. WINGS LOVE YOURSELF 같은 일련의 앨범/싱글 기획에서 통용되는 설정과 상징이 있으며, 동시에 이는 귀납적으로 다시 BTS를 묶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포섭되는 식으로 세계관이 짜여졌다. 그것은 EXO처럼 완전한 판타지는 아니더라도, 실제 아이돌을 이루는 개인에 여러 상징적인 면모들을 부합시킨 모습들이다. EXO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뮤직비디오 이상으로 넘지 않았던 것에 비해, 하이브는 BTS를 주인공으로 한 웹툰이나 드라마를 기획하면서 세계관의 형성 자체는 늦었어도 더욱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무척이나 '아이돌의 세계관'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것은 일찌감치 EXO를 만들어낸 SM엔터테인먼트이다. SM은 2016년에 데뷔한 '엔시티'(NCT)를 통해서 근미래 SF적인 설정이 조금씩 담긴 세계관을 보여주었다면, 2020년에 데뷔한 '에스파'(æspa)를 통해서는 더욱 강도높게 세계관의 설정을 확장했다. 에스파의 세계관은 현실 세계의 자신이 가상 세게에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로서 '아바타'를 현실과 가상의 중간인 '디지털 세계'에서 만나며 성장하는 컨셉에 기반한다. 이는 마치 아바타를 개념을 대중들이 처음 인식하기 시작한 온라인 게임을 연상하게 하는 설정이다. SM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자신들에게 소속되는 아이돌 전체를 묶는 세계관을 만든다는 컨셉으로 'SMCU'(SM 컬쳐 유니버스)를 에스파의 데뷔와 함께 제안을 한 상황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 프로필 사진.

이렇게 '세계관'을 지닌 아이돌은 마치 '아바타'나 '미니미'가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었던 상황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 '아바타'는 분명 자신이 만들고 꾸미며 조작할 수 있지만, 완벽한 자기 자신은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도 아바타라면 할 수도 있다. 연예 기획사들은 이러한 효과를 아이돌들이 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딱히 이렇다 할 '원작'은 없다하더라도 아이돌에게 푹 빠져든 팬덤은 기획사가 만들어낸 세계관에서 일정한 캐릭터성을 지닌 모습들에 마치 만화나 영화, 애니메이션을 즐기듯 감정을 더욱 이입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들 연예 기획사는 일본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2.5차원'의 콘텐츠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렇게 시작이나 경로는 달라도, 2010년대 이후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가상'을 인식하고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융합이 2020년대 이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단적인 모습이 바로 '버추얼 아이돌'(virtual idol)이 아닐까. 본래 이는 2010년대 후반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버추얼 유튜버/스트리머'(virtual YouTuber/streamer)를 기반으로 한다. 마치 네이버 '스노우'처럼 2010년대 이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영상에 비치는 인물을 인식하고, 다시 그 인물의 미묘한 얼굴 변화나 동작을 읽어내 추적할 수 있는(트래킹, tracking) 기술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스노우'와 같은 카메라 어플리케이션은 이렇게 인식한 사람의 모습에 필터를 씌우거나 각종 장식을 붙였다면, 아예 사람의 모습 전체를 가상의 캐릭터로 대체할 수 있는 시도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2016년 처음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은 버추얼 유튜버인 '키즈나 아이'(Kizuna AI)가 빠르게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우후죽순처럼 각종 영상 촬영 장비에 트래킹 장비나 소프트웨어, 그리고 겉모습을 이쁘게 만들어 줄 '3D 모델링 캐릭터'를 앞세운 버추얼 유튜버/스트리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하츠네 미쿠를 비롯한 '보컬 캐릭터'가 보컬에 자신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도록 만들었듯, 버추얼 유튜버도 외모에 자신이 없는 이들이 한 단계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실수로 자신의 실제 모습이나 정체를 드러나지 않는 한 팬들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3D 모델링 캐릭터에, 캐릭터를 연기하는 개인들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아이돌 활동'으로 이어내면 그것이 곧 '버추얼 아이돌'이다. 이미 키즈나 아이도 자신의 캐릭터 명의로 음반을 내고 방송 활동을 하며 아이돌 활동을 하였고, 마치 2000년에 등장한 '고릴라즈'처럼 '스토푸리'(すとぷり) 등 3D 캐릭터 대신 자신의 실제 모습 대신 '캐릭터 이미지'를 내세워 온라인을 기반으로 활동한 '우타이테 아이돌 그룹'도 있었다. 하지만 솔로 아이돌보다는 '그룹' 아이돌 활동이 더 강한 한국답게, 한국에서 버추얼 유튜버들은 속속 '그룹'으로서 아이돌 활동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세계 아이돌의첫 데뷔 싱글 'RE : WIND' 앨범.

그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지난 2021년 12월에 데뷔한 '이세계 아이돌'이다. 약칭 '이세돌'로도 유명한 이들은 2008년 아프리카TV를 통해 처음 활동을 시작한 인기 스트리머 '우왁굳'의 기획을 통해서 탄생했다. 시작은 우왁굳의 개인 방송에서 그저 재미있게 '시청자 참여형 콘텐츠'로서 버추얼 유튜버들을 모아 마치 아이돌 그룹처럼 놀아보자는 것이었지만, 차츰 덩치를 키운 프로젝트는 정식 음반을 내고 뮤직비디오까지 만들며 정식으로 활동하는 현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장난스럽게 시작되었던 '이세계 아이돌' 프로젝트는 첫 데뷔 싱글 'RE : WIND'가 벅스 실시간 차트 1위, 유튜브 뮤직 인기 급상승 음악 5위, 가온차트 다운로드 차트 2위에 오르면서 팬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발매한 두 번째 싱글 '겨울봄'은 무려 MBC '쇼! 음악중심' 차트에 14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이전까지 대중들이 여러 방면으로 익숙해진 '가상의 세계관'이 '버추얼 스트리머' 또는 '버추얼 아이돌'로 넓혀진다는 반증이었다.

이후에도 성우이자 방송인 서유리가 버추얼 유튜버 '로나로나땅'으로 변신하고, 이후 스스로 오디션을 진행해 곧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 그룹 '로나 유니버스'가 등장하는 등의 움직임이 조금씩 발생하고 있다. 그 시작 중 하나였던 사이버 가수 아담은 추억을 넘어 유물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여러 부침과 변화를 거쳐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디지털 세계, 그리고 실제 개인이 다양한 형태로 모습과 설정을 바꿔갈 수 있는 '세계관'에 대한 인식은 거부감을 넘어 일상 생활에 서서히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가상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의 앞에, 대중 문화 안에서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그 모습을 상상하고, 그 모습이 만들 변화의 가능성을 꿈꿔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모습을 개인들이 각자 능력을 모아 실제의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세계관은 더욱 풍성해지고, 젠더나 장애 등 이전까지는 다루지 못했던 영역으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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