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 '음식물분쇄기' 설치가 친환경?.. "하수오염 가속" 지적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신축 건물 '디스포저' 설치 허용 약속
편리하지만 일부 찌꺼기는 버려져
전 주택 도입 땐 하수 부하 20% 증가
시설 증설비용만 7조원 이상 분석도
'바이오가스 생산 자원' 음식물쓰레기
갈아서 바로 배출 땐 자원 손실 가능성
전문가들, 경제·안전성 놓고 갑론을박
하수도·폐기물관리법 등 개정도 숙제
현행 법령상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사용은 규제된다. 정부는 환경부 고시를 통해 인증기준에 부합하는 분쇄기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음식물을 분쇄하고 난 찌꺼기인 고형물을 80% 이상 회수하거나 20% 미만의 고형물을 오수와 함께 배출하는 분쇄기만 인증받는다. 하수에 배출되는 음식물찌꺼기를 줄여 오염부하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다.
여기서 나아가 주방용 오물분쇄기 제조·수입·판매·사용을 전면 금지하자는 하수도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지난해 5월21일 불법적으로 설치·개조된 제품이 시중에 널리 판매되면 관로 막힘, 악취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며 아예 국내 사용을 막자고 대표 발의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25일 환경 분야 공약을 발표하며 순환경제 정책으로 “앞으로는 신축 건물 개수대에 분쇄기를 설치해 하수구에 바로 배출하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 방식을 채택하면 음식물쓰레기를 대폭 줄이는 한편, 건물 하부에 파쇄물 수거용기를 설치해 바이오가스도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현행법과 배치된단 점은 차치하고 오물분쇄기를 ‘친환경’ 정책으로 내세우기엔 무리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주방용 오물분쇄기, 환경친화제품 맞나요
2020년 6∼12월 환경부 용역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수행한 ‘주방용 오물분쇄기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고형물을 20%만 배출하는 인증제품이라도 모든 공동주택(아파트)에 도입될 경우 현재 대비 오염 부하가 12.0%, 전체 주택에 도입될 경우 20.1%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배출량을 20%로 전제해도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전체 주택에 도입한다면 하수처리시설 증설비용만 7조원 이상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하수 찌꺼기(슬러지) 처리에도 매년 약 500억원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전망됐다.
불법적으로 개조된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문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 A씨는 “음식물쓰레기를 나가서 따로 배출하기 번거로워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사용하는데, 80% 이상을 회수해 똑같이 분리배출 해야 하는 분쇄기를 누가 좋아하겠나”라며 “실제로는 분쇄회수 방식 분쇄기 대부분이 거름망을 떼고 음식물찌꺼기를 갈아서 그대로 배관 하수도로 배출하는 불법제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을 강화해야 한단 주장도 있지만 각 가정에서 이뤄지는 일을 일일이 단속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제작·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자, 애용하는 사용자 중에서는 개인의 생계수단이나 편익을 침해한다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과거 분쇄기 판매·사용자 등이 환경부 고시에 반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지난해 이를 기각했다. 헌재는 수질 악화를 방지한다는 목적이 정당하고, 공공수역에서 수질오염을 막는 공익이 중대하다고 밝혔다. 사회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규제는 침해 최소성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환경부 용역연구에 참여한 배재근 서울과기대 교수(환경공학)는 이런 입장 차를 공익과 사익의 충돌로 봤다. 배 교수는 “편리하게 배출하는 개인의 편익도 있지만 (수질보호란) 공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며 “그게 환경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음식물쓰레기 배출용 종량제봉투를 사서 별도 분리배출 하는데, 분쇄기 사용자는 음식물찌꺼기를 그냥 버리고, 이들 때문에 하수 처리비용은 올라간다”며 “모든 분야에서 따지는 ‘형평성 문제’가 이미 이 문제에선 부분적으로 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음식물찌꺼기를 분쇄기로 갈아 바로 배출할 때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바이오가스화 자원의 손실이다. 음식물쓰레기는 메탄 등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데 가장 좋은 자원이다. 사람이나 가축의 분뇨, 하수 슬러지 등은 바이오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 일부가 이미 손실된 상태지만, 음식물쓰레기는 에너지원 손실이 적어 바이오가스화 가치가 더 높다.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분쇄기는 집집마다 설치하고 여기서 바이오가스까지 얻는, 현재로선 모순적이지만 이상적인 방법은 실현 불가능할까.
많은 법적·기술적 개·보수가 필요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경전문가 B씨는 “각 가정에서 갈아 버린 음식물찌꺼기를 하나의 배수관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관로에서 고형물을 모두 회수한다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B씨는 “이 경우 배관 퇴적 문제를 해소하고 고형물도 회수해 누수되는 에너지원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과 제도가 결합해 법적으로 배출관 쪽에서 고형물을 회수하게 개정된다면 사용관리도 더 편할 수 있다”며 “현재 분쇄기 인증 후 사용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제도적 테두리 안으로 들여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연구를 위한 시범사업 시행 전까지는 어떤 기술이 개발돼야 하고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직 국내 하수시스템이 분쇄량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고 오염 부하는 얼마나 심해질지 검토할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각 가정에서 흘려보낸 고형물을 하부 배관에서 회수하는 방식은 하수도법, 폐기물관리법 등 관련법 개정 또한 복잡하다는 난관이 있다.
바이오가스화만 생각하면 분쇄하고 남은 고형물은 이물질 등이 적어 자원으로서 더 긍정적일 수 있다고 B씨는 예상했다. 그러나 경제성이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소규모 바이오가스 생산이 어렵다고 전망한 A씨나 배 교수처럼, B씨 역시 고형물을 공공가스화시설로 옮긴 뒤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상 바이오가스는 100∼200t 정도의 음식물찌꺼기를 대규모로 발효해야 에너지로서 활용 가치가 있다. B씨는 “하루에 1인당 발생하는 음식물 폐기물 양이 대략 0.27㎏”이라며 “4000명이 거주하는 대단지여도 배출되는 음식물 폐기물이 1t밖에 안 돼 단지에서 직접 바이오가스를 생산한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가스는 인화성도 있고 악취도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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