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천연 상술'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입력 2022. 4. 13. 08:40 수정 2022. 4. 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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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광고에 등장하는 천연 가습기. 자연에서 채취한 광물을 이용한다고 무작정 안심할 수도 없다. 인터넷갈무리

'천연’과 ‘안전’을 강조하는 광고가 또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천연 소재’를 이용한 ‘천연 가습기’다. 인공적으로 가공하지 않은 ‘천연‧자연’ 제품이기 때문에 ‘화학물질’이 들어있지 않다고 우긴다. 물론 현대 과학적 사실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엉터리 주장이다. 세상에 화학물질이 들어있지 않은 가습기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안심해도 된다는 주장도 절대 믿을 것은 아니다. 2011년에 끔찍한 피해 사실이 처음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도 1994년부터 ‘어린아이에게도 무해하다’고 엉터리 광고 때문에 벌어진 참혹한 재앙이었다.

천연 가습기의 정체

요란한 인터넷 광고에 등장하는 천연 가습기의 원리는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다. 주로 제올라이트(zeolite)처럼 미세 다공성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많은 양의 물을 흡수하는 특성을 가진 점토성 광물(돌)을 이용합니다. 그런 광물을 입구가 넓은 그릇에 담아두면 광물에 흡수된 수분이 증발하면 실내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는 것이 전부다.

제올라이트(zeolite)는 규소(실리콘)·알루미늄·산소가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흰색·회색·갈색 등의 천연 점토성 또는 합성 광물이다. 규산염 계열의 광물로 분류되는 제올라이트도 당연히 원소의 화학결합으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이다. 자연 상태 발견되는 제올라이트는 항석(analcime)·능비석(chabazite)·클리노프틸로이트(clinoptilolite)·휘비석(heulandite)·소다비석(natrolite)·회십자비석(phillipsite), 속비석(stilbite)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제올라이트와 같은 점토성 광물을 이용한다고 대단한 가습기의 성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올라이트의 종류에 따라서 흡수된 물의 증발 속도와 증발량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건조한 실내의 습도를 높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입구가 넓은 그릇에 물을 담아두거나, 실내에 충분히 젖은 빨래를 널어두거나, 물을 충분히 준 화분을 놓아두어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습기의 성능에 영향을 주는 수분의 증발 속도는 대체로 실내 온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증발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광고에 등장하는 ‘정화석’, ‘화공석’, ‘천연석’ 등은 공식적인 광물의 이름이 아니다. 정화석은 실내 공기를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기능을 강조하고, 화공석은 미세 다공성 구조를 가지고 있는 광물이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비공식적인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미세 다공성의 점토성 광물인 제올라이트는 실내 공기 중의 냄새를 제거하는 탈취제나 습기를 제거하는 제습제의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 충분히 건조시킨 제올라이트의 작은 구멍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냄새의 원인 물질이나 수분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다공성 물질은 숯·활성탄을 탈취제나 제습제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원리다.

가습기의 안전성

미세 다공성 구조의 점토성 광물  제올라이트(zeolite).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공

인터넷 광고에 등장하는 천연 가습기는 대부분 탈취제나 습기 제거제의 기능을 가진 생활화학제품으로 신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납·카드뮴·비소·수은·크로뮴(6가)과 같은 중금속이나 다이메틸퓨마레이트와 같은 유기물의 함량이 허용기준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해서 화학제품관리시스템에 신고만 하면 누구라도 천연 광물을 탈취제나 제습제로 판매할 수 있다.

밀폐된 실내의 공기 중에 수분을 배출시켜주는 가습기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2011년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 이후 가습기는 환경부로부터 전혀 다른 기준의 품목 허가를 받아야만 유통이 가능하다. 점토성 광물에서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독성 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야만 한다. 환경부 산하의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광물을 가습기의 용도로 사용하도록 허가해준 제품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에서 채취한 광물을 이용한다고 무작정 안심할 수도 없다. 물에 젖어있는 광물의 표면에서 세균이나 곰팡이가 증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로 현상이 나타나는 벽체나 뚜껑을 열어놓은 물티슈에서 세균이나 곰팡이가 증식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세균이나 곰팡이가 증식하면 실내에 악취가 풍기거나 곰팡이 포자가 날아다녀서 건강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천연 광물을 이용하는 천연 가습기에 편백나무 조각을 올려놓거나 편백 오일을 뿌리는 일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편백나무도 수분에 젖은 상태로 방치되면 세균이나 곰팡이가 증식할 수 있다. 식물성 살생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로 분류되는 편백 오일도 밀폐된 실내 공기 중에 너무 많아지면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밀폐된 실내에서 사용하는 가열식 가습기나 초음파 가습기에는 수돗물·우물물 대신 생수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습기에 물때나 세균·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서 굳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 가정용 세척·세정제를 사용해도 충분하다. 다만 세정·세척제를 사용한 후에는 반드시 깨끗한 물로 가습기를 충분히 헹구고, 건조시킨 후에 가습기를 사용해야만 한다.

가습기는 밀폐도가 높은 실내의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공산품이다. 그런 가습기를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수칙은 매우 간단하다. 물 이외의 화학성분은 절대 가습기에 넣지 말아야 한다. 피톤치드와 같은 방향제 성분도 예외가 아니다. 인체의 호흡기에 안전한 세척제나 살균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실내에서 악취가 나는 경우에는 악취의 원인을 찾아서 확실하게 제거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실내 분사형 방향제나 향초를 사용한 후에는 반드시 환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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