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 '음식물분쇄기' 설치가 친환경?.. "하수오염 가속" 지적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박유빈 2022. 4. 1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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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평가한 '尹 환경공약'
신축 건물 '디스포저' 설치 허용 약속
편리하지만 일부 찌꺼기는 버려져
전 주택 도입 땐 하수 부하 20% 증가
시설 증설비용만 7조원 이상 분석도
'바이오가스 생산 자원' 음식물쓰레기
갈아서 바로 배출 땐 자원 손실 가능성
전문가들, 경제·안전성 놓고 갑론을박
하수도·폐기물관리법 등 개정도 숙제
준비를 마치고 산뜻하게 집을 나서려는 아침, 며칠간 쌓인 음식물쓰레기를 버려야 한다면 누구라도 내키지 않는다. 불쾌한 냄새가 올라오는 묵직한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손끝으로 살짝 잡았다가 잘못해 오물이 손에 묻기라도 하면 찝찝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만인에게 귀찮은 일을 대체할 수 있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주방용 오물분쇄기, 일명 음식물쓰레기 분쇄기(디스포저)를 건물마다 설치하겠다는 ‘심쿵’ 공약을 발표했다.

현행 법령상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사용은 규제된다. 정부는 환경부 고시를 통해 인증기준에 부합하는 분쇄기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음식물을 분쇄하고 난 찌꺼기인 고형물을 80% 이상 회수하거나 20% 미만의 고형물을 오수와 함께 배출하는 분쇄기만 인증받는다. 하수에 배출되는 음식물찌꺼기를 줄여 오염부하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다.

여기서 나아가 주방용 오물분쇄기 제조·수입·판매·사용을 전면 금지하자는 하수도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지난해 5월21일 불법적으로 설치·개조된 제품이 시중에 널리 판매되면 관로 막힘, 악취 등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며 아예 국내 사용을 막자고 대표 발의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25일 환경 분야 공약을 발표하며 순환경제 정책으로 “앞으로는 신축 건물 개수대에 분쇄기를 설치해 하수구에 바로 배출하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 방식을 채택하면 음식물쓰레기를 대폭 줄이는 한편, 건물 하부에 파쇄물 수거용기를 설치해 바이오가스도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현행법과 배치된단 점은 차치하고 오물분쇄기를 ‘친환경’ 정책으로 내세우기엔 무리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주방용 오물분쇄기, 환경친화제품 맞나요

음식물쓰레기를 잘게 자르거나 미생물로 소멸시킨 뒤 물과 함께 배출하는 주방용 오물분쇄기 특성상, 고형물이 하수도로 많이 흘러 들어간다. 하수 처리 부담이 커진다. 음식물쓰레기를 분쇄한 뒤 거름망 등으로 고형물을 회수하는 ‘분쇄회수방식’이나 음식물쓰레기를 미생물을 이용해 발효시키는 ‘미생물액상발효방식’ 모두 소량의 찌꺼기는 오수와 같이 쓸려 버려진다.
최근에는 공동 구매해 대규모로 설치하는 사례들이 있어 이미 하수 부하가 생기기 시작했다. TV나 인터넷 광고를 보고 구매하는 경우도 급증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주방용 오물분쇄기 누적 판매량은 약 18만대로 추정된다. 개별 분쇄기가 20% 미만으로 고형물을 배출하더라도, 이런 찌꺼기가 계속 쌓이면 전체 양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하수도 일부 관로에 고형물이 퇴적돼 막힘이나 악취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지관리비는 증가하게 된다. 하수처리장 부하도 커지기 때문에 처리장 증설이 필요하다.

2020년 6∼12월 환경부 용역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수행한 ‘주방용 오물분쇄기 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고형물을 20%만 배출하는 인증제품이라도 모든 공동주택(아파트)에 도입될 경우 현재 대비 오염 부하가 12.0%, 전체 주택에 도입될 경우 20.1%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배출량을 20%로 전제해도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전체 주택에 도입한다면 하수처리시설 증설비용만 7조원 이상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하수 찌꺼기(슬러지) 처리에도 매년 약 500억원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전망됐다.

불법적으로 개조된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문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 A씨는 “음식물쓰레기를 나가서 따로 배출하기 번거로워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사용하는데, 80% 이상을 회수해 똑같이 분리배출 해야 하는 분쇄기를 누가 좋아하겠나”라며 “실제로는 분쇄회수 방식 분쇄기 대부분이 거름망을 떼고 음식물찌꺼기를 갈아서 그대로 배관 하수도로 배출하는 불법제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을 강화해야 한단 주장도 있지만 각 가정에서 이뤄지는 일을 일일이 단속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주방용 오물분쇄기 인증기관인 한국물기술인증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앞선 4년간 조사한 제품 22개 중 19개가 불법적으로 구조가 변경됐거나 인증시험에 불합격한 제품이었다. 인증단계에서 적법하더라도, 이후 설치 시 거름망을 제거하는 등 불법개조가 이뤄지면 이를 단속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인증받지 않은 해외 제품을 유통사이트 등을 통해 직접 구매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공익과 사익 충돌하는 현실

주방용 오물분쇄기를 제작·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자, 애용하는 사용자 중에서는 개인의 생계수단이나 편익을 침해한다는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과거 분쇄기 판매·사용자 등이 환경부 고시에 반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지난해 이를 기각했다. 헌재는 수질 악화를 방지한다는 목적이 정당하고, 공공수역에서 수질오염을 막는 공익이 중대하다고 밝혔다. 사회적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규제는 침해 최소성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환경부 용역연구에 참여한 배재근 서울과기대 교수(환경공학)는 이런 입장 차를 공익과 사익의 충돌로 봤다. 배 교수는 “편리하게 배출하는 개인의 편익도 있지만 (수질보호란) 공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며 “그게 환경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음식물쓰레기 배출용 종량제봉투를 사서 별도 분리배출 하는데, 분쇄기 사용자는 음식물찌꺼기를 그냥 버리고, 이들 때문에 하수 처리비용은 올라간다”며 “모든 분야에서 따지는 ‘형평성 문제’가 이미 이 문제에선 부분적으로 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음식물쓰레기를 편하게 배출하면 좋지만,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본다면 고민할 사항”이라며 “음식물찌꺼기로 수질이 오염되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회복시켜야 하고, 회복할 수 없다면 그때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주방용 오물분쇄기 수요는 높지만, 분쇄기 사용을 확대한다고 해도 우려되는 점은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리한 배출과 바이오가스 생산, 둘은 양립 가능한가

음식물찌꺼기를 분쇄기로 갈아 바로 배출할 때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바이오가스화 자원의 손실이다. 음식물쓰레기는 메탄 등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데 가장 좋은 자원이다. 사람이나 가축의 분뇨, 하수 슬러지 등은 바이오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 일부가 이미 손실된 상태지만, 음식물쓰레기는 에너지원 손실이 적어 바이오가스화 가치가 더 높다.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분쇄기는 집집마다 설치하고 여기서 바이오가스까지 얻는, 현재로선 모순적이지만 이상적인 방법은 실현 불가능할까.

많은 법적·기술적 개·보수가 필요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경전문가 B씨는 “각 가정에서 갈아 버린 음식물찌꺼기를 하나의 배수관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관로에서 고형물을 모두 회수한다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B씨는 “이 경우 배관 퇴적 문제를 해소하고 고형물도 회수해 누수되는 에너지원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과 제도가 결합해 법적으로 배출관 쪽에서 고형물을 회수하게 개정된다면 사용관리도 더 편할 수 있다”며 “현재 분쇄기 인증 후 사용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제도적 테두리 안으로 들여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연구를 위한 시범사업 시행 전까지는 어떤 기술이 개발돼야 하고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직 국내 하수시스템이 분쇄량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고 오염 부하는 얼마나 심해질지 검토할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각 가정에서 흘려보낸 고형물을 하부 배관에서 회수하는 방식은 하수도법, 폐기물관리법 등 관련법 개정 또한 복잡하다는 난관이 있다.

바이오가스화만 생각하면 분쇄하고 남은 고형물은 이물질 등이 적어 자원으로서 더 긍정적일 수 있다고 B씨는 예상했다. 그러나 경제성이나 안전 문제를 이유로 소규모 바이오가스 생산이 어렵다고 전망한 A씨나 배 교수처럼, B씨 역시 고형물을 공공가스화시설로 옮긴 뒤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상 바이오가스는 100∼200t 정도의 음식물찌꺼기를 대규모로 발효해야 에너지로서 활용 가치가 있다. B씨는 “하루에 1인당 발생하는 음식물 폐기물 양이 대략 0.27㎏”이라며 “4000명이 거주하는 대단지여도 배출되는 음식물 폐기물이 1t밖에 안 돼 단지에서 직접 바이오가스를 생산한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가스는 인화성도 있고 악취도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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